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시를 읽으면 우리의 정서가 어떤 것인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더 읽어가지 않아도 우리네의 마음에 무엇인가의 잔잔한 동요가 일어납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런 구절에서는 애절한 마음속에 가벼운 흔들림이 일어납니다. 시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공자(孔子)는 자기 아들에게 시를 읽도록 권유하면서, 시를 모르면 벽에 얼굴을 붙이고 있는 것처럼, 앞길을 전혀 모르게 된다고까지 경고를 했겠습니까. 다산 정약용, 학자, 사상가, 실학자, 정치가, 경제학자라는 많은 호칭이 가능하지만, 그는 또 탁월한 시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시가 좋았으면, 정조대왕이 다산의 시를 읽을 때마다 ‘기재(奇才)로다!’라는 말을 연발했겠습니까. 1801년 40세의 나이로 초봄에 귀양 간 경상북도 포항 곁의 장기에서 지은 시들은, 정말로 고통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자, 조선의 정다운 민족 정서였습니다. 병아리 새로 깨니 어린아이 주먹 크기 鷄子新生小似拳 연노랑 고운 털빛 너무도 사랑스러워 嫩黃毛色絶堪憐 누가 말하랴 어린 딸년 밥이나 축낸다고 誰言弱女糜虛祿 마당가에 앉아서 솔개를 쫓는 걸 堅坐中庭看嚇鳶
「장기농가(長鬐農歌)」 가녀리고 섬세한 시어들이 잔잔하게 우리의 마음속을 흔들어줍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농촌 풍경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밥이나 축낸다는 딸년은 병아리 잡아채는 솔개를 쫓고 있으니, 이런 것을 관찰하는 다산의 눈이 매섭습니다. 어저귀 삼은 초벌 순 베어주고 숫삼밭 김을 매라 檾麻初剪牡麻鋤 시어머니 헝클어진 머리, 밤 되어서야 빗질하네 公姥蓬頭夜始梳 일찍 잠든 영감(첨지)을 걷어차 일으켜서 蹴起僉知休早臥 풍로에 불붙이고 물레도 손봐야지 風爐吹火改繅車
「장기농가(長鬐農歌)」 농가의 농부들 삶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이 든 농부 부부의 생활, 어떻게 이런 표현이 가능했을까요. 사물의 깊은 내면을 통찰하는 안목이 없고서야 이런 묘사가 나왔을까요. ‘첨지(僉知)’란 벼슬 이름인데, 나이 든 농부들에게 그냥 ‘첨지’라고 부르는 말이어서, 그런 말과 같은 ‘영감(令監)’으로 바꿔서 번역했습니다. 정3품 당상관의 벼슬에 오른 사람을 ‘영감’이라 부르는데, 농촌에서는 나이 든 노인을 ‘영감’이라고 부르고, 특히 나이 든 아내가 남편의 호칭으로 부르는 통상의 말투였습니다. 아낙네란 역시, 얼굴에 로션이라도 바르고 머리에 빗질이라도 해야 하는 거지만, 온종일 일하느라, 어느 사이에 그런 얼굴이나 몸단장을 했겠습니까. 일을 마친 밤이 되어서야 머리에 빗질이라도 하는 건데, 이미 남편인 영감은 곯아 떨어져 잠이나 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로 걷어차 일으켜서는 내일 농사 준비를 시킨다는 것이니, 조선시대의 농촌 생활에 몸이 벤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구절입니다. 2,500수가 넘는 다산의 시, 어느 것 하나인들, 그런 핍진한 표현이 아닌 것이 없고, 민족의 고유한 정서들이 살아서 숨 쉬는 내용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역시 내 것,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해야만 훌륭한 시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합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