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의 화두는 단연 정계개편이다. 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있지만 벌써부터 수많은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에 대한 반응도 갖가지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결국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한 이합집산, 합종연횡, 정략적 새 판짜기의 일환’이라는 지적에서부터, ‘민주-반민주 전선을 뛰어넘어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정치권의 필연적 명제’라는 주장까지, 그야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구시대적 정계개편 움직임 제(諸) 정파와 정치인 개개인의 주장과 명분이야 여하튼 그 밑바탕에는 정치적 이해타산이 짙게 깔려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발(發) 정계개편 논의의 중심에는 현재의 역학구도로는 사실상 ‘정권 재창출’이 무망하다는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민주 개혁 평화세력의 대연합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목표는 반 한나라당 전선 구축일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당(黨) 생명의 시한부 연장을 겨냥했을 것이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보수대연합의 기치를 내걸고 범(汎) 우파 결집이라는 세몰이에 나섰다. 군소 정치세력들도 정계개편과정에서의 일정역할을 자임하면서 대선 후의 영향력과 지분 확대를 위한 ‘필승 짝짓기 조합’의 모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도 그러려니와 그 실질에 있어서도 과거 낡은 정치의 표본으로 지적된 땅따먹기식 정치게임, 유력 대선주자들에 대한 줄 세우기, 지역야합형 판짜기 같은 구시대적 망령들이 척박하기만 한 현실정치의 시공간을 배회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정계개편을 타기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현시점에서 정계개편의 필요성은 너무도 절박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곪을 대로 곪아터진 현 정당제도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당들은 민주화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중심이슈와 갈등을 정치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대안을 만들어 내는 정치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 정치세력들은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제 세력 간의 합종연횡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책략과 술수 찾기에만 골몰해 있다. 국민도, 국가도, 민생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정권 재창출’과 ‘정권 재탈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실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평가는 냉소를 넘어 분노에 가깝다. 엄청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지만 정상적인 제도와 절차를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에 뭔가 강렬한 변화를 바라는 사회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3분의 2 이상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당들은 오래전부터 ‘정치계급’ 그들만의 살롱(salon)으로 전락해 버렸고 정당 간 경쟁이란 것도 이해관계를 같이한 정치세력, 그리고 소수 정치엘리트들의 단기적 정치목표를 둘러싼 이전투구식 정치싸움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변화와 다양한 요구, 그리고 국민적 열망과 기대를 담아내지 못한 채 여전히 기득 이익의 안정적 유지와 권력 투쟁에만 매달려 있었다.
국민에게 희망과 기대를 줄 수 있어야 이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체제가 사회현실과는 무관한 정치 엘리트 카르텔의 폐쇄회로 속에서 계속 작동하도록 놔두어서도 안 된다.
주권자이자 정치소비자인 국민이 나서야 한다. 정계개편이 정치인을 위한 이합집산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정치발전, 역사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
따라서 정계개편 문제를 지금의 정당과 정치엘리트들의 자의적 결정에 맡겨둘 수는 없다. 그 중심에 국민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대정신을 꿰뚫고 국민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도록 국민주권 차원의 대중적 압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미래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기대를 주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근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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