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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동시` <신발 2 / 정진숙>-박두순

문근영 2019. 5. 23. 07:23

신발·2



봄이 길가 신발 가게에
노란 꽃 신발을 내놓았어요.


나비가 신어 보고
그냥 두고 갔어요.
벌이 신어 보고
그냥 두고 갔어요.


몇 날 며칠 놓여 있던
노란 꽃 신발


없어졌어요.


씨앗 몇 개

신발 값으로 남겨 놓고
신고 갔어요.


―정진숙(1954~ )

가슴으로 읽는 동시 일러스트

 

 꽃이 신발이란다! 나비와 벌이 신는. 봄이 꽃 신발을 팔려고 길가 가게에 내어놓았단다. 신발 값은 씨앗 몇 개란

다. '에이, 거짓말' 이런 말이 튀어나올 법도 한데 도리어 '아, 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럴듯한 거짓말이

어서다. 시적 상상이란 이런 거다. 과학적으로 치자면 새빨간 거짓말인데 정서적, 심적으론 딱 맞는다. 이게 시다.

  어린이는 상상하기를 즐긴다. '신발이 없어졌다.' 어린이에게 물어보자. 누가 가져갔는지. 새삼스레 답은 들을

도 없다. 다 안다. 봄날 길가에 노란 꽃이 얼마 동안 피었는데, 나비와 벌이 날아들고, 꽃이 진 후에 보니, 씨앗

맺힌 거다. 밋밋한 이야기가 시의 옷을 입으니 맛깔스러운 동화시로 바뀌었다. 요즘 길섶 풀들이 열매를 조롱

조롱달고 있다. 씨앗까지 꼬옥 품고. 기특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