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옥수수밭
채수옥
의자가 모자랄 때
당신의 엉덩이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입속에선
시린 이빨들이 달그락거리고
껍질을 벗겨낼수록
새콤해지는 이야기들
어금니 사이에 낀 부추처럼
나는
침묵의 행간에 박혀 있다
햇빛은 무한 리필이 되고
탁자 위로 쏟아지는 옥수수 알갱이들
벌써 수염을 달았다
여기는 고령의 사회
푸른 팔들 척척 늘어뜨리고
질긴 시간들을 씹어 삼키느라 출렁거리는
한낮의 카페 안
탁자 밑에는
백발의 수염들이 길게 자라나
쭈글쭈글한 의자가 되고
의자에 앉은 우리는
옥수수가 되고 저녁이 되고
전설이 되어간다
—《현대시학》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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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옥 / 1965년 충남 청양 출생.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2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비대칭의 오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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