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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조의 독살설 / 박석무

문근영 2017. 8. 27.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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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독살설


지나간 역사가 모두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전에서 진행되는 현재의 일도 정확하게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진리나 진실은 숨길 수 없고 언젠가는 정확하게 밝혀진다고 믿으면서도, 세상의 일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 사실은 묻히고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행세하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로 둔갑되는 수도 많습니다. 현재의 일이 그럴진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일이야 진실이 무엇이었나를 알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역사적 사실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 더러는 소설적 진실로 떠돌기도 하고, 전설이나 민담으로 전해지기도 하지만, 증거나 사실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한 영원한 역사의 미궁으로 빠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실 중의 하나에 바로 1800년 음력 6월에 49세로 세상을 떠난 정조대왕의 독살설이 있습니다.

“만나면 전해져 들리는 말들을 이야기 했으니, 당시의 정승이 역적 의원인 심인(沈?)을 추천해서는 독약을 올려 바치게 했건만 우리들의 손으로 그 역적놈을 제거할 수 없다면서 비분강개하여 눈물까지 흘리곤 했었다.”(相見 言傳聞之說云 時相以逆醫沈?薦之 使進毒藥 吾不能手除此賊 爲之?慷流涕)

바로 다산의 「기고금도장씨녀자사」(紀古今島張氏女子事)라는 글의 한 구절입니다. 장씨는 영남의 대유(大儒)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의 후손인데 당시의 인동현감 이갑회(李甲會)의 아버지와 장현광의 종손(宗孫) 장현경(張玄慶)의 아버지가 친척 사이로 자주 만나 당시의 전해져 들려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전해져 들리는 이야기가 바로 정조의 돌살설이라는 것입니다. 심인이라는 어의(御醫)는 정조 사후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해 임금을 죽게 했다고 역적으로 처형된 실재 인물이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산은 직접화법을 쓰지 않고 이갑회의 아버지와 장현경의 아버지가 자주 만나 전해지는 독살설을 자주 이야기했다는 간접화법을 써서 정조 사후 정조의 독살설이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만을 말했습니다. 심인은 바로 처형되었으니 진실은 영원히 밝혀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늘에는 그런 역사적 미궁이 없을까요. 당시의 정승이 누구인가도 영원한 비밀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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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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