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근심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던 다산은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뜻있는 선비로서의 직분을 잊지 못해 잘못되는 세상을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수 없노라고 마음먹으며 세상을 구제할 방법을 고심했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를 통째로 개혁하자는 대안의 하나인 『경세유표』라는 거대한 저서를 통해 국가경영의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가던 시대의 나라와 사회를 명확하게 진단합니다. “온갖 관제(官制)가 갖추어지지 못하여 바른 선비는 녹(祿)을 받을 수 없고, 탐학의 풍조만 판을 쳐서 백성들은 초췌한 모습이다.(百官不備 正士無祿 貪風大作 生民憔悴) 그윽이 생각해보니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도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竊嘗思之 蓋一毛一髮無非病耳 及今不改 其必亡國而後已)”(『경세유표』서문)
이렇게 다산은 반드시 나라가 망하고야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발했습니다. 썩고 병든 나라, 정직한 사람은 먹을 것이 없고 탐관오리들의 탐학한 풍조만 판을 치니,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건만, 아무도 그런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836년에 세상을 떠난 다산의 사후 74년 만인 1910년, 끝내 나라가 망하여 일본에 먹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불행인 망국. 그 망국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당한 가장 큰 불행이자 모든 악의 근원이었습니다. 망국은 식민지-해방-분단으로 이어지고, 분단 60년 세월동안 6.25전쟁과 독재를 겪고, 북핵과 통일의 무성한 논의 속에 10.4의 공동선언이 나온 남북 정상회담을 애타게 바라보아야 했던 8천만 민족.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유배말년인 1818년 무렵의 다산의 경고를 제대로 듣고, 올바르게 나라를 개혁하여 식민지로 먹히지 않고 공화제로의 새로운 조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면, 왜 망국의 서러움을 당했겠습니까. 다산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던 탐학한 지도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서 60년이 넘는 분단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합의를 지켜보자 새삼스럽게 나라가 망한다던 다산의 경고말씀이 떠올라 회고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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