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틀 뒤면 565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한글을 진정 사랑하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지난 여름 나는 우연히 국회 의원회관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마침 “한자교육기본법 공청회”라는 행사가 있어 잠깐 시간이 되기에 들려보았다. 강연장 안으로 들어서니 모 서울대 교수가 발제 중이었다. 무엇인지 후끈한 열기 가운데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 발제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다. 그래서 500 여 년 뒤에는 나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한자를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만 한다.”
앞뒤 이야기는 잊었지만 논지는 ‘한자교육은 꼭 필요하다’였고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위와 같은 이야기였다. 출산율이 낮아 500 여 년 뒤에 나라가 없어질 거라는 말도 막말이지만 그런 까닭으로 한자를 초등학교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논리란 말인가!
발제자는 이어서 “안중근 의사”라고 한글로 쓰면 안중근이 항일투쟁을 한 의사인지 병을 고치는 의사인지 모르기 때문에 한자를 써야 한다고 핏대를 올렸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안중근은 독립운동한 사람” 그렇게 국민이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슈바이처 의사”라고 했을 때 ‘독립운동한 의사인지 병 고치는 의사’인지 헷갈리지 않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한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는 행사라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다는 교수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 자리에 참석했던 청중들이 그 어이없는 말에 우레와 같은 큰 박수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한 이백 명은 족히 될 듯한 청중은 대부분 중고년층이었다. 새삼 “한글화된 조선이 짜증이라도 나는 듯” 그날 행사장은 거의 한글정책의 성토장 같았다.
왜 알기 쉽고 편리한 글자 한글을 놔두고 한자로 표기 못 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이미 566년 전 세종대왕이 백성의 불편한 말글살이를 위해 만든 위대한 글자를 놔두고 여전히 한자교육에 목을 매는 것인지 답답하다.
한자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연일 한자교육 필요성을 위해 공청회다 가두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3일 잠실 종합운동장 안에서 개최된 개천절 행사에도 그들은 들어와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한자교육 찬성 서명을 받으러 다녔고 필자에게도 다가와서 서명을 부탁했다. 그렇게 한자교육을 위해 눈에 핏발이 서있는 그들에 비해 우리말글을 지켜야 하는 한글단체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한글날 반짝 행사나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노란 띠를 두르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나타나서 한자교육 서명을 받는 사람들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566돌 한글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에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외친 외솔 최현배 선생의 볼 낯이 없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더욱더 그러하다.
독자 정용대 / 회사원(47살, 서초구 서초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