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구조론
권혁웅
네가 내 아래서 앗 뜨거, 뜨거 라고 말할 때
말과 말 사이 침묵처럼, 말의 바탕인 침묵처럼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음악처럼
ㅅ나 ㅊ라고 말할 때
네 등이 천천히 젖어들 때
살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내가 네 위에서 땀을 흘릴 때
그 땀이 운명의 손에 튀어 앗 뜨거, 뜨거 라고 놀랄 때
내가 잘게 썬 김치나 콩나물처럼
축 늘어질 때
네 등이 점점 딱딱해질 때
살의 일은 살에게, 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운명이 우리의 체위를 바꿀 때
집게와 가위를 들고 우리를 누비이불처럼 나눌 때
모든 말 뒤에 남은 침묵처럼
ㅎ나 ㅎㅎ라고 말할 때,
굳기름처럼 하얀 얼룩일 때
누군가 새롭게 내 등 뒤로 다가오고
그때 우리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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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주, 「선덕여왕의 말씀」에서
—《현대시학》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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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 1967년 충주 출생.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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