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스크랩] 아메리카 인디언의 유래와 한민족

문근영 2016. 2. 4. 01:12

아메리카 인디언은 어디서 왔나? 인류(人類)는 언제부터 이 지구 위에서 살게 되었나?

 

이런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문제이다. 종래의 학설에 의하면 「인류는 약 2백만년 전에 동부 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 1백만년 전에는 유럽과 아시아로 펴졌으며 1만 2천년 전에 이들이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으로 건너갔다.」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종래의 주장에 대하여 근래 소련의 고고(考古)학자 유리 모차노프는 새로운 학설을 내세워 주장하기를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돌로 된 도구들이 영국의 고고학자 메어리리키가 케냐에서 발견한 2백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가 사용하던 것과 매우 흡사(恰似)하며 또 그 도구들이 발견된 토양이 지리학적으로 1백 80만년 전에 생성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도구들을 사용하던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같은 시기에 생겨났거나 또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최초의 인류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유네스코 프리"라는 잡지에서는 소련의 고고학자 비탈리 라리체프의 글 "시베리아의 구석기 문화"를 게재하면서 흔히 시베리아를 얼어 붙은 불모(不毛)의 땅이라고말하고 있으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 까닭인즉 이 시베리아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유적지가 바로 시베리아의 "말라이아쉬" 유적이다.


1975년부터 고고학들이 발굴하기 시작한 이 유적지는 중부 시베리아의 "벨리라우스"강과, "노비스비르크" 산과 "아비칸"산을 가로지르는 산맥(山脈)에 위치한 계곡 지방으로서,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으로 조사해 본 결과, 약 3만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이 주거지에서 생활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류가 생활하는데 가장 적합한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는 이 "말라이아쉬"지방에서 발굴된 뼈를 살펴보면 산양, 야생마, 순록, 영양, 산토끼, 사슴, 들소, 코뿔소, 여우등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들이 무수히 서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수천미터에 이르는 촌락(村落)을 형성하여 진보된 복합 문화를 발달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말라이아쉬" 유적지에서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 초록색, 진홍색, 보라색 등 온갖 색깔로 그려진 정교한 그림들의 흔적이발견되었는데 모두가 뛰어난 솜씨로서 그들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고 있다.


종래구석기 유물이라면 매우 무디고 조잡한 것으로 여겨 왔는데 이곳의 유물 중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멧돌과 독수리와 거북 등이 새겨진 석기 조각품도 있어 그들에게 고유한 토착예술의 뿌리가 존재했음이 분명해 졌다.


이와 같이 새롭게 발견되는 시베리아의 구석기 유물들은 인류의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통설을 뒤엎고 아시아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1920년대에 고고학의 권위자들이 회합하여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어디 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류문명의 요람지가 아시아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아시아에서 중·근동아시아 일대로 이동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제일 먼저 아메리카 땅에 건너 온 종족은 인디언인데 이들이 아시아로부터 베링 해협을 건너서 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인디언들이 어디에서 언제쯤 건너 왔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 "처음의 미국인"이라는 책을 저술한 G. H. S. 부쉬넬의 견해는 아래와 같다.


[신세계로 인간이 이주하는데는 지리와 기후 등의 조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신대륙에 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베링 해협이었다. 배가 발명되어지기 전에 인디언들은 마른 땅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 B.C. 25,000년에서 9,000년 사이에는 동북아시아와 알래스카가 넓은 평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위스콘신" 이라고 불려지는 제4빙하기에는 지금보다 해면이 훨씬 낮았고 물은 얼음에 잠겨 있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캐나다와 미국의 북부 지방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지 않고 넓은 평원으로서 아시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가 대략 B.C. 25,000년경이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쉽게 알래스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18,000년경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 버렸는데 그것이 약 8,000년 동안 계속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다가 B.C. 8,000~5,000년 그 이후부터는 기후가 따뜻해져서 빙하기가 끝났다고 본다.


추운 날씨가 지나가고 B.C. 5,000~2,000년 사이에는 현재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가 계속 되었을 것으로 본다. B.C. 8,000~5,000년 사이에 기후가 따뜻해져서 대양이 물로 가득 채워짐에 따라 이제는 육지로 건너오지 못하고 배를 타고 건너왔다. 베링 해협 지금도 얼음 위로 걸어서 건널 수 있는데 배를 언제부터 사용해서 베링 해협을 횡단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B.C. 7,000년 경에 이미 북유럽에서 배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인디언들은 훨씬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 같다.


위와 같은 주장은 그 밖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주장되어 왔는데 그러면 지금도 그곳 미주대륙에 거주하고 있는 인디언들의 선조들은 어디에서 건너 온 어떤종족이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하여 아시아의 요람지에서 살던 인간들이 베링해협을 통하여 그곳으로 건너 갔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 하면서도 그들의 건너간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그 견해의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 몇 가지의 견해를 예를 들면 지리학자인 G. F. 카터박사는 약 10만년 전에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고고학자인 J.B. 그리핀 박사는 2만년 내지 3만년 전에 인간들이 신세계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인디언들은 어디에서 왔나?
그런데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은 순수한 아시아 사람들이었느냐? 아니면 동북 아시아에서 잠시 머물었다가 건너온 유럽사람들이 아닐까..... 또 그 이주는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을까.....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세 대학에서 모인 세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스탠포드 대학의 조세, H. 그린버그 교수와, 애리조나 대학의 스티븐 제구라 교수, 그리고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크리스티·G·터너 교수팀이 신세계의 선사역사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선사역사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이 세 대학의 세사람의 학자들은 언어, 혈액형, 현존하는 고대 인디언들의 치아(齒牙)형태 등을 연구한 결과, 세 개의 추측을 이루는 이주자들이 아시아에서 신세계로 이주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 세 이주 무리들을 열거하면 그 첫 번째는 1만 5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레나강 계곡의 "아메린드"혹은 "알곤컨"이 이주하였고, 둘째는 6천년 전에 현재의 시베리아 알단강 유역의 "아타바스칸"혹은 "나-데네"가 이주하였으며, 6셋째는 4천년 전에소련과 중국 사이에 있는 지역에 걸터 앉아 있는 "아무르"강 분지의 "에스티모 알륫" 이 이주하였다고 말하였다.


이 세 무리들은 차례대로 이주했기 때문에 먼저 건너간 사람들은 남미(南美)까지 내려 가게 되었고 늦게 온 무리들은 북쪽에서 머물게 되었다.


이상으로 남·북미의 인디언들이 베링 해협을 통하여 이주해 간 경위를 살펴 보자.
그들은 인디언이라고 호칭하게 된 유래(由來)는 "콜롬부스"가 인도를 향해 서쪽으로 항해한 지 70일 만에 쿠바 북쪽 바하마군도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고국인 스페인에 돌아가서 "나는 인도에 갔다"고 선언하면서 거기 사는 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디언의 뿌리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언어(言語)를 연구한 그린버그 교수는 2백개가 넘는 그들의 언어들을 세가지의 부류로 분류하였다.


그 중 "아메린드"가 가장 큰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넓은 지역에 펴져 있었고 또 가장 오래된 언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타바스칸"혹은"나-데네"는 캐나다와 북캘리포니아 지역에 국한 되어 있었으며 "아파치"나 "나바호"도 이 나-데네를 사용해 왔다. 그 다음의 에스키모-알륫어는 북아시아 언어와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시베리아의 원시 언어를 연구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인디언의 언어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는 언어의 유사성을 통해서 인종학적인 유사성을 탐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인디언들은 그 이주 연대가 서로 달라도 많은 점에 있어서 상호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그들의 뿌리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래와 그들의 신세계 이주에 관하여, 언어 인류학자인 그린버그 교수와 인종학자인 제구라 교수 및 인류학자인 터너 교수는 서로 연구결과를 놓고 종합 토론을 전개한 결과, 인디언의 언어가 종래 생각했던 것처럼 2백 혹은 3백 개가 아니고 단지 세 개의 언어군으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린버그 교수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가장 넓게 사용한 언어가 알고퀸이고, 그 다음이 아타바스칸과 나-데네이며, 세 번째가 에스키모-알륫이라고 말했다


제구라 교수는 인디언의 혈액형을 A, O, B, Rh형으로 나누어서 분류하여 발표하였는데, 그도 역시 인디언을 크게 나누면 세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린버그가 나눈 세 부족에 자기의 혈액형 연구결과도 맞추어서 배정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는 또한 언어의 분포에 있어서도 역시 위의 세 지역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강의가 끝난 다음에, 제구라 교수는 그린버그 교수와 의견이 일치함을 말하였는데,이것은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측면에서 연구한 결과가 같은 결론에 도달 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또 터너 교수는 치아 형태를 분석하므로써 인디언의 유래를 추적하였는데 그들의 어금니 수를 먼저 검토하였다.


예를 들면 유럽인들은 어금니의 뿌리가 두 대이고 어금니의 뿌리가 세 개이면 아시아인 아니면 인디언들의 이이다.


그래서 치아의 형태는 인종의 유래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터너 교수는 직접 시베리아와 중국에 다녀왔는데, 그는 거기에서 8,000년 내지 2,000년이 되는 인간의 이빨들을 조사하였다. 이 이빨들은 시베리아와 만주 일대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러한 터너 교수의 치아 형태에 의한 분류는 제구라의 혈액형에 의한 분류와 일치하였고, 그린버그의 언어에 대한 분류와도 일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들 세 학자들은 인디언의 유래에 대한 공통된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인디언들의 세부족이 동시에 이주한 것이 아니고 제 일차로 1만5천년 전에 제2차로는 6천년 전에 그리고 제3차에는 4천년 전에 각각 이주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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