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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시 ‘표현의 자유’를 생각 한다 / 이룰태림(언론인)

문근영 2019. 2.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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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표현의 자유’를 생각 한다

                                                                         
“‘예스맨(yes man)’의 언론이 ‘도요타 사태’를 일으켰다.”

요즈음 ‘도요타 자동차’의 천문학적 리콜사태로 세계가 놀라고 있고, 일본인들은 정신적 공황상태이다. 그 원인에 대해, 일본인들은 “산업계의 자만심과 오만의 결과”라고 한탄한다. 지식인 일각에서는 “‘예스맨’만의 언론이 각종 개혁의 물꼬를 막아왔다”, “광고에 포로가 된 언론들에서 비판정신이 실종된 결과다”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도요다 사태’를 남의 나라의 불행이나 불구경처럼 바라보고만 있을 처지인가? ‘예스맨’ 언론이 남의 나라 일인가?

                  우리 언론, ‘예스맨 언론’으로 전락하는가?

한국사회는 역사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려 본 적이 없다. 조선 시대, 구한말, 일제식민지시대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1948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이후에도 우리 국민들이 제대로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누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북 분단과 6.25동란의 후유증으로, 민주와 자유를 주장하는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한 운동들이, 독재로 치닫는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걸핏하면 “빨갱이다”, “좌익이다”라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어왔고,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주홍 글씨’의 낙인이 찍히기 일쑤였다.

한국사회가 이 소아병적 심리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 하는 것은 ‘소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1960년대~1980년대까지의 한국사회를 분석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따로따로 존재하고, 이 두 세력은 갈등관계 내지는 길항관계인 것처럼 인식해왔다. 과연 길항관계인가?

아니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분업과 협동의 관계로 인식되어야만 그 사회의 시민민주주의는 제대로 성숙할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보자.

도그마적 중세종교가 인간의식을 지배하며 천동설(天動說)을 강요하던 중세에서 어떻게 달나라 탐험이 가능하겠는가? 신분계급사회에서 대부분의 백성들이 농노(農奴)로 발이 묶인 사회에서 어떻게 증기기관, 철도, 증기기선, 자동차, 비행기가 생겨나고, 에너지혁명, 교통혁명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전신, 전화, 라디오, TV, 휴대폰, 인터넷 같은 전자, 통신혁명을 중세의 ‘사상 감옥’ 속에서 꿈이나 꿀 수 있었겠는가?

근현대 산업혁명과 산업사회의 발전이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성숙해진 시민민주주의 사회에서부터 먼저 생성 발전해 나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오늘날에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한 미숙아이다. 더구나 21세기 하고도 10년이나 지난 요즈음 표현의 자유는 더 성숙해지기는커녕, 역주행하고 있어 크게 우려스럽다.

현 정권 들어 이미 KBS와 YTN의 경영진은 ‘예스맨’들의 수중으로 떨어졌고 MBC 경영진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08년의 ‘촛불집회’를 제멋대로 ‘불법집회’로 지목하고, 그때 ‘촛불집회’에 이름을 올렸던 문화 예술단체들에 대해 “앞으로는 그런 집회에 참석하지 말 것, 참여했을 때는 받은 지원금을 반환할 것”을 ‘각서’ 형태로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이 어거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듯, 여당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의 야간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반(反)산업적, 중세인적 인식 버려야

한국사회가 아직도 부닥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와 억압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지겨워질 정도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역주행은 국민이 스톱시켜야한다. 또한 다시 덧붙이건대, 우리 국민들 가운데 아직도 ‘표현의 자유’를 마치 산업화 사회의 방해꾼이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혼란세력쯤으로 생각하는 ‘마음속의 중세인’들이 있다면, 일본 산업사회의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이제야말로 중세인의 찌꺼기를 완전히 털어내 버리면 좋겠다.

한국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세계에서 가장 활짝 꽃 피울 때, 한민족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문명을 주도하는 역동성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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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룰태림(성유보)
· 언론인
· 한겨레신문사 초대편집위원장
·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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