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김강호
비수보다 날 선 혀를 가두고 있는 거울
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다
철컥 잠근 입술쯤 단숨에 밀어낼 수 있지만
혀는 가부좌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
혹한이 짓누르고 있는 동안
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입덧이 도진 날
아지랑이를 울컥 토하며 입술이 열렸다
봄의 탯줄을 물고 대지로 나온 혀가
화려한 문양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노도의 등줄기 타고 어둠을 무너뜨리는
화려한 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늘만한 방패로도 막을 수 없는 혀의 창궐이
번개보다 빠르게 불 지짐을 놓았다
마른 가슴에 달라붙은 혀들이
봄물을 연신 길어 올리고 있었다
—《시산맥》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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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 1960년 전북 무주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명경대」당선. 시집『아버지』『귀가 부끄러운 날』『팽목항 편지』.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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