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③
[중앙일보] 입력 2011.07.28 00:22 / 수정 2011.07.28 00:22
단순해서 새롭다, 흙장난하듯 쓴 시
시 -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위족이 좋다
때로 썩어가는 먹이를 구하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다시 내보내는 식포가 좋다
맑은 물에도 살고 짠물에도 살며
너무 많은 물은 머금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
물과 공기가 드나드는 투명한 막이 좋다
일정한 크기가 되면
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
둘로 나뉘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찾아온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의 신비,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
섬모와 섬모가 닿았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올해 미당문학상 예심에선 나희덕(45) 시인을 놓고 “너무 유려하고 너무 능숙해 무슨 소재로든 다 잘 쓰는 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다”(최정례 예심위원)는 평이 나왔다. 장점이 단점일 수 있다 할지언정 나희덕 시인이 자타가 공인하는, 잘 쓰는 시인임은 분명하다. 그는 미당문학상이 시작된 첫 해(2001년)부터 6년간 내리 빠짐 없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동안 뜸하다 5년만에 본심에 오른 것이다. 뜸하던 그 시기, 일년간 일부러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나와 거리를 두고 몸이 바뀌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시 쓸 때 몸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걸 느껴요.”
자신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시·공간까지도 달리 놓이게 했다. 다른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경험하러 자주 떠났다.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시의 상당수가 외국 여행에서 본 풍경을 소재로 쓴 것이다. 그러나 여행시라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이국적 풍경이 세계의 한 단면으로서 내면에 자리잡을 때까지 조금 기다렸기 때문이다. 시인은 신문에 실릴 대표작으로는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을 골랐다. 흔히 ‘단세포’라 놀림 받는 존재인 아메바에게서 시인은 ‘일정한 크기가 되면/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며 자기를 비우고 쪼갬으로써 얻는 충일함을 읽어낸다.
“다른 존재를 향한 시선이 열리길 바라는 열망이 컸어요. 아메바나 불가사리 같은 아주 원시적인 생명체들, 인간과는 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것에 대한 관심이 가더군요.”
시를 쓰는 방식도 약간은 아메바처럼, 단순하게 변했다. 예전엔 시적 대상이 충분히 체화되고 의미가 명료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삭혔다. 일단 종이에 옮겨 적으면 고치지 않아도 한 편의 시가 나오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적인 대상이 가진 파동이 아주 모호할 때 그 안에 쑥 들어가 몸을 싣는다.
“옛날엔 작품을 만드는 장인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어린애 흙장난하듯 물렁물렁한 걸 갖고 노는 듯한 느낌이죠. 지금이 시를 쓰는 순간은 더 좋아요.”
이경희 기자

◆나희덕=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집 『뿌리에게』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어두워진다는 것 』 『 사라진 손바닥 』 『야생사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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