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보사찰 송광사
인간 세포를 복제하여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미세한 세포에 인간의 설계도와 제조방법, 지능 등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의 저장능력이 얼마나 더 발달해야 비슷한 수준이 될지 전문가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인간과 신의 능력차이라고 보아야 겠지요.
한술 더 떠서 저장능력이 무한대인 것도 있답니다.
불경 중에 가장 수준이 높다는 화엄경을 210자로 압축한 법성계의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는
‘작은 티끌에 온 세상이 담겨있고, 모든 티끌은 모두 똑같다’라는 말로 저장능력이라는 단어가 무의미 해 집니다.
이 세상의 본질인 불성(佛性)은 시간과 공간, 질량 등에서
3차원 존재인 지구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과 이해가 불가능 한데
깨달은 스님만이 알게 된답니다.
다차원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깨달은 스님은 ‘내가 곳 너’, ‘나비와 내가 하나’라는 설명이 불가능한 말을 합니다.
이런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큰 스님, 즉 국사(國師)가 16명이나 배출된 절이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입니다.
그래서 송광사에는 대웅전 뒤에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두었습니다.
불보사찰인 통도사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고,
법보사찰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국내에서 건물이 가장 많았다는 송광사는 전란으로 많은 불당이 불타 없어 졌으나
절 입구의 우화각과 육감정 누대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개울을 막아 만든 연못에 장주석을 세우고 누마루를 덧붙인 육감정과 우화각이
물속에 비친 모습은 송광사의 백미입니다.
1930년대와 다른 점은 육감정의 난간이 계자각으로 바뀐 정도입니다.
그래도 1930년대의 모습으로 복원한 그림과 현재의 모습이 9군데가 다르니
신문의 그림과 현장을 비교하여 달라진 부분을 찾아보세요.
* 후기 : 송광사를 그림으로써 3보 사찰을 모두 그린 셈이 되었습니다.
사실 2002년 통도사 15개 법당을 그린 후 신문과 잡지 연재를 계속하면서
여러 절에서 유. 무언의 압력이 많았습니다.
해인사 주지 스님은 “이 사람이 우리 절은 언제 그리려는고?”하는 등
섭섭함을 전하기도 했고,
송광사 주지 영배스님도 무언의 압력이 있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