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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리랑을 위한 감성적인 통로를 찾는 책

문근영 2015. 7. 16. 02:55
아리랑을 위한 감성적인 통로를 찾는 책
[서평]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이정면, 이지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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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책 표지 ⓒ 이지출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네.“

이는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노래인 본조 아리랑의 가사이다. 동시에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나운규 감독ㆍ주연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이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입장식에서 남북한 단일팀의 단가로 불린 노래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어떤 의미를 가진 노래일까?

‘북한아리랑', '남북아리랑의 전설', '아리랑환상곡', '아리랑의 수수께끼', '아리랑낭랑' 등 아리랑 음반을 끊임없이 내온 신나라 김기순 회장은 "아리랑 속에는 인간의 모든 아픔과 갈등, 그리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강력한 저항과 울분이 녹아 있습니다. 아리랑은 그냥 노래가 아닙니다. 아리랑은 삶과 죽음의 소리입니다. 아리랑은 정신을 토해 내는 울부짖음이요, 천하를 가슴에 품고 용서하는 해원의 소리인 것입니다"라고 분석한다.

또 중국 동포로 한국에 나와 전통음악을 공부하며, ‘아리랑 낭낭’ 음반을 낸 소리꾼 김은희는 ‘조선민족, 중국의 560만 동포가 모두 같이 부름으로써 모두가 같은 민족으로 하나되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은 560만 동포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 같은 존재입니다. 중국 동포와 아리랑은 그래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아주 소중 소중한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 김산의 아리랑(Song of Arirang) 책 표지(김산, 님 웨일즈의 공저) ⓒ (사)아리랑연합회

 

 

그런데 한 지리학자가 4대 아리랑의 연고지인 정선, 밀양, 진도를 찾아 소리꾼을 만나고 그 유래를 찾는 여행을 한 다음 그를 토대로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 나왔다. 미국 유타대학교 명예 교수인 이정면 박사(83살)가 이지출판(대표 서용순)을 통해 펴낸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 그것이다.

책에는 일제강점기 때 체포되어 6달 동안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았던 김산의 이야기가 나온다. 김산은 감방 벽과 기둥에 손톱으로 “동지여 동지여 나의 동지여 / 그대 열두 굽이에서 멈추지 않으리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열두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옥중가 아리랑’을 새겼다. 이런 사실은 뉴욕 존데이출판사에서 펴낸 김산, 님 웨일즈의 공저의 “김산의 아리랑(Song of Arirang)”에 의해 알려졌다.

또 책에는 김산 뿐만이 아니라 소련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연해주에서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고려인들,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해 죽어간 사람들, 정신대 할머니들, 독립군을 돕다가 일본군에 의해 사살 당한 만주 동포들, 2차 대전의 미일전쟁 때 자살특공대(가미가제)로 출격에 앞서 아리랑을 불렀던 탁경현 등을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아리랑은 희망의 끈이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아리랑’ 관련 책들이 발간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발간된 책들은 학문적 성과를 위한 것이어서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랐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이란 감성적 제목에서 이미 이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리학자가 왜 하필이면 ‘아리랑’일까? 지은이 이정면은 말한다. “인문지리학에서 또 하나의 귀착지는 민족 전통문화 유산 규명이다.”

 


 

▲ 2차 대전의 미일전쟁 때 자살특공대(가미가제)로 출격에 앞서 아리랑을 불렀던 탁경현

ⓒ (사)아리랑연합회

 

 

그러면서 이정면은 아리랑을 온 겨레가 하나같이 오랫동안 불러온 까닭은 “무엇보다도 아리랑은 단순하여 부르기 쉽고 아리랑의 노랫말은 소리꾼이 자기의 일인 듯 자기 자신의 사정인 듯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의견을 제시한다.

정선 아리랑의 예를 보더라도 이는 지극히 설득력을 가진 말이다. 전해지는 가사가 7천 여수에 이를 만큼 민중들이 삶속에서 자신의 사정을 도입하여 하나하나 불렀던 것이다. 유명한 소리꾼들이나 부를 수 있는 음악적 소양을 요구한 노래가 아니다.

한 지리학자는 여행을 하듯(물론 여행을 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학자들이 보통 글을 쓸 때처럼 잘난 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아리랑을 위한 감성적인 통로를 찾아내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것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극히 부드럽게 다가온다. 자신도 모르게 아리랑의 의미가 체득되는 것이다. 그리고 글 속에서는 훈훈한 사람 냄새가 진하게 번져 나온다.

 


 

▲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열린 제1회 영천아리랑 축제 ⓒ 이정면

 

 

 

물론 이 책에도 이야기가 중복되는 경우가 있다든지, 인용한 자료가 사실과 맞지 않는다든지. 아리랑을 한국에 대한 대표적인 이미지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 약간의 문제점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옥에 티를 짚어내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이 책의 의미는 크다. 그는 담담하게 써내려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리랑의 의미를 가슴 속에 잔잔하게 담겨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아리랑이 왜 민족의 노래인지를 이 책만큼 명쾌하게 분석해준 책은 없을 터이다.

 

 




인문지리학자가 마지막에 해야 할 과제는 ‘전통문화 유산의 규명’
[대담]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의 지은이 이정면

 


 

▲ 대담을 하는 글쓴이 이정면 박사
ⓒ김영조
- 문득 아리랑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쓸 수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계기는 있었는가?
“7살 때 보부상이 짐을 내려놓고, 먼 산을 바라보며 아리랑을 구슬프게 부르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이 때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곤 했었다. 또 1960년대 중반 말레이시아에 초빙교수로 갔을 때 답사를 하는 버스 안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한국말로 아리랑을 불러 주어 나는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미국 중서부 광산지대에 많은 한국인이 이민 왔었는데 이들은 원래 광부가 아닌 농부였기에 큰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민사가 정리 안 된 것을 보고 조사에 나섰는데 도서관 자료에서 416명 한국인 광부의 이름을 발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이후 한 이민자의 묘비를 확인하여 후손이 참배하도록 주선하기도 했었다.“

- 지리학자가 왜 하필 아리랑인가?
“나는 인문지리학자이다. 그 인문지리학자가 마지막에 해야 할 과제는 ‘전통문화 유산의 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리랑은 귀중한 무형문화재이기에 아리랑을 조사ㆍ규명하는 일이야 말로 인문지리학자가 당연히 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학문을 통합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더욱 그렇다.”

- ‘아리랑’은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리랑은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담아낸 그릇이다. 일제강점기ㆍ625전쟁 등 큰 고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아리랑을 통해 좌절하지 않았으며, 민족의 노래로 승화시켰다는 점은 정말 훌륭하다. 특히 먼 나라에 가서 고통을 받던 이민자들은 아리랑이 그들의 삶 속에서 정신적인 지주요, 인생의 응원가였을 것이다.“

- 아리랑을 불렀던 사람들 중 누가 가장 절절했을까?
“내가 아리랑을 조사하면서 가장 아리랑을 절절하게 불렀을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조선 사람으로 일본의 미일전쟁에 참여하여 자살(가미가제)특공대로 출격한 탁경현이다. 출격 전에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그가 출격을 앞두고 어머니처럼 따랐던 일본인 앞에서 아리랑을 불렀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 기가 막히다. 그밖에 정신대로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았을 노수복 할머니, 감방 벽에 손톱으로 아리랑을 쓴 김산 등도 생각이 난다.”

- 책 내용 중 ‘키르키즈스탄에 고려인이 2만 명이었지만 현재는 700명뿐’이라 부분이 있다. 내가 최근 키르키즈에 갔을 때 확인한 바로는 현재도 2만 5천명이 살고 었었다. 고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지 못하고, 언론사의 자료를 근거로 쓴 것인데 사실이 그렇다면 이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곳을 답사했지만, 중앙아시아와 하와이, 멕시코 등이 빠졌다. 앞으로 이곳들도 답사하여 잘못된 부분도 바로 잡고, 더 알차게 보완할 생각이다.”

- 아리랑과 관련하여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그리고 50년 미국 교수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많은 아리랑 연구자들이 아리랑을 영문판으로 내달라는 주문을 한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부족한 채로 사명감을 갖는다. 아리랑을 좀 더 규명하여 고치고 보완한 뒤 영문판 발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50년 미국 생활에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은 정말 중요하다. 다른 나라에 유학을 가든 이민을 가든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노학자와 장시간의 대담을 가졌다. 83살의 고령임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선비였고, 겸손함이 몸에 밴 그런 분이었다. 문제점에 대한 과감한 지적에도 흥분하지 않고 인정하는 모습이야말로 대학자다운, 선비다운 풍모를 보여주었음이다. 또 그는 이지출판의 서용순 사장이 모자라는 원고를 짜증한 번 안 내고 좋은 책으로 만들어주었다며 극구 칭찬했다. 이정면 박사는 그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내게 83년의 철학을 담아주고 있었다.
/ 김영조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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