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낮은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엎드려 있는 작은 마을 앞 바다에 방파제가 두 팔 벌려 마을을 넘보는 거센 파도 막아 줍니다. 근심 끝에 파수병 하나 하얀 총 들고 서 있습니다.
멀리 부레옥잠처럼 떠 있는 형제 섬들 너머로 아침나절 조업나간 배들이 돌아오고, 서녘 하늘 피조개 속살 같은 노을이 만선한 어부들 얼굴에 단풍으로 피어났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면 보초선 이등병이 아직 귀환하지 않은 전우들을 위해 반딧불처럼 기별을 보내고, 육지에선 촛불이 활화산 마그마처럼 흘러 바다까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마을 초입에 서서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보며 소매 끝 눈으로 가져가는 노모와 먼저 간 아내를 위해 우리들의 아버지는 작은 촛불 켜고 착착착 잘도 돌아옵니다.
아침에야 걱정 거두고 잠이 든 등대 안쪽 부두엔 옆구리 맞대고 늘어선 배들이 잠시 낮잠을 잡니다. 수협 앞에서 파시가 펼쳐지고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등 푸른 지갑을 엽니다. 돈 좀 챙긴 아버지들 소주 몇 잔 나누며 서울 간 자식 걱정에 한숨 자다가 또 바다로 나갑니다.
출처 : 문근영의 동시나무
글쓴이 : 문근영 원글보기
메모 :
'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문화 [2019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윤진 `소(沼)` (0) | 2019.01.01 |
---|---|
[스크랩] 2018 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박쥐`…윤여진 (0) | 2018.01.02 |
[스크랩] 2018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부문]이인애 `가위질은 이렇게` (0) | 2018.01.02 |
[스크랩] 2018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미륵을 묻다 / 김형수 (0) | 2018.01.01 |
[스크랩] 2018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새살 / 조윤진 (0) | 2018.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