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날, 대선이 꼭 한
달 앞으로 다가 왔다고 TV가 전하고 있다. 대선 후보라고 할 사람들이 유권자의 이목을 끌려고 각양각색의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또한 TV는 전
청와대 비서관이 대기업 상무로부터 명절선물로 포장된 돈뭉치를 전달받고 되돌려준 적이 있다는 폭로를 전하고 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의
직권남용, 국세청장 수뢰 등 연이은 권벌유착 사례가 생각난다. 권력핵심의 그릇된 처신에 대해 집권세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부패의 관행과 유혹 속에서 권력핵심의 도덕적 무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개가 나와도
……” 대선을 생각하다가 이러한
시(詩)가 생각난다. 느닷없이. 호해지사(湖海志士)로 한평생을 살다간 김남주 시인의 시 ‘선거에 대하여’를 말하려는 것이다. 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개가 나와도 그
지방사람들은 우리 개 우리 후보 하면서 그
개를 국민의 대표로 뽑아 국회로 보낼
것입니다 개가 꼴랑지에 ○○당의 깃발을
달고 개가 그 주둥이를 놀려 그 지방
사투리로 멍멍멍 지방유세를 하고 다니기만
하면
당신은 화를 내고 있습니까
나에게 내가 지금 당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하략)
시인의 꾸짖음이 준엄하지 않은가?
지금 우리의 선거가 이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월이 꽤나 흘렀음에도.
현 정권도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정권 출범 이후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탁고개제(托古改制)에 힘을 써왔다. ‘탁고개제’라고 함은 지난날의 경험에 의탁하여 제도를 고쳐간다 함이다. 그러하나
과거 정권에서 그러했듯이 현 정권 실세들의 반사회적 행태도 그치지 않고 있다. 왜일까? 현 정권의 혁신 노선의 ‘탁고(托古)’가 정권적 차원의
근시적 차원에 있어서가 아닐까? 어디에 탁고할 것인가? 더 멀리, 우리 선대의 청백리(淸白吏) 정신에 탁고해야 할 것이
아닌가?
높은 자, 있는 자가
깨끗해야 무릇 제도의 개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의 의식개혁이다. 무릇 모든 제도는 사람에 의하여 운용되는 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높은 자, 있는 자가
청백(淸白)의 정신을 갖추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수범(垂範)이 될 때만이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을 치유할 수 있다. 깨끗한 사람만이 나의
안위(安危)보다 억울하고 눌린 자의 그늘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청백리의 사표(師表)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이 오늘 이
나라 대선판을 보고 무엇이라고 하실까? ‘기심(機心) 만이 가득하도다’ 하시며 한숨짓지 아니할까? ‘기심’이라 함은 ‘기회를 엿보아 행동하는
간특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위정자(爲政者)가 되려고 하는 자, 도덕심으로 재무장할 일이며, 바탕이 중시되는 세상,
원론이 중시되는 세상을 이루어 내고자 염념불망(念念不忘)할 일이다. 이 땅에 설쳐대는 저 많은 허위의 가면들을 걷어내고 의기(義氣)가 살아
전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