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門 / 김인구

문근영 2018. 3. 17. 09:59

 

   김인구

 

 

 

공장 문을 닫았다

폐업 신고가 되지 않는다

설핏 얼룩이 다녀간 공장 내부에선 아직

수명이 다하지 않은 기계 부품들이 기척을 내며

햇살의 그림자가 놓일 창틀의 오후를 필요로 한다

조금 열린 창 너머로 적당한 먼지를 품은 햇볕들은

여전히 제집처럼 공장 안을 들락거린다

쉰 소리를 내며,

신음 소리를 삼키며

근근이 가동되는 낡은 기계들의 엄살이

공장 문에 기대어 농성 중이다

뜨거운 물을 틀어본다,

흘려보내 본다,

흐르는 물소리가 희미한 기계 작동음들과 뒤섞이며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제 흔적만큼은 기억해 달라고 아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온갖 회로와 통로를 통해 저마다

육성과 주파수를 나누어 보낸다

문을 닫아도 폐업 처리가 되지 않는 공장들의

낡아가는 벽돌과

연기가 끊어진 굴뚝과

쓸데없이 예민해지는 안테나는

공장 내부를 지키는 명분이다

 

숭고한 그늘 한켠이 천천히 태어나는 오후 네 시

해 넘어가는 풍광을 배경으로 또 다른 하나의

문이 열린다

낯설지 않은 문이 열린다

 

 

 

                       —《시인동네》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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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집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등단. 시집『신림동 연가』『아름다운 비밀』『굿바이, 자화상』등.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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