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혀 / 김강호

문근영 2017. 12. 4. 23:27

 

   김강호

 

 

 

비수보다 날 선 혀를 가두고 있는 거울

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다

 

철컥 잠근 입술쯤 단숨에 밀어낼 수 있지만

혀는 가부좌한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

 

혹한이 짓누르고 있는 동안

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내 입덧이 도진 날

아지랑이를 울컥 토하며 입술이 열렸다

 

봄의 탯줄을 물고 대지로 나온 혀가

화려한 문양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노도의 등줄기 타고 어둠을 무너뜨리는

화려한 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하늘만한 방패로도 막을 수 없는 혀의 창궐이

번개보다 빠르게 불 지짐을 놓았다

 

마른 가슴에 달라붙은 혀들이

봄물을 연신 길어 올리고 있었다

 

 

                        —《시산맥》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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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 / 1960년 전북 무주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명경대」당선.  시집『아버지』『귀가 부끄러운 날』『팽목항 편지』.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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