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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배객에겐 담배가 으뜸이다

문근영 2015. 2. 24. 04:16

유배객에겐 담배가 으뜸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감해주고, 세수(稅收)가 갈수록 줄어들어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자, 국민건강을 보살핀다는 핑계를 대어 담뱃값을 대폭 올리자, 별별 일들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조용해지질 않습니다. 담뱃값 때문에 그 좋아하는 담배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서민들의 애소도 서글프게 들리지만, 담뱃값 때문이 아니라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박대가 아니꼽고 치사해서 담배를 끊는다는 결연한 내용의 글을 발표한 유홍준교수의 사연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해주기도 합니다.

  1972년 가을 유신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내려 온 국민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게 꼭꼭 조아 매던 시절,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내던 그 시절의 담배 맛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1973년 초봄, 유신반대운동의 전국 최초 사건인 「전남대 함성지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제1조의 ‘반국가단체구성 예비음모’라는 무서운 죄명으로 전남도 경찰국 공작분실 지하에서 무자비한 고문 하에 수사를 받던 시절, 거짓 자백을 받아낼 속셈으로 한가치, 두가치씩의 담배를 건네주면, 그것을 빨고 연기를 내뱉을 때의 그 쾌감의 담배 맛이 다시 또 생각납니다. 어떤 내용으로 위조해서, 어떤 죄를 주더라도 상관할 일이 아니고, 그저 담배 한가치의 그 황홀한 맛을 지금이라고 잊을 수 있겠는가요.

  지금이야 나이도 있고 건강 때문에도 담배를 끊은 지 오래이지만, 담배의 그 참맛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민들에게 그처럼 멋있고 맛있는 담배를 세수 때문에 가격을 올렸다면, 역시 정부는 국민에게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1801년 신유옥사에 연루되어 경상도 포항시 곁의 장기라는 곳에서 초봄부터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유배 초기의 괴롭고 아픈 마음을 달래줄 길은 오직 담배 피우는 일이었나 봅니다.

육우(陸羽)가 지은 다경(茶經)도 좋고
유령(劉伶)의 주덕송도 기이한 글이지
담바고가 요즘 새로 나왔으니
유배객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지
살짝 빨아들이면 향기 그윽하고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처럼 간들간들
객지의 잠자리 언제나 편치 못한데
봄날은 왜 이리도 길기만 할까

   陸羽茶經好
   劉伶酒頌奇
   淡婆今始出
   遷客最相知
   細吸涵芳烈
   微噴看?絲
   旅眠常不穩
   春日更遲遲


  「담배(煙)」라는 제목의 짤막한 시 한편입니다. 겨울을 지나 밤이 많이 짧아졌건만, 낯선 객지 생활에 봄밤에 숙면을 하지 못하고, 길어진 봄날에 해는 길기만 하여 지루하고 답답할 때, 담배가 아니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그 무렵 외국에서 들어오기 시작했던 ‘권련’이라는 담바고(타바코)가 유배객에게 가장 좋은 기호품이라는 말에 동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짝 빨아드리면 향기 물씬하고’ ‘슬그머니 내뿜으면 실낱처럼 하늘거리는’ 담배피울 때의 정경을 다산은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담배를 돈 때문에,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러워서, 억지로 끊어야 하는 애연가들의 아픔을 어떻게 달래줄까요. 「조단련문(吊斷煙文)」으로 위로해드립니다. 오호 애재라 !

박석무 드림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고산서원 원장
· 성균관대 석좌교수

·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출처 : 박종국에세이칼럼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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