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불교신문]신춘문예 시 당선작
강
이 주 렴
1
깊이 흐를수록 뜨거워진다는 건 돌아올 메아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건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이거나
팽창하는 하늘의 속삭임일지도 몰라요 갈대가 맨발로
웅숭그린 강가에서 당신을 떠나 보내고 물수제비를 뜨며
단발간격으로 수면 흔들어 놓는 납작 돌멩이의 몸부림이
낯설지 않은데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저 돌멩이의 마지막
흔적이 바닥을 울리는 순간 찡한 뜨거움으로 녹아
흐르겠지요
2
맨 처음 당신을 찾아 나섰던 그 자리 거기 나는 꼼짝없이
발묶여 있는데요 깊게 흐를수록 멀어지는 당신을, 아득한
바닥에서 푸른 피 흘리며 나는 다슬기처럼 시큼해지는데요
뜨겁다니요 시리디시린 혈관 껴안아 주는 건 피붙이같이
뿌리 얽힌 갈대 뿐이었어요
3
어쩌면 물구덩인 듯 보여요 깊어지라 한 마디를 水深만큼
던지고 뗏목 따라 떠난 당신을 돌아올 거라 손꼽는 망부석
하나가. 어쩌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먼 나루 하나 남겨
놓고 떠났는데요 혹 돌아올지도 모르지요 수증기나 구름
혹은 비가 되어 당신이 깊게 박아놓은 혈관의 뿌리를
뜨겁게 헹궈주리라 믿는데요
심사평
응모한 작품들에는 응모한 사람들의 정성이 행간에 숨쉬고 있었다. 시를 사랑하고 불심에 가득찬 응모자들의 마음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작품들을 두고 고민에 빠졌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시조에서 정현숙의 ‘11월, 장곡사에 비가 내리네’ 외 4편과 정창영의 ‘수국’외 6편, 시에서 박형수의 ‘佛影寺에서’외 4편, 박성필의 ‘남장사’ 외 5편, 이주렴의 ‘강’외 6편을 마지막까지 읽고 또 읽었다.
정현숙의 시조는 시조시의 정통성을 이은 모범답안적 작품이라 할만했다. 언어의 조탁과 시조가 가진 자수율에 의한 운율의 획득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모범답안이 항용 그렇듯이 파격적인 창의성과 무한한 상상력에로 향한 아쉬움과 갈증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장창영의 응모한 시조들은 수준이 모두 고른 편이었고, 무엇보다 시조의 정통적 틀을 벗어나려는 파격과 개성이 돋보였다. 현대시조시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행로를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예사롭지 않은 행갈이 방법과 언어의 조탁에서 현대시조가 고시조와 왜 다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창영의 시조를 가작으로 선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형수의 시들은 단아했다. 그 단아함은 언어의 절제를 통한 조사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응모한 시편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은 것은 흠이었다. 박성필의 시는 화려한 시적 수사와 자유분방한 시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는 기성시인 누군가의 시에서 읽었던 분위기가 자꾸만 느껴졌다.
이주렴의 시는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강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절제도 생각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시 속에 용해시킨 작품이다. 윤회와 인연 그리고 부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만큼 승화시켜 놓은 것은 이주렴의 시적 역량이 일정한 수준이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이 시인이 더욱 분발하기를 기대한다.
김 선 학
(문학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당선 소감
오랜동안 캄캄한 바다에 홀로 떠 있었습니다. 망망한 바다의 어둠 속에서 가랑잎같은 나룻배 하나에 몸 실은 채, 표류할 섬 하나 보이지 않고 방향 가늠할 표적 하나 없이 나아갈 항로를 잃고 있었습니다. 파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뒤로 밀려나 언제나 그 자리인, 무감각 상태에서 헤어나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주위와 싸우기 전 자신과의 싸움에 먼저 지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소스라치듯 깨어나 보면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질책 담은 눈망울을 하고 죄다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아, 아찔하게 정신을 가다듬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일상에 지친 감정을 깨워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하는 감각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싸움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막, 한 줄기 구원같은 등대빛이 서방정토에서 비춰 왔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파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증거를 확인한날,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몫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詩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좋은 시라 격려해 준 知人들과 시의 正道를 걷도록 준엄하게 채찍질해 주신 서지월 선생님, 부족한 작품을 選해 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불교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강
이 주 렴
1
깊이 흐를수록 뜨거워진다는 건 돌아올 메아리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건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이거나
팽창하는 하늘의 속삭임일지도 몰라요 갈대가 맨발로
웅숭그린 강가에서 당신을 떠나 보내고 물수제비를 뜨며
단발간격으로 수면 흔들어 놓는 납작 돌멩이의 몸부림이
낯설지 않은데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저 돌멩이의 마지막
흔적이 바닥을 울리는 순간 찡한 뜨거움으로 녹아
흐르겠지요
2
맨 처음 당신을 찾아 나섰던 그 자리 거기 나는 꼼짝없이
발묶여 있는데요 깊게 흐를수록 멀어지는 당신을, 아득한
바닥에서 푸른 피 흘리며 나는 다슬기처럼 시큼해지는데요
뜨겁다니요 시리디시린 혈관 껴안아 주는 건 피붙이같이
뿌리 얽힌 갈대 뿐이었어요
3
어쩌면 물구덩인 듯 보여요 깊어지라 한 마디를 水深만큼
던지고 뗏목 따라 떠난 당신을 돌아올 거라 손꼽는 망부석
하나가. 어쩌면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먼 나루 하나 남겨
놓고 떠났는데요 혹 돌아올지도 모르지요 수증기나 구름
혹은 비가 되어 당신이 깊게 박아놓은 혈관의 뿌리를
뜨겁게 헹궈주리라 믿는데요
심사평
응모한 작품들에는 응모한 사람들의 정성이 행간에 숨쉬고 있었다. 시를 사랑하고 불심에 가득찬 응모자들의 마음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었다.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작품들을 두고 고민에 빠졌던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시조에서 정현숙의 ‘11월, 장곡사에 비가 내리네’ 외 4편과 정창영의 ‘수국’외 6편, 시에서 박형수의 ‘佛影寺에서’외 4편, 박성필의 ‘남장사’ 외 5편, 이주렴의 ‘강’외 6편을 마지막까지 읽고 또 읽었다.
정현숙의 시조는 시조시의 정통성을 이은 모범답안적 작품이라 할만했다. 언어의 조탁과 시조가 가진 자수율에 의한 운율의 획득 등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모범답안이 항용 그렇듯이 파격적인 창의성과 무한한 상상력에로 향한 아쉬움과 갈증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장창영의 응모한 시조들은 수준이 모두 고른 편이었고, 무엇보다 시조의 정통적 틀을 벗어나려는 파격과 개성이 돋보였다. 현대시조시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행로를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예사롭지 않은 행갈이 방법과 언어의 조탁에서 현대시조가 고시조와 왜 다른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창영의 시조를 가작으로 선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형수의 시들은 단아했다. 그 단아함은 언어의 절제를 통한 조사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응모한 시편들의 수준이 고르지 않은 것은 흠이었다. 박성필의 시는 화려한 시적 수사와 자유분방한 시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는 기성시인 누군가의 시에서 읽었던 분위기가 자꾸만 느껴졌다.
이주렴의 시는 도도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강한 개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절제도 생각하는 것이 이 시인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강’은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불교적 사유를 시 속에 용해시킨 작품이다. 윤회와 인연 그리고 부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만큼 승화시켜 놓은 것은 이주렴의 시적 역량이 일정한 수준이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면서 이 시인이 더욱 분발하기를 기대한다.
김 선 학
(문학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당선 소감
오랜동안 캄캄한 바다에 홀로 떠 있었습니다. 망망한 바다의 어둠 속에서 가랑잎같은 나룻배 하나에 몸 실은 채, 표류할 섬 하나 보이지 않고 방향 가늠할 표적 하나 없이 나아갈 항로를 잃고 있었습니다. 파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뒤로 밀려나 언제나 그 자리인, 무감각 상태에서 헤어나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주위와 싸우기 전 자신과의 싸움에 먼저 지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소스라치듯 깨어나 보면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질책 담은 눈망울을 하고 죄다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아, 아찔하게 정신을 가다듬곤 했습니다.
정말이지 일상에 지친 감정을 깨워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하는 감각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싸움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막, 한 줄기 구원같은 등대빛이 서방정토에서 비춰 왔습니다. 끝도 없을 것 같던 파도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증거를 확인한날, ‘인간에게 가장 훌륭한 몫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詩가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좋은 시라 격려해 준 知人들과 시의 正道를 걷도록 준엄하게 채찍질해 주신 서지월 선생님, 부족한 작품을 選해 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불교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출처 : 작가 사상
글쓴이 : 엘시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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