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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야기] 실학,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가

문근영 2014. 5. 13. 00:30

 [이야기] 실학,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가
  글쓴이 : 한기형     날짜 : 2007-04-04 09:10     조회 : 371    

1910년대 잡지였던 『청춘』은 창간호(1914.10)부터 ‘세계문학개관’과 ‘섭렵소초(涉獵小抄)’로 명명된 각각의 지면을 통해 서구와 한국의 고전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너 참 불상타』, 『갱생』, 『실락원』, 『돈기호전기』, 『켄터베리기』 등과 「연암외전」, 「수성지」, 「옥경십이루기(玉京十二樓記)」(홍석주),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허난설헌)이 그러한 고전의 사례로 『청춘』에 게재된 작품들이다.


이 잡지의 주재자였던 최남선이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한국과 서구의 고전작품들을 대비하려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 자료들은 한문에 국문토를 단 정도의 가공을 한 것이므로 근대적 국민문화의 읽을거리 수준으로 환골탈태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작품의 규모면에서도 서구의 것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서구문학의 정전들이 소개되는 와중에 한국자료들이 배치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한국고전들은 이전과 다른 세계문화사적 위상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 상대적 공간을 우리는 ‘민족지식의 대두’, 혹은 ‘지식의 민족화’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정 시공간을 벗어나 세계사적 위상과 보편적 가치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청춘』이 ‘섭렵소초’의 첫 자리에, 그것도 2회에 걸쳐 「연암외전」 전체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중은 기본적으로 실학파 문인들에 대한 최남선의 깊은 관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최남선 개인의 취향이기에 앞서 이미 말했던 ‘지식의 민족화’를 위한 고전유산의 근대적 재평가 작업과 긴절히 연관된 현상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고전유산의 보급과 국문운동의 확산을 두 축으로 진행된 1910년대 ‘조선광문회’의 활동을 돌아보게 된다. 


1910년대 조선광문회가 간행한 24종 46책 가운데 실학과 연계된 도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1911)와 정약용의 『아언각비』 『경세유표』를 필두로 홍양호의 『해동명장전』, 이중환의 『택리지』, 한치윤의 『해동역사』,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신경준의 『산경표』 등이 있다. 간행예정 도서목록인 「조선광문회간행서목개략」에 통해 보면 실학의 비중은 더욱 높아져 유형원, 이익, 정약용, 한백겸, 유득공, 안정복, 이규경 등 여러 학자들의 저서가 ‘조선광문회’ 고전 간행 사업의 중핵으로 상정되어 있었다. 이렇듯 ‘조선광문회’의 활동은 실학의 근대적 재인식과 연계된 ‘민족학’의 구축에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 ‘조선광문회’의 핵심인물인 최남선, 박은식, 류근, 김교헌, 주시경, 김두봉, 이규영, 권덕규 등의 역사적 활동을 상고해 볼 때, 이러한 추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연암외전」의 『청춘』 게재는 선인의 고매한 문장에 대한 후인의 관심과 애정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연암의 소설이 빅토르 위고의 『너 참 불상타』와 동일한 매체 공간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른바 ‘세계문학’과의 병존을 통해 연암의 소설은 이전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망을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연암의 사상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벗어나 보편적인 가치로 확장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했다. ‘세계지식’으로 포장된 ‘서구지식’의 도래가 한국의 특정한 시공간에 갇혀 있던 연암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만든 것이다.


20세기 '근대적 민족학'의 역사성과 새로운 시대적 요


1914년 조선광문회는 다산의 『경세유표』를 간행하면서 이건방(李建芳)이 1908년에 쓴 「방례초본 서(邦禮艸本序)」(『방례초본』은 『경세유표』의 원제이다)를 붙였다. 이 글에서 이건방은 『만법정리(萬法精理)』를 지은 맹덕사구(孟德斯鳩, 몽테스키외)와 『民約論(민약론)』을 쓴 로사(盧梭, 루소)의 학설이 서구적 근대의 토대가 되었음을 지적한 후, 다산의 학문이 그들에 비해 손색이 없음에도 동서의 차이로 인해 세상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런 연후 이건방은 “그 한사람의 우 · 불우(遇 · 不遇)에 따라 국가의 성쇠와 존망이 달려 있는 즉, 내가 선생을 슬퍼하는 까닭이 어찌 단지 그 개인의 불우 때문만이겠는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건방의 간곡한 염원이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다산을 중심으로 한 실학의 정신은 이후 20세기를 관통하며 한국적 근대이념의 기원으로 그 역사상이 새롭게 구성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현재, 근대적 위기의 대항 거점이던 20세기 ‘민족학’의 역사적 성격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길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학도 그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학문지형 속에 높여 있다. 따라서 다음 시대에도 실학이 여전히 유의미한 시대정신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러한 도전에 대한 대응의 결과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글쓴이 / 한기형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  저서 : 『한국 근대소설사의 시각』(소명출판, 1999)

           『충돌과 착종의 동아시아를 넘어서』(공저, 성균관대출판부, 2007)

           『근대를 다시 읽는다』(공저, 역사비평사, 2006)

           『근대어 ·  근대매체 ·  근대문학』(공저, 성균관대출판부, 2006)

           『카프비평자료총서』(공편, 태학사, 1991)

 

 

 

출처 : 박종국 에세이칼럼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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