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늪의 잇몸

문근영 2019. 5. 9. 11:47
늪의 잇몸

분꽃 피는 날 그녀가 집을 나갔다

쥐꼬리 월급으로는 못 살겠다는 그녀 떠난 뒤

석 달 열흘 세수도 안 한 막내아들과

철없는 어린 손주 돌보느라

뒷집 질경이 할머니는

뼈, 마디마디 통증이 깊어졌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폐지라도 주워야지.” 라시며

쓰레기더미를 가려내다 골 더 깊어진 손

누군가 한입 베어 먹다 버린 사과의 잇자국에서

자욱한 날파리 떼 털고 있다

깡통 일그러지는 길의 소리가 좋아

꽃대 위로 쌓이는 폐지 더미가 좋아

리어카 바퀴에 일어서는 질경이 할머니

지폐 몇 장 들고 언제 집으로 가시나!

용성자원 사장이 쥐여 주는 하루가

쑥쑥 자라는 손주 녀석 재롱과

목젖까지 내놓고 활짝 웃는 아들 등 뒤에서

그녀, 껴입은 피로를 훌훌 벗게 한다

살금살금 저녁 담장 위를 걸어온 고양이에게

육시랄 이빨 빠진 욕설로

냅다 던지는 먹던 사과의 등뼈



◇문근영= 1963년 대구출생, 효성여자대학교 졸업, 열린시학 신인작품상(15), 눈높이 아동문학상에 동시 ‘눈꺼풀’ 외 15편당선(16),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나무’ 당선(17),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18),신춘문예 당선자 시인 선 당선, 금샘 문학상 당선


<해설> 한없이 빠져드는 것이 늪이다. 그 늪을 만난다는 건 어둠이며 절망일 것이고, 아픔일 것이다. 이 없이 잇몸으로 먹는 음식이 살로나 갈까 만 그래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할머니도 자신의 손에 쥔 먹거리를 누군가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정광일(시인)-

출처 : 대구신문(http://www.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