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 미움받는 이유
학문이 세상에서 증오하는 바가 된 것이 오래입니다. 똑바로 앉아 깊이 생각할 때는 양심이 조금 드러나다가, 사람을 대하고 사물과 마주해서는 문득 아양 떨어 용납되기만을 구하려 듭니다. 농부를 만나면 농사일을 말하고, 장사치를 만나면 장사 일을 말하지요. 대부분 자기를 버리고 외물을 따르는 것을 면치 못하니, 실로 평생의 고질입니다. 이제 그대의 말은 모두 시원스럽고 우뚝하여 만 명의 사내로도 빼앗기 어려운 기상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온갖 싹을 북돋워 시든 풀을 소생시키기에 충분하니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주신 글에서 미처 다 말하지 않은 대목이 있습니다. 대개 근일의 박잡한 병통은 바로 스스로 박잡하게 된 것일 뿐입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일종의 풍기가 휩쓸 듯 땅에 퍼져 동서남북이 온통 뒤섞여 투합하니, 또한 어찌 말미암은 바가 있어 그런 것이겠습니까? 도의 언덕은 하늘에 맞닿았는데, 사다리와 계단은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혹 내게 미처 도달하지 못한 곳이 있거든 또한 마땅히 더 공부하고 더 우러를 따름입니다.-〈방산에게 답함[答方山]〉 8-100
學問之爲世所憎惡久矣. 端居深念, 良心微見, 及至對人接物, 輒欲求媚取容. 遇農說農, 遇賈說賈. 率未免棄己而殉物, 誠平生痼疾. 今足下之言, 皆磊落軒昂, 有萬夫難奪之氣, 斯足以鼓羣萌而蘇衆萎, 不其幸歟. 但來敎煞有說不去處, 蓋近日駮雜之病, 卽其自駁而自雜耳. 異哉! 一種風氣, 靡然布地, 東西南北, 混然投合, 亦何嘗有由而然耶. 道岸極天, 梯級有差, 或我有見未到處, 亦當鑽之仰之焉已矣.
학문이 미움받는 까닭은 학자가 자기 주견 없이 부화뇌동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대상과 처지에 따라 이리저리 말을 바꾸기 때문이다. 학문하는 보람은 든든한 자기 중심을 지녀,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체를 세우는 데 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그 높이에 걸맞는 사다리와 계단이 있어야 한다. 사다리의 높이가 조금만 부족해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든든히 주체를 세워라. 부족하면 더 노력해서 사다리가 닿을 때까지 더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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