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
김선재
우리는 각자의 구름을 이고 먼 곳을 보고 있었지
등 뒤에는
정적 같은 꽃들이
손을 떠난 말들이
모서리를 굴리고 굴린 모서리를 다시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손바닥을 펼치면 내일의 날씨를 알 수 있을까
소매를 걷어 올리는 계절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지
먼 곳을 잘 보기 위해
끝과 시작을 뒤바꾸기 위해
뒤바뀐 것을 되돌리기 위해
겹겹이 둘러싸 안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들어가려고 하고
너는 무게 없이 부풀어
끝내 발밑에 뒹구는 오늘
그렇게, 그래서, 그래도, 우린 살겠지
귀를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입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신발을 돌려놓았다
이제 없는 우리를 위해
과녁을 비껴간 화살처럼 빛나던
어제를 향해
꽃들은 각자의 구름을 끌고 문밖으로 걸어간다
손바닥을 뒤집으니
마당이 고요해졌다
—《현대시학》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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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 1971년 경남 통영 출생. 2006년《실천문학》소설, 2007년《현대문학》시로 등단. 소설집『그녀가 보인다』『내 이름은 술래』. 시집『얼룩의 탄생』.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엄정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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