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김이듬
엉클 톰의 오두막이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친구 집으로 피신해 왔다 청천 시골에 있는 송판으로 지은 집
나는 할 만큼 했고 부모는 나를 키우는 동안 모든 보상을 받았다
친구는 친구 삼촌이 창고 가득 모아둔 송판을 날라다 이 집을 지었다 그 아저씨는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출장길에 죽었다 해외수입물품을 취급하는 일을 했던 모양인데 포장용 나무궤짝을 모조리 집으로 가져가 못을 빼고 닦아 크기대로 분류해서 창고가 넘치도록 쌓아두었던 것이다 아무 취미도 없이 퇴근하면 못을 빼고 휴일에도 못을 빼고 달밤에도 못을 뺐다고 한다
그 아저씨 손발에 가득했을 못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접촉이 없으면 못도 없겠지 그는 제주 출장 가는 길에 참변을 당해서 그리 애 터지게 모은 송판 한 장 써보지도 못한 채 죽었다고 한다
나는 소나무 향기가 진동하는 오두막에서 빨간 우산 도장이 찍혀있는 나무판자를 만져본다 내 할머니가 죽은 후 열어본 장롱서랍 안에 가지런했던 새 옷들처럼 까칠까칠하다 왜 할머니는 그 좋은 옷 다 놔둔 채 태연히 누추한 옷만 입다가 돌아가셨을까
나는 할 만큼 했다 내 부모는 고집스런 나의 못을 빼는 재미를 누렸을 것이다 나름의 좋은 대못을 박아 뭔가 만들어보려고도 했을 것이다 나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를 닦았으므로 지금 나에게 더 이상의 기대와 요구를 하는 건 무리다
매트리스 위에서 뒤척이기만 해도 세 평 크기의 아담한 집 자체가 흔들린다 못이 있어서 목숨이 붙어있는 사물들 그리고 고라니 울음소리 다시 달밤이 뒤흔들린다 달이 액자처럼 흔들린다 친구는 코를 골며 눈을 뜬 채 자고 장이 멀다는 핑계로 내일 아침밥도 굶길 것이다 개밥은 챙겨주면서
벽면 판대기 귀여운 빨간 우산은 유통 도중 비를 맞히지 말라는 표시고 숨을 쉬라고 이 구멍들을 뚫어놓은 건가 왠지 답답하다 가슴에 오목하게 팬 작은 못에서 드디어 피라미만 하게 놀던 내 영혼이 말라죽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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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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