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월 5일은 음력으로 6월 23일이었습니다. 1762년의 8월 5일은 음력으로 6월 16일이었으니 희대의 사상가이자 경세가인 다산 정약용선생의 탄신기념일이었습니다. 양력으로야 그때나 이때나 8월 5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일주일의 차이가 났습니다. 그러니 어제는 235주년의 다산 생신인 셈입니다.
다산은 75세를 일기로 1836년 양력 4월 7일(음력 2월 22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6년은 바로 다산 서세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뜻있는 학자들이 그때까지 간행되지도 못한 다산의 저술인 『여유당집』을 간행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때였습니다.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문집출간을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하면서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다산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다산학에 담긴 애국심과 민족학, 조선정신과 조선혼을 발양시켜 식민의 압제를 벗어나려는 내심까지 지녔던 뜻 깊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1936년 양력 7월 16일(당시의 음력 6월 16일)자의 조선일보 사설(社說)은 지금 읽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의 눈물겨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서거일인 4월 7일이 아닌 탄신일인 6월 16일에 서세백주년의 기념 사설을 쓴다면서 7월 16일자에 사설로써 선생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그의 저술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문·지리·역사·정치·경제·법제·농정·토목·교통·기기(機器)·박물·고징·철학·의학·시문 등 무려 15부문이며 모두가 희망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과학적 엄정(嚴正)과 귀납적 현실성으로 된 바다"라고 설명하여 광범한 학문적 영역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사설의 서두에서는 “오늘은 선생 탄신일이니 논자로 하여 뜻 깊은 추억을 일으키는 것이 있는 날이니 바로 조선근세 희유(希有)한 대학자로 우리 학술사상에 있어서 태양같이 빛나는 위대한 존재인 다산 정약용선생의 강신(降辰 : 탄신)인 것이다”라고 갈파하여 다산이 조선학술사의 태양임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강신인데, 동아나 조선은 왜 말이 없을까요. 그때 그토록 다산을 찬양했던 것처럼, 오늘도 절실한 다산사상. 제발 위력 있는 신문들이 선생을 현양하는 일에 앞장서주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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