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성 진(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다가서면서 사실상 3차 오일쇼크가 시작되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유가의 고공행진은 물가폭등과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서민경제의 몰락을 불러와,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현재 다른 나라에 비해 유가상승의 고통을 훨씬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것은 우선 에너지소비량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에너지수입국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해에 950억달러가 넘는 돈을 에너지구입에 지출하면서도 소비량증가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중 하나이다. 또한 석유와 석탄, 가스가 일차에너지소비량의 80%를 넘을 정도로 화석에너지의존도가 높아 에너지구조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매우 후진적이다.
30여년전과 바뀌지 않은 상황과 대책 놀라운 것은 이러한 한국의 에너지상황이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겪었던 7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거와 달리 논란 많은 원자력이용이 대폭 증가했을 뿐이다. 70년대 당시에도 당연히 한국경제는 화석에너지 다소비형구조로 인해 유가상승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었다.
지난 6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다급히 고유가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주요 내용을 들여다보면 공공부문의 승용차홀짝제, 관용차운행감소, 실내온도조정과 엘리베이터사용제한 같은 강제적 억제수단들로서 30여년 전 오일쇼크시절을 답습한 듯한 대책들이다. 문제는 박정희정부스타일의 관치주의적 단기처방이 일시적인 반짝효과만 거둘 뿐 이러한 위기를 에너지전환의 기회로 바꿀만한 근원적인 해결방향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는 70년대 석유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정부와는 눈에 띄게 다른 선택을 했다. 우리와 비슷하게 에너지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했던 일본은 정책적으로 과감한 산업구조조정을 추진해 에너지다소비적이고 환경부담이 큰 전통산업에서 에너지효율성이 크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신산업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렀다. 이와 동시에 정부가 에너지절약과 효율성향상을 위한 다양한 규제수단을 도입하며 에너지에 대한 기업투자와 신기술개발을 강하게 유도해 나갔다. 그 결과 일본은 오늘날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효율과 신재생에너지기술을 보유한 국가가 되어 이를 통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올리고 있다.
똑같은 위기를 겪으면서 그 근본원인을 다스리고 미래를 보는 정책에 집중한 국가와 근원은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장사에만 급급했던 국가가 또다시 찾아온 동일한 위기로부터 받는 영향이 전혀 다르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현재의 에너지위기는 생태적 현대화가 해결책 현재의 석유위기는 70년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온난화와 지구환경규제에 따라 에너지공급에 있어서도 경제적 효율성과 함께 지속가능성이라는 환경적 요구를 동시에 해결해야하는 과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3차 오일쇼크로 불리는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는 과거 일본의 선택수준을 뛰어넘어 지속가능한 신산업체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지속가능 신산업은 기술진보의 방향과 내용을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서 경제적 비용감소와 환경친화적 혁신을 동시에 촉진시키는 생태적 현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를 중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얻어지는 기술개발과 혁신은 에너지와 원자재, 운송수단, 공간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주고 환경적 위험은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새로운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는 글로벌시장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장이 생태적 건강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참세계화의 방향이기도 하다.
규제철폐가 아닌 현명한 규제가 필요 신산업 기술혁신에 관한 사례들을 조사해보면 생태적 현대화의 성공은 결코 시장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기술혁신은 이와 관련된 정책적 장치를 필요로 하며 그것이 바로 ‘현명한 규제(smart regulation)’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명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한 예로 필립스의 뛰어난 녹색전력기술은 에너지지침(EUP Directive)이라는 EU의 ‘선한 규제수단’이 기업의 기술개발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 결과물이다.
촛불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정부주장과 달리 국민들은 오히려 현 정부정책으로는 삶의 질이 더욱 나빠질 거라는 우려 때문에 촛불을 지키고 있다. 토목성장위주의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진정성 있게 버리고 지속가능한 신산업으로의 변화를 서두르는 것만이 지금의 에너지위기와 촛불정국의 진정한 해법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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