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남길순] 생강나무숲

문근영 2013. 9. 25. 08:27

생강나무숲

 
남길순
 

 

봄날 병을 얻어 그 나무 아래 누웠네

생각나무, 생각나무, 겨우내 생각에 잠긴 나의 생강나무는

가지마다 노란 불을 환하게 밝히네

 
레몬트리, 레몬트리, 마른 숲 속에 환한 꽃

 
가지를 꺾어 코에 대면

오호라, 생강

먼 우주에 가 닿고 싶은 생강 냄새 퍼져 나가고

어느 별에 두고 온 분신이 있어

밤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들

 

그 별 아래 숙연해지는 영혼들이 망울망울 매달린

생강나무 아래 서면

레몬트리, 레몬트리, 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생각이 뚝뚝 떨어지는 생강나무

생강나무꽃 지고 나면 메마른 봄 산에 비가 온다 하네. 그 산의 나무들

연둣빛으로 피어나 드디어 환한 몸이 열린다고 하네

 
나는 아직 병든 봄 산,

생강꽃 핀 생각나무 아래 참나무 토막으로 벤치를 만드네

오늘 밤엔 내 오랜 친구에게

불 밝힌 생강나무 한 그루 바치려  하네

 

 

 

―『문학들』(2013. 여름)

 

출처 : 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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