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물 TV연속극을 보는 재미는 그런대로 쫌쪼롬합니다. 사실인 점도 없지 않지만 과장과 확대해석이 대부분임을 역력히 알면서도, 극적인 장면들 때문에 거짓에 속는다고 여기면서도 재미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요즘 ‘이산’이라는 연속극이 화제만발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다산 정약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산’이 얼마나 과장된 내용으로 시청률을 높이는가를 관심있게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주인공은 정조와 정순대비 김씨입니다. ‘성송연’이야 꾸민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벽파의 끈질긴 모략 중상과 음모비계에도 굴하지 않고 영조의 뒤를 이어 1776년에 25세의 세손 ‘이산’이 임금의 보위에 올랐습니다. 1777년이 정조 원년으로 정조가 붕어한 1800년까지 24년의 정조 치세가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문예부흥기’가 도래한 셈입니다. ‘규장각’을 신설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양성해내고, 빛을 보지 못하고 응달에서만 지내던 서얼 출신들이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는 등,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채제공·이가환·정약용 등 남인계열이 힘깨나 쓰는 지위에 오르기도 하고, 학술과 문화에 깊은 조예가 있던 학자군주 정조의 독특한 통치 스타일이 민심을 얻으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하였고, 정조의 등극을 절대로 반대했던 정순대비 김씨는 정조의 엄명에 의해 전혀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24년의 세월을 밀폐된 공간에서 숨을 죽이고 살았던 사람이 김씨였습니다. 완전히 소탕할 수는 없었지만 벽파는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약화된 세력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1800년 6월 28일(음력) 정조의 승하로 음지의 정순대비가 다시 햇볕 아래로 나와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서고 맙니다. 11세의 순조가 즉위하자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이른바 ‘수렴청정’이라는 제도에 의해 왕권을 행사하는 최고통치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잃어버린 ‘24년’이라고 할까요. 정조에게 신임을 받았던 시파나 남인들은 온갖 죄명을 무릅쓰고 죽거나 귀양 가고, 온 조정에는 24년 전의 벽파세력들이 다시 차지하여, 24년의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던 모든 제도를 깡그리 뒤엎고 벽파의 보수논리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순조 즉위 초년인 1801년, 신유년 천주교 탄압은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207년이 흐른 2008년, 지난 10년의 세월에 공도 있고 과도 있을 테니 공은 더 키우고 살려내서, 개혁을 후퇴시키고 보수로 회귀하여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매관매직과 탐관오리들의 발호 때문에 끝내는 나라가 망하는 비운에 이르고 말았던 전철을 밟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가 신임하던 신하였다는 이유로 18년의 귀양살이에, 18년의 미복권 상태로 살다가 75세로 영면하고 말았습니다. 다산 같은 학자들이 국가를 위해 기여할 길이 차단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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