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안안미
콧구멍에 낀 대추씨
우리 할머니 집 세탁기는
덜커덩덜커덩
참 요란스럽게도 일한다
명절 때마다
할머니 집 수리기사가 되는
우리 아빠
두리번두리번
세탁기 한 쪽 받칠 만한 걸 찾는다
-쪼매만 있어봐라잉
창고에 다녀온 할머니 손에는 내 손바닥만한 장판 한 조각
-콧구멍에 낀 대추씨도 다 쓸 데가 있제잉
한 번 접고 두 번 접어
세탁기 밑에 끼어 넣었더니
수평이 딱 맞는다
세탁기에 낀 장판 조각
콧구멍에 낀 대추씨
[신춘문예 동시 당선소감] “아이와 함께 하는 벅차는 황금빛 동시로 옮겨 써”
세상에는 글로도, 말로도 표현 못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억지로 표현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본디 그 색은 바래버리고 맙니다.
지금 제 상황이 그렇습니다. 당선 소감을 적어내려고 하니 자꾸만 제 자신이 옅어지는 느낌입니다.
막연하게 바라기만 했던 신춘문예 당선의 자리.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이처럼. 하지만 그 감정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어리빙빙해지는 제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신춘문예 당선의 무거움, 이제 허투루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스스로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꽃피어납니다.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제 목소리에 미어캣처럼 고개를 드는 아이들. 선생님이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말에 “그럼 우리는 어떡해요”하며 걱정하는 아이들. 내년에도 담임선생님이 되어주라며 종알대는 아이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선을 다해 문제를 푸는 아이들. 아침 독서시간에 눈이라도 마주치면 생긋 웃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에 제 가슴은 종종 벅차오릅니다. 마음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어느 가을날의 바스락거림으로 가득 차는 그 느낌. 그런 하루하루를 동시로 옮겨 썼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사랑하는 가족,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저와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작은 제 동시를 다독거려주신 한국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아이마음을 갈망하며 삶과 언어를 탐구하기
100편의 투고작 가운데 가장 동시다운 동시를 고르는 일이니, ‘동시’란 무엇인지 그래서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는 ‘동’시이기 전에 시이며, 아이는 아이이기 전에 인간이다. 그러므로 동시는 다만 시다워야 하며, 시다움의 바탕에는 인간과 세계의 탐구라는 문학적 과제가 놓인다. ‘아이’라는 꾸밈말은 아이와 함께 읽는다는 뜻이다.
시는 응당 새로워야 하고 간결해야 하며, 삶과 세계의 본질에 육박하는 직관적 각성과 감성을 담아야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읽는 시이니 아이가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써야겠지만, (아이에게) 준다거나 (아이인) 척한다거나 (아이를) 가르치거나 엿보는 따위로 아이를 ‘대상화’해선 아니 될 것이다. 동시는 존재하지도 않는 천사의 꽃밭을 그리거나 꽃밭에 사는 천사들에게 곱게 빚어 선물하는 멸균된 시가 아니라, 인간 품성의 궁극으로서 아이마음을 갈망하면서 그 마음으로 삶과 세계와 언어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표현하는 시다.
그런 기준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좋은 동시를 쓰겠다는 마음은 진실하고 한결같았겠지만, 동시에 대한 안일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은 많지 않았다. 쉽지만 치열하고 풍성하나 간결하며 별나지 않아도 신선한 작품은 더욱 귀했다. 말을 금처럼 아끼는 미덕 또한 내내 아쉬웠다. 그런 가운데도 표현의 상투성을 깨뜨리는 실험적 시도(유승희 ‘쥐꼬리’)나 일하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김류 ‘생선 파는 할머니’), 스마트 시대의 역설을 포착한 눈매(이미화 ‘스마트 섬’), 아이 눈으로 바라본 노부부의 넉넉한 해학(정성수 ‘즐거운 식탁’)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작지 않았다.
이견 없이 최종 두 명의 투고자가 가려졌다. 고심 끝에 안안미의 ‘콧구멍에 낀 대추씨’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평범한 일상에서 연륜으로부터 나오는 지혜를 건져내는 과정을 이야기하듯 전개한 솜씨가 자연스럽고, ‘손바닥만 한 장판조각’에서 ‘콧구멍에 낀 대추씨’를, 다시 삶의 한 국면을 환기하는 은유의 연쇄가 흥미로웠다. 함께 투고한 두 작품도 신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견지해 좋았다. 경합한 신미균의 세 작품은 모두 기성의 역량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간결하면서도 이미지가 풍부한 ‘뭉게구름’을 마지막까지 내려놓지 못했다. 제 몸을 줄였다 늘였다, 폈다 접었다, 잘랐다 붙였다 하며 혼자 노는 구름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다른 두 작품의 새로움이 조금 아쉬웠다. 선에 들지 못한 까닭은 단지 그뿐이다.
김장성(그림책 작가) 이상교(동시인) 심사위원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인터뷰] 초등 교사 안안미씨 “제일 소중한 독자는 아이들”
1985년 전남 완도군 출생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막연하게 되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응모한 건데, 처음에는 그저 좋기만 했는데 지금은 얼떨떨한 기분입니다.
”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동시 부문 당선자 안안미(30)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씨는 전남 목포시 유달초등학교 선생님이다. 8년째 교사로 재직 중이다. “교사로 일하면서 처음에는 아무래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아이들이 좋아졌고, 아이들을 위한 글에도 더 열중하게 됐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는 전ㆍ현직 공무원 대상 문학대회인 ‘공무원문예대전’ 동화와 동시 부문에서 한 차례씩 금상을 수상하면서 자신감도 얻었다. 안씨는 “글을 읽은 친구들이 일반적인 글에서 느낄 수 없는 저만의 관점이 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독자는 가르치는 학생들이다. “제가 쓴 시를 책상에 두고 읽고 싶은 아이들에게 읽어달라 부탁했어요. 장난스럽게 읽은 아이들도 있고 진지하게 어떤 시가 좋다고 말해주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 모든 반응이 제가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돼요.” 시들 중 일부는 실제로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영감을 얻어 쓰기도 했다.
수상작 ‘콧구멍에 낀 대추씨’는 자신의 어렸을 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다. “어릴 적 살던 완도군에는 나이 많은 분들께서 많이 사셨거든요. 집집마다 세탁기가 망가지면 도시에서 내려온 자식들이 고치는 광경이 많이 보였어요.” 어린 눈에 인상 깊게 남은 이 이야기를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물건’을 뜻하는 ‘콧구멍에 낀 대추씨’라는 속담과 연결했다. 이 표현은 사전에서 우연히 찾아낸 것이다. 안씨는 “예전 글을 연습할 때 재미있는 표현을 찾고자 일부러 사전을 많이 봤다”며 “우연히 발견한 표현들은 노트로 따로 정리해 놓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소설이나 수필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안씨는 교대에 진학하고 나서 동화를 주로 썼다. 동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1년 정도다. “원래 시를 어렵게 생각했어요. 2012년부터 동시를 조금씩 써 오다 지난해 문학동네의 동시문학상 1회 수상작품집을 읽었어요.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나도 쓰고 싶다, 하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동화에 비해 동시는 새롭게 느껴지고, 단어를 선택하거나 연을 나눌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면서도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좋은 시를 많이 쓰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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