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742)/ 볼리비아
사마이파타 암벽화(Fuerte de Samaipata; 1998)
Samaipata
General view of the El Fuerte temple
Sloping parallel slots cut in the rock. The Incas used the top of the rock for human and animal sacrifices. Blood ran through one slot and water trickled down the other.
Niches cut in the rock. This is where the Incas kept mummies
Circular rock carving. (Approx. 1 metre diameter.)
Lateral view
산타 크루스 지방[Department of Santa Cruz] 플로리다 주[Province of Florida]에 위치한 사마이파타의 고고학적 유적지는 종교 의식의 중심지로 보이는 조각상이 많이 있는 언덕과 행정・거주 지역인 남쪽 언덕 등 두 지역으로 나누어진 옛 도시이다.(14~16세기) 아래에 있는 마을을 압도하는 거대한 조각 바위는 스페인 점령 이전 라틴아메리카 인들의 전통과 신념을 보여 주는 독특한 증거이다. 이것은 아메리카의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사마이타파는 상당히 발전된 종교 전통을 가진 문화가 안데스 산맥 지역에 존재했다는 뛰어난 증거이며, 거대한 조각 바위 유적지는 당시 지배적인 종교 의식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유적지는 일찍이 300년경 모조코야 문화[Mojocoyas culture]를 향유했던 사람들의 거주 지역과 종교적 의식의 중심지였으며, 거대한 바위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14세기 이 유적지는 당시 수도로 정했던 잉카 인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발굴을 통해 밝혀졌는데, 넓은 중앙 광장[기념비적인 공공건물이 있는]과 이와 이웃한 유적지 근처에 농경을 위한 산등성이가 겹겹이 쌓여 있다는 사실[잉카 인 정착지 형태의 특징]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1520년대 차코 지역의 치리구아노 족[Chiriguanos]의 침략에 대비한 방벽을 건설하였다. 잉카 인을 끌어들였던 이 유적지의 전략적 위치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인지되었다. 포토시의 세로 리코 은광[Cerro Rico at Potosi]이 1545년에 채굴되기 시작했으며, 사마이파타의 식민지 정착은 아순시온과 산타크루스로부터 라플라타[현재의 수크레]와 코차밤바(Cochabamba) 및 포토시 같은 고원의 안데스에 있는 식민지 중심지까지 도로를 만들어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발레 데 라 푸리피카시온(Valle de la Purificacion)에 사마이파타의 새로운 마을을 설립하면서, 고대 정착지는 군사적 중요성을 잃고 버려졌다. 사마이파타의 고고학적 유적지는 두 구역으로 나뉜다. 첫 구역은 구도심에 있는 종교 의식의 중심지라고 판단되는 많은 조각상이 있는 언덕(14~16세기)이며 다른 한 구역은 행정 및 거주 지역으로 이루어진 남쪽 언덕 지역이다. 불그스름한 사암 언덕은 엘 미라도르(El Mirador)로 알려져 있는 높은 지역과 조각상들이 있는 낮은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있다. 서쪽의 조각상에는 원 안에 2개의 고양이 같은 모양과 높게 양각된 조각이 있다. 잉카 시대의 암벽 유적지에는 잉카 이전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수많은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들 옆에는 2개의 평행 수로를 포함하여 지그재그 형태의 조그만 수로가 있다. 이런 특징들로 인해 이 지역은 엘도르소 데 라 세르피엔테(El Dorso de la Serpiente)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가장 높은 지점에는 바위를 잘라 만든 코로 데 로스 사크레도테스(Coro de los Sacerdotes)가 있다. 이것은 움푹 팬 삼각형과 직사각형 모양과 함께 깊게 팬 원을 이루고 있다. 동쪽 더 멀리에는 고양이의 머리 모양을 상징하는 것 같은 구조물이 있었다. 바위 남쪽 면의 대부분은 원래 최소 5개의 사원 혹은 성소가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벽을 잘라서 만든 움푹 팬 곳이 남아 있다. 식민지의 집(Casa Colonial)은 바위의 하단부 인공적인 장소에 위치했다. 발굴 작업을 통해 이곳에서 잉카와 잉카 이전의 구조물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다. 식민지 시대의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낮은 담으로 된 돌집은 중앙에 열려 있는 앞마당을 가진, 아랍 안달루시안 스타일(Arab-Andalusian style)이었다. 바위 언덕으로부터 떨어진 곳에는 주변이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몇몇 조그만 건물들, 즉 잉카의 전형적인 형태로 알려진 칸차(kancha)가 있다. 잉카시대의 행정적·종교적 중심지는 바위의 남쪽 3군데의 인공적 장소에 있었다. 칼란카(Kallanka)로 알려진 거대한 건물이 있었으며, 가장 낮은 토대는 커다란 광장을 통과하여 다다른 바위 위에서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지역이었다. 카란카의 서쪽 두 번째 토대에는 최소 12개의 크고 작은 집, 한때 아클라와시(Akllawasi)로 알려진 H형태로 꾸며진 곳들이 있었다. 세 번째 토대에는 인공적인 언덕 위의 개방공간에 잉카 인의 집 7채가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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