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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나라 정치인의 현주소 / 박호성

문근영 2017. 9. 2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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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인의 현주소


   아마도 우리나라 정당의 평균수명은 강아지의 수명보다 짧을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무엇보다 파벌 만들기에 신들린 사람들 같다. 둘만 모이면 파가 셋 생겨난다고 한다. 하나는 내 파, 둘 째 것은 당신 파, 셋째는 우리 파 하는 식으로. 특히 선거철만 되면 정치적 야합과 이합집산이 밥 먹듯 되풀이된다.
   선거란 국민적 합의와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시행되는 거족적인 민주 잔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선거가 국민적 결속이 아니라 분열만 부추기는 해괴한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민 복지 증진이라든가 안정된 사회질서 구축을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은 지쳐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믿지 않으려 한다. 불신이 단순한 사회적 풍조가 아니라 사회적 생활윤리로 자리 잡은 지 역시 오래다.

‘낯선 타인'보다도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들

   여기저기서 한국사회가 “불신의 늪”에 빠졌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드높다.
  예컨대 작년 12월 27일자 경향신문은 KDI에서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 결과를 밝힌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불신’에 빠져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특히 국회와 정당,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으며, 인간관계의 신뢰도도 매우 낮아, 화해보다는 갈등이 그리고 신뢰보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KDI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사람을 대할 때 ‘불신’하면 0점, ‘신뢰’하면 10점을 매기도록 한 결과, 평균 4.8점이 나왔다고 한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4.0점이었고, 직장·학교 동료는 6.5점, 동호회 등 비공식 조직 동료는 6.2점이었다. KDI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외국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말하며, 2001년 실시된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6.6점, 일본 4.3점, 미국 3.6점인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2.7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특히 국회(3.0점), 정당·정부(각 3.3점), 지자체(3.9점) 등 공공기관에 대해서 매우 낮은 수준의 신뢰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낯선 타인’(4.0점)보다도 신뢰받지 못하는 수준이다. 검찰(4.2점), 법원(4.3점), 경찰(4.5점) 등 사법기관도 중간 값인 5점을 넘지 못한다. 특히 우리 국민의 70%는 ‘공직자의 절반이 부패’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공직자들이 법을 잘 지킨다’고 보는 국민들은 5%에 불과했다. 또 ‘법원판결이 공정하다’는 응답은 50%에 그쳤다. 그리고 지역별로는 호남지역이 사람을 신뢰하는 정도가 가장 높게 나왔고, 서울-경기-강원과 영남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정부-국회-정당에 대한 신뢰도는 충청지역이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론적으로 KDI는 “사회신뢰도를 높이려면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사회적 신뢰가 회복되어야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처럼 삶에 지치고 미래에 대한 기대에 목마른 우리 불우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할 정치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인들이 범 국민적 혐오 대상으로 자리잡은 지는 꽤 오래다.

   우리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목욕탕에 가서도 제일 늦게 나오고, 교회나 성당에 가서도 기도를 제일 오래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몸에 때가 많고 죄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악마와 목사 사이에 소송이 붙는다면 누가 이기리라 생각하느냐는 퀴즈도 있었다. 그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답은,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악마다. 왜냐하면 악마는 관리들을 모조리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였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정치인과 공무원을 이런 식으로 야유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어느 날 외과 의사들이 여럿 모여, 어떤 유형의 사람이 수술하기에 좋은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 중 어느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 수술하기가 제일 쉽더라고 …. 정치인들은 골이 비어 있고, 뼈대도 없고, 쓸개도 없고 …, 소갈머리, 배알머리도 없고, 심지어 안면도 없잖아. 속을 화-악 뒤집어 헤쳐 놓으면, ‘돈’만 나와.”

   한 정치인이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연설하도록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 정치인이 연설을 시작한지 약 10분 정도 지나자 뒤쪽에 앉아 있던 환자 하나가 벌떡 일어서더니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봐,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하는 거야? 게다가 쓸 데 없는 말이 너무 많아. 이제 그만 입 닥치고 앉지 그래!”
   그러자 그 정치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병원장에게 소리 질렀다.
   “저 정신병자를 끌어낼 때까지 기다리겠소.”
   “끌어내다니오?” 병원장이 대꾸했다. “절대 안 되오. 저 불쌍한 친구는 여기 8년 동안 있었지만, 제 정신으로 말한 것은 이게 처음이오, 의원님.”
   이 에피소드는 무책임하게 아무 말이나 마구잡이로 지껄여대는 우리 정치인들의 성향과 수준을 잘 귀띔해준다.

   무릇 정치가란 주인 대접받기 위해 하인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이 없지 않으냐고 다그치면, 그럼 강을 만들어주겠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들인 것이다.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한 얼마 후에 한 정신병원을 시찰한 적이 있었다. 총통이 온다고 입원환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히틀러가 병원에 들어서자 전원이 “하일 히틀러!”하고 경례를 부쳤다. 그런데 딱 한 사람이 구석에 그냥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히틀러가 물었다. “왜 나에게 경례를 하지 않는가?” “각하, 저는 간호사입니다.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정치권에 이런 간호사 같은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관용과 협상 필요하나 야합과 독선은 벗어나야

   그런데 이러한 참담한 정치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상호 대립적인 이해관계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 상호 관용과 협상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그러나 원칙 없는 타협은 야합이고, 타협 없는 원칙은 독선이다. 실은 어떻게 이러한 ‘야합’과 ‘독선’을 명쾌히 극복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정치인에게 주어진 값진 소명이다.
   평화로운 이 강산에서 살아가는 이 선량한 백성들을 과연 그 누가 이끌 것인가?
   국민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국민을 잘 따라야 한다. 그리고 말을 유언처럼 하는 것, 그것이 정치인의 참된 도리다.
   뿐만 아니라 역사는 우리에게 보수 세력은 고인 물이 썩는 이치처럼 ‘부패’에 의해 무너지고, 진보 세력은 개별적 차이를 관용치 못하는 ‘분열’로 말미암아 몰락한다는 것을 준엄히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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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호성
·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장 겸 공공정책대학원 원장(정외과 교수)
· 한겨레 신문 객원 논설위원
· 학술단체협의회 대표간사
· 미국 Berkely 대학 및 캐나다 뱅쿠버 대학(UBC) 객원교수
· 저서 : <휴머니즘론>,<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전망>,
           <우리 시대의 상식론>,  <21세기 한국의 시대정신>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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