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실감
손택수
수국을 보면 나는 좀 은밀해진다
누가 보나 안 보나, 다치지 않게, 꽃둘레를 가만히 안아보고 싶어진다
그때 내 손은 영락없는 브래지어 컵, 애인의 선물을 사러 갔다가
사이즈를 묻는 매장 직원에게 나도 몰래 두 손을 벌려 안아보던 허공의 컵
수국을 품고 있으면, 꽃뭉치 더 처지지 않게 받쳐 들고 있으면, 컵 너머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이 있다 손가락을 넘치는 꽃범벅
등 뒤로 돌아가서 브래지어 호크라도 채워주듯이
수국이 피면, 수국을 따라 그대로 굳어져도 좋을 것 같은 손으로
—《포엠포엠》201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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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부산에서 성장. 1998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시집 『호랑이 발자국』『목련 전차』『나무의 수사학』『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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