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세계문화유산(759)/ 칠레/ 라파누이 국립공원

문근영 2018. 1. 26. 08:46

세계문화유산(759)/ 칠레

 

라파누이 국립공원(Rapa Nui National Park; 1995)

 

 

Ahu Akivi moai that face the ocean

 

 

Rano Raraku volcano from the south

 

 

 

Outer slope of the Rano Raraku volcano, the quarry of the moai with many uncompleted statues

 

 

 

 

 

 

 

 

 

 

 

 

 

 

Rano Kau crater

 

 

Rapa Nui, Easter Island

 

Restored stone houses at Orongo

 

 

 

 

 

 

Moai at Rano Raraku, Easter Island

 

Monument in Rapa Nui

 

Tukuturi, a moai at Rano Raraku

 

The moai with headgear at Ahu Tahai, restored with coral eyes by the American archaeologist William Mullo

 

 

 

 

 

 

 

 

 

 

 

 

 

 

 

  라파누이 국립공원은 발파라이소 주[Province of the Valparaiso]의 이스터 섬[Easter Island]에 위치한 칠레의 국립공원이다. 고유 명칭인 라파누이는 원주민의 언어로 큰 섬이라는 뜻이다. 300년 무렵 섬에 정착한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기념비적인 조각과 건축으로 강력하고 독창적인 고유의 전통을 수립했다. 이 섬은 10~16세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킬 만한 탁월한 문화 경관을 지니고 있다. 이곳의 폴리네시아 인들은 신전과 모아이(moai)로 알려진 수많은 인면 석상(人面石像)을 세웠는데, 이는 독특한 문화 현상을 증명한다. 동굴 안의 벽화와 주거지 터 등의 라파누이 문화도 이 유적에 포함되어 있다.

  라파누이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문화적 현상을 포함하고 있다. 강력한 힘과 상상력을 지닌 예술적건축적인 전통은 1,000년 넘게 외부의 다른 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고 완전히 고립된 사회 속에서 발전했다. 이러한 문화 흔적은 자연 환경과 어울려 대부분 비교할 수 없는 문화 경관을 창조하고 있다. 300년 무렵, 아마도 마키저스(Marquesas) 제도에서 이주해 온 폴리네시아 인들이 이곳 라파누이에 정착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곳에 석기시대 사회를 조성했다. 이후 유럽 인들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다른 종족의 문화가 유입된 흔적이 없다. 10~16세기에 섬 공동체는 계속 확대되었고, 정착지는 실질적으로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동체 사회는 문화수준이 높았으며, 이는 기념비적인 모아이와 제례용 신전 아후(ahu) 그리고 상형문자[rongo rongo]로 잘 알 수 있는데, 오늘날까지 상형문자의 뜻을 판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6세기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환경이 파괴되면서 공동체 내의 경제적사회적 위기가 닥쳤다. 2개의 씨족집단은 계속해서 전쟁을 치렀는데 이런 상황에서 용사 계급은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용사 계급은 오롱고(Orongo)의 해안가를 기점으로 조류 숭배를 하게 되었다. 용사 계급은 종교 조각상 건물을 건축하면서 모아이와 아후를 대부분 무너뜨리고 경시하였다. 1722년 부활주일에 동인도회사의 네덜란드 인 야코프 로게벤(Jacob Roggveen)이 섬을 발견했고, 이곳에 유럽식 이름을 붙였다. 그 후 1888년 이곳은 칠레로 통합되었다. 라파누이의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특징은 모아이, 원주민들은 모아이가 마을과 종교의식으로서 지역을 지켜 주는 신성한 조상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모아이는 약 900개 가량 남아 있었으나, 대부분은 16~17세기에 일어난 부족 항쟁으로 파괴되었다. 7세기부터 1,000년에 걸쳐 만들어진 모아이의 상은 부족장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전해진다. 크기는 높이 2~20m인 것까지 다양하며, 단단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곡괭이[toli]로 화산암재에 조각하고 이것을 경사진 내리막길 아래로 가지고 와서 이전에 파 놓은 구멍 속으로 집어넣어 세웠다. 채석장 안에 여전히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는 많은 모아이는 제조 방법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몇몇 모아이에는 푸카오(pukao)로 알려진 적색돌 조각도 남아 있는데, 이것은 조그만 화산인 푸나파오(Punapao)에서 추출한 것으로, 특별한 의식상의 지위를 나타내는 머리 장식물로 알려졌다. 모아이는 초기의 작고 머리가 둥글며 눈이 둥근 형상에서부터 크고 세심하게 새겨진 손가락, 콧구멍, 기다란 귀 등의 특징들을 갖춘 것 등이 있다. 모아이의 형상의 변화를 볼 때 크기와 형태면에서 뚜렷한 스타일의 진화가 있었다. ‘아후라고도 불리는 제례용 신전은 크기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잡돌을 채워 가공한 큰 돌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받침대,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둥근 자갈로 고르게 한 경사로, 받침대 앞쪽에 평평하게 골라진 지역 등은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몇몇 아후 위에는 모아이가 있고, 유골의 흔적이 발견된 무덤도 몇 개 발견되었다. 아후는 일반적으로 해안에 있으며, 동쪽과 평행을 이뤘다. 조류 숭배[Birdman cult]와 관련된 종교적 풍습의 중심지인 오롱고의 제례 마을에는 이전에 섬에 살던 사람들이 건축한 50개의 반 지하 돌집(hare)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반지하로 된 돌집들은 우뚝 솟은 절벽 아래 근접한 란 카이(Ran Kay) 분화구의 가장자리에 있는데, 이 돌집에는 솥이나 벽난로농장 건물과 돌로 만든 닭장 등의 구조물이 있었다. 섬의 해안가 주위에 있는 유적 단지는 때때로 둥근 탑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의 지질학적 특징은 해안 주변에 동굴[ana]이 많다는 점이며, 주민들은 이 동굴을 주거용으로 일시적으로 사용하다가 동굴 입구에 돌담을 쌓아 개조하기도 했다. 이들 돌담에는 신, , 풍요를 상징하는 것들이 그려져 있다.

출처 : 댕견 그리고 우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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