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침의 시 / 이진우 |
| 회사씨 이진우 오랜 시간을 당신과 인연을 맺고 당신을 사랑하며 지냈습니다 그 날들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당신께 꿈을 드렸고, 시간을 드렸고, 자유를 드렸으며 가족을 맡겼지요 당신 생각에 잠 못 들던 밤은 셀 수도 없습니다 이제 사직서를 내면서 당신을 잊으려 합니다 당신이 저를 행복하지 않게 해 주어서가 아닙니다 제 마음을 몰라주어서도 아닙니다 당신과 저 사이에는 아무 앙금도 없습니다 굳이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일신상의 이유, 그 하나만으로 당신을 떠납니다 이렇게 당신을 떠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당신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사회심리학자 Turner(1985)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동일시하며 범주화하여 “오랜 시간을 당신과 인연을 맺고/당신을 사랑하며 지내”게 되면서 사회적 정체감(social identity)을 형성하게 된다고 보았어요. 사회적 정체감을 가지게 되면 그 집단의 가치관을 동일시하게 되어 개인적 정체감은 최소화 되고,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고 보았답니다. 집단에 대한 동일시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기개념(self concept)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게 되어 “당신께 꿈을 드렸고, 시간을 드렸고, 자유를 드렸으며/가족을 맡”기게 되며, “당신 생각에 잠 못 들던 밤은 셀 수도 없는”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거지요. 정작 자신이 “잠 못 이루며” 돌보아야 할 사랑하는 가족은 뒷전으로 하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라는 집단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 “아버지”의 초상이랍니다. 그래서 자신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조차도 그 집단의 일원임을 내세우고 자존심과 긍지를 맛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미 개개인의 에너지와 시간과 꿈을 뽑아 먹으며 괴물이 되어버린 집단은 어떤가요? 정말 개개인이 집단에 바치는 그런 “사랑과 진심”으로 개인을 배려하고 있을까요? 무한경쟁 시스템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위에 개인을 올려놓고는 한 사람의 이익이 타인의 손실이라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속에서 게임에 지면 사정없이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휘두르며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그동안 청춘과 시간과 가족들의 희생과 자신의 정체감마져 내던지고 “짝사랑”했던 “회사”의 냉정함에 진저리가 쳐져,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느니 “일신상의 이유”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울컥울컥 목을 치받쳐도, 양 어깨에 매달린 토끼 같은 자식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밝은 햇살처럼 따라오는 출근길에 있는 우리들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
- '문화저널21 '에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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