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와 J.D. 샐린저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1.
두 달 전인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집 『아홉 가지 이야기』(최승자 옮김, 2004)와 1963년에 발표한 소설집 『목수들아, 대들보를 올려라』(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2004) 를 읽었다. 두 작품집의 중심은 글래스가(家)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중심인물은 그 집의 장남 시모어 글래스와 차남 버디 글래스다. 시모어는 뮤리엘과 결혼을 하기로 해놓고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아 아우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나, 후에 뮤리엘과 결혼을 하고 플로리다로 휴가를 가서는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자살은 중편‘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벽한 날’에 나오지만 그가 결혼식에 오지 않은 이야기는 중편‘목수들아, 대들보를 올려라’에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둘 사이의 연관을 알 수가 없었다. 40대가 된 버디 글래스가 유능하고 천재적인 형의 예술가적 삶을 회상하면서 독백하는 '시모어 서문(序文)' 은 미학론을 강론한 것이어서 아주 난해했다.
그런데 시모어의 분열적인 특성과 버디의 신경질적인 특성은 샐린저가 1951년에 출판한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이 지니고 있던 특성들이기도 하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뒤 일약 유명해졌지만, 작품을 발표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1919년생인 이 사람은 오랫동안 은둔하고 있어서, 그를 모델로 한 『화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도 나왔을 정도다.
처음에 내가 샐린저의 중편집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손에 들게 된 이유는 그 제목이 내가 현재 집필하고 있는는 어떤 책의 주제와 상당히 관련이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편집 두 권을 끝까지 읽게 된 이유는 소설의 주제나 구성보다도 그 작가가 동양의 고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곧, 중편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는 17세의 시모어가 누이동생 프레니를 위해 손전등 불 아래서 구방고(九方皐)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모어는 구방고의 이야기에서, 외적이고 세세한 것들을 버려두고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응시하라는 가르침을 중시했다. 이 가르침은 실은 버디 글래스가 회고하는 시모어의 예술적 지향에서도 나타나고, 버디 글래스가 형 시모어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도 나타난다.
시모어가 읽어 준 책의 이름은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서는‘도교에 관련된 이야기’라고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구방고 이야기는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나온다.
진(秦)나라 목공이 좋은 말[馬]을 구하려고 했을 때, 말을 가려 알아보는 백락(伯樂)이 자기보다 말을 더 잘 알아본다는 구방고를 추천하였다. 목공이 그를 보내었더니 석달 만에 돌아와, 사구(沙丘)에서 천리마를 찾았다고 보고했다. “어떤 말인가”묻자, “암컷이고 털빛은 누릅니다” 하였다. 목공이 사람을 시켜 말을 몰고 와 보니 수컷인데다가 흑색이었다. 목공이 백락을 불러, “말을 구해 놓았다는 사람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황색인지 흑색인지도 모르니 어찌 좋은 말을 알아 보았겠는가”라고 책망했다. 그러자 백락은 “구방고는 말의 상(相)을 보는데 천기(天機)만을 보고 암컷ㆍ수컷, 황색ㆍ흑색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잊은 것입니다.” 하였다. 구방고가 찾은 말은 과연 천하제일의 준마였다.
이 이야기는 본질은 도외시하고 겉모습만 살피는 세태를 비판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고사는 외관을 돌파하여 내면에 육박하는 시점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된다.
저 추사 김정희는 명나라 여수구(黎遂球)의 글씨를 품평한 듯한 글에서 “서법도 확실히 아름다워 송설(松雪, 원나라 조맹부)의 문정(門庭)에 있다 하겠고 솔경(率更, 당나라 구양순)에 이르러는 여황(驪黃)의 밖에서 터득한 것이니 반드시 색상을 가지고서 찾을 것은 아니라 생각되네”라고 했다. 여황은 흑색과 황색이니, ‘여황의 밖에서 터득한 것’이란 말이 곧 ‘암컷ㆍ수컷, 황색ㆍ흑색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과 통한다.
2.
그러고 보니, 추사야말로 대상에 구속되지 않고 대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속에 긴장과 이완의 두 국면을 담은 예술가였다. 그의 시는 유례없이 고도한 정신성을 담고 있고, 지적 결벽성을 드러내고 있다. 추사는 대상에 구속되기보다는 대상과 주체와의 만남에서 일어나는 흥회(興會)를 중시했다. 이 예술적 경험은 선종의 돈오와 유사하다. 추사는 그것을 신통유희(神通遊戱)라고도 하고 유희삼매(遊戱三昧)라고도 했다.
추사가 국화를 노래한 시 가운데 「사국(謝菊)」이 있다. 국화에게 감사한다는 뜻이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쁘나니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로다.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은 화려한 얼굴이니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 버티누나.
暴富一朝大歡喜(폭부일조대환희) 發花箇箇黃金毬(발화개개황금구)
最孤澹處?華相(최고담처농화상) 不改春心抗素秋(불개춘심항소추)
국화의 노란 꽃을 황금 구슬에 비유하고 국화의 고담한 맛은 오히려 흐드러진 꽃의 상(相)에 드러나 있다고 했다. 가을 국화야 말로 봄의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가을을 이길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국화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높이 살 것이다. 추사는 달랐다. 통념을 뒤집었다. 젊은 날의 농염하고 화려한 꿈과 상상과 생명의 기억이 없다면 어찌 가을을 견디랴.
「산사(山寺)」시에서 추사는 홍진과의 결별을 말하되, 세상을 혐오하는 미진의 마음도 없다. 감실 불상도 나에게 말을 걸고 산새가 나를 반기는 그런 진경 속에서, 나와 자연이 일체가 이루는 평온한 심경이 드러난다.
비낀 봉우리 연이은 산령이 하나하나 진경
종전에 잘못 열 길 홍진 속에 있었다니.
감실 불상은 사람보고 얘기하려는 듯하고
산새는 새끼 데리고 날아와서 반기네.
홈대의 맑은 물로 차 끓여 마시고
화분의 담담한 봄꽃을 공양하나니
콧물 닦는 그 공부를 그 누가 터득했으랴
일만 골짜기 솔바람에 한바탕 기지개 펴노라.
側峯橫嶺箇中眞(측봉횡령개중진) 枉却從前十丈塵(왕각종전십장진)
龕佛見人如欲語(감불견인여욕어) 山禽挾子自來親(산금협자자래친)
點烹?竹冷冷水(점팽견죽냉냉수) 供養盆花澹澹春(공양분화담담춘)
拭涕工夫誰得了(식체공부수득료) 松風萬壑一嚬申(송풍만학일빈신)
식체공부(拭涕工夫)는 당나라 고승 나찬(懶瓚)의 고사에서 가져 온 말로, 속인의 뜻에 맞추는 공부를 뜻한다. 나찬은 형산(衡山)에 거처하며 잔암(殘巖)의 석굴 속에서 게을리 지냈다. 덕종(?宗)이 사람을 보내 조칙을 내려 부르자, 추위에 콧물이 가슴까지 내려왔다. 사자가 웃으면서 콧물을 닦으라고 권하자, 나찬은 “내가 어찌 공부가 있어서, 속인 때문에 콧물을 닦는단 말이요(我豈能有工夫爲俗人拭涕耶)?”라고 했다. 끝내 그를 불러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 구절의 빈신(一嚬申)은 ‘얼굴 찌푸리며 고통 하는 소리’가 아니다. 一嚬申은 一嚬伸과 같으며, 그것은 흠신(欠伸)한다는 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불출문(不出門)」 시에 “배불리 먹고난 후 다시 침상을 털고는, 잠 들었다 깨어나 한바탕 기지개 켠다(食飽更拂床, 睡覺一嚬伸)”고 했던 낙천(樂天)의 마음 경계를 나타낸다.
게다가 추사는 49세 때인 1084년에, 동파 소식이 남방 불교의 성지였던 여산십구봉(廬山十九峰)의 서림사를 찾아갔다가 남긴 시(?題西林壁?)의 뜻을 발전시킨 것이다. 동파는 장소와 각도에 따라 여산의 모습이 바뀌는 현상을 보고, 지각과 경험에 의존하는 인간의 어떠한 인식도 결코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다는 철학적 주제를 생각했다. 그는,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려면 주관을 벗어나야 한다는 발상을 다음 시로 표현하였다.
가로로 보면 산맥, 가까이 보면 솟은 봉우리
높낮이 원근이 위치 따라 다르다.
여산 진면목을 모르는 것은
이 몸이 이 산 안에 있기 때문.
橫看成嶺側成峰(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지연신재차산중)
‘이 몸이 이 산 안에 있다’는 것은 자기의 주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뜻한다. 이 이후로 선가(禪家)에서는 인식주관이 도달할 수 없는 참된 본질을 ‘여산의 진면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추사는 이 시의 처음 구절을 이용하되 ‘비낀 봉우리 연이은 산령이 하나하나 진경’이라고 했다. 객관의 참된 본질에 도달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아니, 적어도 넘어서려고 한 것이다.
3.
샐린저는 인식주관과 대상의 합일, 무화(無化)의 극복을 이루어낸 예술장르로 선시(禪詩)와 하이쿠[俳句]를 존중했다. ‘시모어 서문’에서 그는 버디의 음성 뒤에 목소리를 숨기고 시모어의 시 속에 자신의 글을 감추어,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을 받은 시들이 그렇듯, 시모어의 시들 역시 모두 알몸뚱이였으며, 늘 장식이 없었다’고 했다. 풍화를 받아들이면서 풍화를 견디는 시의 세계를, 그는 꿈꾸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禪)의 깊은 경지를 체득하고 그 정신경계를 드러낸 추사의 시야말로 풍화를 받아들이면서 풍화를 견뎌낼 진정 위대한 문학이 아닐까. 그런 추사를 이해하려면 지금 시점에서 그의 시를 새로 번역해야 하리라.
글쓴이 / 심경호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일본 교토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중국문학) 수료, 문학박사
·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의 조교수
· 현재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다산과 춘천』, 『한문산문의 미학』,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국문학연구와 문헌학』, 『김시습평전』, 『한시기행』, 『한시의 세계』, 『산문기행』,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한학입문』(황소자리),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내면기행』 등이 있음.
· 역서 : 『주역철학사』, 『불교와 유교』, 『일본한문학사』, 『금오신화』, 『당시읽기』, 『한자학』, 『역주 원중랑집』, 『한자, 백가지 이야기』,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 『일본서기의 비밀』, 『문자강화』, 『증보역주 지천선생집』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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