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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2세기시인 작품상, 젊은시인상- 김이듬, 송승언

문근영 2018. 10. 23. 03:41

<22세기시인작품상 수상작>


표류하는 흑발 (외 6편) 

                                                                                우리들을 사랑으로부터 구하소서

                                                                                                        ─ 수잔 브로거

 

     김이듬


 

국자에 뻐끔한 쇠옹두리가 걸린다 꽤 곤 뼈에는 터널이 있다

굴다리 아래 애 업은 여자가 뛰고 있었다 포대기에서 두상이 떨어졌다 내게 굴러왔다

무심코 발로 차 강으로 보냈다 거지 여자는 미친년이었고 여전히 뛰고 있었다

아저씨네 앞마당에서 암소가 울었다 더 짧게 교복 치마를 접어 올렸다


뼈를 보내왔다 발신자 얼굴은 모른다 배 잡고 웃었다 앙상한 다리 부풀어 오른 배 위에

뱀 무늬로 터진 피부가 있다 우는 개구리 잡아먹고 싶다 어두워지기 직전에 여름이 있다


체질이 바뀌었다 사랑하는 엔트로피 과다한

바닥과 수평이 되면 두려움이 주는 매력에 사로잡힌다 사색은 예쁜 색


갓난애는 실금 많은 혼혈아 달 무늬보다 수평선보다 멀리 금을 그었다 그 애는 우유 나

는 시리얼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잠재된 푸른 눈은 발아하고 다른 형상은 차차 장대한 망

각으로 가기를

 병원비만 내주세요 인터넷 거래는 쉬웠다 최소한의 지문도 찍지 않은 몸 핏기 없는 달

덩이 싸매고 사라지는 젊은 부부 중요한 건 여담 아기바구니까지 차비 들 일 없다


마을의 모든 소가 구덩이를 향해 가고 구름을 보기 전에 폭우가 내리던 날 오오 보드라

운 머릿결은 허벅지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가 다시

목숨을 걸 만큼 재밌는 게 없을까 저건 뭘까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강 너머 흰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둥그런 거


 

     —《문학과사회》 2015년 봄호

 

[심사평 발췌]

지난 1년 동안(2014년 봄호~2015년 여름호) 수준 높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한 시인들 중에서 등단 10년 이상 된 한 분을 본상 수상자로 결정했고, 등단 10년 미만인 한 분을 젊은시인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심사는 웹진 22세기시인모든 편집위원(주간, 부주간 포함)이 맡아 했는데 김이듬 시인은 다음과 같은 평을 받았다. “몇 줄 언어로 세계를 소환하는 마녀, 지금 현단계 우리 시단에서 가장 유니크한 시인”(장석주), “피와 감정이 스스로 뒤섞이니까 새로운 풍경을 생성하고 있다”(송재학),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시의 경계를 벗어나 구르고 충돌하고 솟구쳐 오른다”(송찬호), “자신을 음악처럼,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석방할 때, 그의 죄는 더 견고해지고 더 처절해지고 더 아름다워진다.”(오태환)

 

 

 

 

<22세기시인젊은 시인상 수상작>

 

  빛의 파일 (외 4편)

           

     송승언

 

 

 

   나는 악보를 쓰고 버렸다. 그리고 버렸다. 버린 악보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나는 건물을 잘 몰랐다. 건물도 나를 잘 몰랐다. 우리는 계단으로 규칙을 세웠다. 낯선 이로서, 낯선 곳으로서. 아무런 장식 없는 건물. 좀처럼 빛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양식. 시멘트 안으로 목소리가 튕겨 나왔다. 건물이 나를 곡해한다는 증거. 해석되지 않는 건 없었다. 해석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시멘트가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쓸 수 있었다. 썼다. 쓰고 버렸다. 그리고 버렸다. 건물은 몇 장의 악보가 되었다 헐렸다. 건물은 불안 증세를 보였다. 건물은 흔들렸지만 나는 어쩐지 꼿꼿했다. 혹시 나는 건물 바깥에 있는 걸까? 건물을 벗어난 채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고개를 들자 쏟아졌다. 버린 악보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빛이 쏟아지는 소리. 시끄럽다. 옥상이다. 아니. 지하 창고다.

 

 

      —《시로 여는 세상》 2014년 여름호

[심사평 발췌]

송승언 시인에겐 다음과 같은 평이 따랐다. “제대로 조형된 축조물을 감상하듯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김요일), “상징계와 실제계의 경계를 배회하며 생성의 모습을 탐구한다.”(황치복), “그의 흐릿한 시선에 내 시선이 겹쳐지는 순간 시가 태어나기 시작한다.”(김태형), “막 탄생하려는 것들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 에너지들의 총합은 미분화된 세계가 지닌 역동성으로 전환되어 세계에 균열의 동인으로 작동한다.”(서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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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수상자의 수상작과 수상소감, 심사평은 6월 말에 발간된 <22세기시인>(무크지) 창간호에 실리고, 시상식은 20157월 중에 열릴 예정이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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