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화론의 행방과 한국의 위상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올해에 나는 여러 국제학회에 참석하여야 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일본이나 대만이 주관하여 동아시아 문화론 및 유학에 관해 연구하고 토론한 학술대회가 둘 있었다. 하나는 8월 31일과 9월 1일에 일본 센다이의 동북대학에서 개최된 것이고, 하나는 10월 26일과 10월 27일에 대만 대북의 대만대학에서 개최된 것이었다.
동북대학의 학회는 한국 다산학술문화재단과 동북대학 일본사상사 연구실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18-19세기 동아시아 사상공간의 재발견 : 정다산 시대의 한국·일본학술사」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 학회에는 한국과 일본의 노소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서 사상사 및 과학사와 관련한 논문들을 발표하고 또 열띤 논쟁을 주고받았다.
한편 대만대학의 학회는 대만대학 인문사회고등연구원 「동아시아 경전 및 문화」 연구계획과 일본 관서대학 동아시아문화교류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여 「동아문화교류 및 경전 전석(銓釋)」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이 학회에는 대만 및 중국과 일본의 비중 있는 학자들이 참석한 반면에, 한국에서는 대만대학의 초청을 받은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대만대학은 그간 7년에 걸쳐 동아시아 경전 해석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동아시아 문화 교류사를 해명하여 왔다. 관서대학도 수년간 독자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교류사를 연구하여 왔는데, 이번 2007년 9월에 일본 문부성 COE프로그램(우리나라의 BK와 유사한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동아시아론 각국 사정에 따라, 패권주의 혐의도
그런데 두 학회에서 공통된 문제점으로 떠오른 것은 ‘도대체 동아시아 문화 혹은 유학의 공통성을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문화적 유대라는 것이 실재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동아시아 몇몇 나라에서 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형성되었던 동아시아 문화권 이론은 의미를 상실하였다. 최근에는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 혹은 자국보호주의의 경향이 크게 대두하면서, 학문의 세계에서도 공통성을 더 이상 운위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와 달리 관념적 보편성을 거론하기보다도 각자의 실상을 각자의 역사적 맥락에 맞추어 논하려는 실증적 태도가 두드러진 점은 하나의 진전이라면 진전이라고 하겠다.
대만은 작금의 사정상 동아시아론을 통해서 중국 본토까지도 상대화하려고 하기에, 한국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과 일본이 주관하는 동아시아 문화교류사 연구에는 우려할 만한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일본의 일부 학자들이 전근대시기의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한국이 차지해온 위상을 낮추려고 한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중국과 일본의 소장 학자들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의 직접 교역과 문화접촉 사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부터 상해공업대학 일본학연구소에서 주관하여 시작한 이른바 「Book Road」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난다. 이것은 물론 현재의 동아시아 정치 정세와 패권주의의 대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중국의 연구자들은 문화의 교류라는 사실을 통해서, 자연히 문화의 교류가 아니라 문화의 이식을 확인한다. 이에 비해 일본의 학자들은 과거의 한국이 일본에 끼친 문화적 영향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전근대시대의 한국은 주자학에서 실학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단계마다 지식인이 현실변혁의 역할을 담당하였고, 우리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해서도 일본의 어떤 학자는 우리 학문의 기능상 미분화를 비판한다. 더 나아가, 현재의 한국 학자들이 지닌 현실참여의 의지를 유학자적 오만함이나 문벌주의적 배타성에서 비롯할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우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인 모두가 공감하도록
중국과 일본이 그려내는 동아시아문화론의 행방이 매우 걱정이다. 우리는 그들의 동아시아론에서 한국의 위상을 오키나와와 같은 조공국의 수준으로 간주하는 것을 좌시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책 시장에서 한창 붐이 일듯이, 우리는 우리의 18세기가 지닌 문화적 선진성을 자만하거나 혹은 과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인가.
1920년대에 일본의 츠다 소키치는 동아시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일본은 일본, 조선은 조선, 중국은 중국이라는 식으로 개별자만 있을 뿐이라고 본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론을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가 있지만, 그것도 또한 중국을 상대화하고 일본의 위상을 부각시키는 의미를 지녔다.
나는 역사적 맥락을 중시하여 문화적 분수(分殊)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저들의 동아시아론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이념을 제시하여야 할지 얼른 해답을 찾지 못하겠다. 그렇기에 더욱, 큰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중국대만이나 일본이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여 저들이 납득할 만한 선명한 이념을 제시하여 주시기를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큰 선생님들이 새삼 그립다.
글쓴이 / 심경호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김시습 평전』, 『한국한시의 이해』, 『한문산문의 내면풍경』, 『한시의 세계』, 『한학입문』, 『한시기행』, 『간찰 :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등
· 역서 : 『불교와 유교』, 『주역철학사』, 『원중랑전집』, 『금오신화』, 『한자 백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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