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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845. 신교육에 힘쓴 고종 후궁 엄귀비 무덤 영휘원

문근영 2013. 12. 5. 07:25

1845. 신교육에 힘쓴 고종 후궁 엄귀비 무덤 영휘원
 
 
 


동대문구 청량리동 204-2에는 사적 제361호 영휘원(永徽園)이 있습니다. 영휘원은 조선시대 고종의 후궁 순헌귀비 엄씨의 무덤이지요. 엄귀비는 1854년 평민 출신인 엄진삼의 큰딸로 태어나, 8세에 궁에 들어와서 명성황후를 가까이서 모시는 시위상궁이 되었으며, 나이 32살 때 고종의 승은을 입었지만 명성황후의 시기로 궐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엄귀비는 1896년 일본의 흉악한 무리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다시 궁에 들어와 두려움에 시달리던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키는 기지를 발휘했으며 러시아공사관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11살의 영친왕을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강제로 일본에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강제로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나라 잃은 망국의 왕비 신분이었지만 엄귀비는 도량이 넓고 두뇌가 명석하여 궁중에서는 활달한 여걸로 통했다고 합니다.

엄귀비는 신문물, 교육에 관심을 둬 양정의숙, 명신여학교, 진명여학교 등을 설립하였으며 이들 학교 재정을 위해 친정의 문전옥답을 팔아 재정을 후원할 만큼 여성들의 교육에 관심이 깊었으니 오늘날 여성 교육의 선구자였던 것입니다. 황태자가 되어 왕손을 이었어야 할 영친왕과 강제로 떨어져 사는 슬픔을 참아내야 했던 비운의 왕비 엄귀비는 58살로 삶을 마감한 뒤 이곳 영휘원에 잠들어있습니다.

 



                        

출처 :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글쓴이 : 김영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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