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탑 / 최길하
탑은 탑보다 그림자도 그냥 그림자가 아니라 물고기떼 집이 돼주는 물 속 그림자가 더 좋다 물 속 그림자도 뭉게구름 몇 장 데리고 노는 늙으신 탑이 더 좋다 아침마다 마당을 쓸어놓고 등불같은 까치밥 쳐다보는
<화엄경>이 참 심오하고 좋다고 하여 그것만 터득하면 마음에 환한 꽃밭이 한 마지기 생기는 줄 알고 책을 사서 읽어보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요. 그래도 심심하면 바람이 책장 넘기듯 뒤적뒤적하다 덮고 하기를 몇 십 년 했습니다. 시조를 쓰고 있습니다. 성을 쌓고 스스로 성에 가두어진 성주와 성 안에 백성이 있는 연방을 바라보면서 소외자가 치고나갈 방편으로 시를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심사평]
“번잡 벗어도 ‘결핍’은 없었다 절간 해우소와 노모의 응가에도 시의 시야가 꽂혀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환경미화원의 미덕에도 가 있다. 찜질방에도 가 있다. 멀리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스페인 그라나다도 지나친다. 물론 <불교신문> 응모이므로 산사나 불교정서에 발걸음을 상습적으로 하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조쪽이 저조한 반면 자유시 쪽의 역량은 그야말로 당당한 군웅할거(群雄割據)이다. 자유시의 경우 그 지적인 표현능력의 수준이 놀라울 정도였다. ‘월식’은 착실하다. 어머니의 내실 반지고리에 성장과정의 향수가 밀집한다. ‘호미로 새긴 금성모자’ 역시 농경사회의 한 정경이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사상(事象)을 구현한다. ‘농점 6호’ 역시 벼농사의 첫 사례가 정교한 공감을 자아낸다. 농업적 지성이 여기에 있다. ‘궁극의 시간’은 청각언어의 묘미를 재미나게 살리고 있다. 우리말의 의성어로 궁극의 의미를 포착하는 재치가 있다. ‘배꼽이다’는 이만한 현실감각에서의 깊은 자의식은 기성시단에서고 귀중한 현상이다. 하지만 의식의 노출이 감동보다는 충돌하는 기호의 역설에 기울어지고 있다. 이런 나머지 ‘탑’으로 당선작을 삼는다. ‘둠벙…’과 ‘배꼽…’이 아깝다. 내 마음으로는 셋을 한꺼번에 뽑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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