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얘기하기
이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자연에게 기도하기
피에 굶주린 이교도 야만인 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역사에서는 우리 인디언들이 거칠고 짐승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런 영화를 보고 우리에 대한 책들을 읽고 나서야
우리가 거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거친 짐승들>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네 발 달린 짐승들의 친척이라고 생각했고
자연보다 높거나 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유럽입들과 성경이 오기 훨씬전에
그 <위대한 존재>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주위의 자연적인 힘들을 관찰할 때
우리는 각 계절이 매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도래하고
냇물이 특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해가 정지해 있고 지구가 그 주위를 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가 동쪽에서 떠 하늘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진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통제하는 <위대한 힘>이 없다면,
왜 해가 하루는 북쪽에서 뜨고 다음날은 남쪽에서 뜨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고,
어떤 <위대한 힘>이 자연의 힘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 했다.
우리는 종교적인 상황 속에서 일요일 아침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매일같이 모든 날이 성스러운 날이라는 인식 속에서 생활했다.
우리는 아침이 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래를 볼렀다.
"또 하루를 주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가치있게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 주소서"
우리는 선교사들이 오기 훨씬 전에 이미 이런 노래를 알고 있었다.
우리 부족사람들이 기도할 때 그것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부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와 함께 미래를 먼저 보았으며,
나무와 풀, 그리과 새와 동물들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가 자신들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평원이나 들판의 풀 위를 걸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양탄자로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존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