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시
김지요
개미굴에서 만나자고 네가 먼저 쪽지를 날려왔다 어둠이 담쟁이처럼 넝쿨손을 뻗어 갈 무렵 너를 만나러 간다 문을 여는 주문은 독수리 타법이건 교활한 여우의 타법이건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미로를 즐기는 자들이 모여든다 나가는 문을 찾는 이는 없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낮은 포복으로 기어든다 이곳의 불문율은 이름을 묻지 않는 것 아마추어처럼 실명을 끌고 다니는 진화가 덜된 인간도 더러 있다 일몰 전까지 입고 다니던 나를 벗어던지고 끈적한 밀랍의 언어를 주고 받는 방 준비된 파이터들이 싸움의 기술을 선보인다 가공할 입심으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이들 수천의 방들에선 익명의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돌틈을 비집고 햇빛이 새어 들어오면 지하도시는 전설이 된다 예의바른 시민들이 부활한다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킬러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소문까지 꿀꺽 삼키는 깊은 우물, 먹잇감을 찾는 수신음 클릭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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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요 시집 『붉은 꽈리의 방』 / 지혜 2016년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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