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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시족의 음악 / 깅명관

문근영 2017. 12. 8. 00:41

제73호 (2008.1.9)


나시족의 음악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2007년에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 운남성을 며칠 다녀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곳 풍광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고 싶다.


여행 중 소수민족 음악 CD를 몇 장 사 왔다. 연구실에서 종일 그 음악을 들으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장족 출신의 여성 가수가 부르는 맑고 높은 노래는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다. 싼 값에 구입한 몇 장의 CD로 내 귀는 여태껏 누리지 못했던 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경험, 음악의 다양성을 절감


나는 음악이라면 입도 벙긋 못하는 사람이다. 서양 클래식이라면 더욱 그렇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독주는 듣고 혼자 좋아할 뿐, 음악의 형식이나, 작곡자와 연주자 등은 거의 모른다. 음악적 재능은 아예 싹수도 없고, ‘음치’란 불명예스런 칭호를 오랫동안 달고 지내왔기에, 음악에 관해서는 한 줄이라도 읽고 공부할 의지도 욕심도 없이 살아왔다. 이런 까닭에 클래식이란 그저 경원의 대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이제야 하는 고백이지만, 클래식과 서구음악을 보편음악이라고 생각하며(아니 더 솔직해 말하자면, 생각도 안했다. 그저 그것은 나에게 그냥 ‘음악’으로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잔뜩 주눅이 들어온 나에게 소수민족 음악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소수민족의 음악을 접하는 그 순간 홀연 ‘음악’의 다양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머리로가 아닌 몸으로 겪은 정말 이상한 체험이었다.


운남을 다시 찾는다면, 나는 풍광보다 그 노래를 부른 사람, 그 악기를 연주한 사람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찾을 것이다. 혹여 인생을 한 번 더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연구자의 길을 걸을 수가 있다면, 소수민족 연구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러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소수민족은 중국인인가? 중국 56개 소수민족 중 26개 소수민족(인구 4천 명 이상)이 운남에 살고 있다. 이들의 언어와 역사, 종교, 복색, 생활풍습은 각기 다르다. 그들은 ‘중국’의 평균적 기준에서 보면,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다.


운남은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정복 이후 완전히 중국의 판도에 들어왔다. 운남 사람들은 험준한 산맥을 보장(保障)으로 여겼지만,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었던 것처럼, 쿠빌라이 역시 그 험한 산을 넘어 운남을 정복했던 것이다. 쿤밍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서점에서 훑어본 책자에는 이때부터 운남의 소수민족이 중국민족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민족은 동일성을 갖는 인간의 집합이다. 그런데 언어와 종교, 복색, 생활풍습이 완연히 다른 사람들을 동일한 민족이라 묶는다면, 그 동일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더욱이 소수민족이 살던 운남을 정복했던 원나라는 몽고족이었다. 그렇다면 소수민족, 몽고족, 한족의 이질성을 초월하는 중국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족과 언어와 역사, 종교, 복색, 생활풍습이 중국의 평균치와 완전히 구분되는 티베트를 중국인으로 묶는 것은 어떤 논리에서 가능한 것인가.


거대 중국 속에서 나시족 음악은 생존할 수 있을까


곰곰 따져 보면 이질적인 종족들을 동일한 민족이라고 규정하는 근거는, 현재의 국가권력이거나 국가의 건설을 지향하고자 하는 담론의 권력에 있을 뿐이다. 국가는 권력, 곧 폭력을 독점한다. 그 권력-폭력으로 국가는 동일성을 강변하면서 이질성을 은폐한다. 그리고 그 동일성을 교육을 통해 ‘국민’에게 주입하고, 그 국민을 거룩한 ‘민족’이란 어휘와 병용한다. 민족과 국민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남 여행 중 소수민족인 나시족 마을을 찾았다. 마을은 관광지가 되어 중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허접한 관광상품을 팔고 있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났다. 늙은 악사들이 나시족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악단 앞에는 뜻밖에도 서툰 한국어를 적은 판자가 있었다. 나시족 음악이 소멸되고 있으니, 한국인들이 나시족 음악 보존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마는(아니, 속는 것일지도 모른다), 10위안을 던졌다.


아마 나시족 음악은 조만간 사라지거나 아니면 그들의 삶과 유리되어 박물관 진열장 속의 유물처럼 보존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한 중국 속에서 하나의 중국인이 될 것이다. 현대 국민국가의 권력은 자본과 함께 인간과 문화의 다양성을 소멸시키는 중이다. 소수민족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 생각이 그치지 않는다. 하기야 국가도 인간이 만든 것이니, 무엇을 슬퍼하고 원망할 것인가.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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