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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대외무역을 금지한 이유는 태조 왕건이 자신이 해상무역으로 국가무대에 등장할 재력을 구축한 사람이고 그 이전에 장보고가 해상무역으로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본국인 신라의 왕권을 위협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정권에 도전할만한 세력의 형성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진한 저 <고려시대 송상왕래(宋商往來) 연구> 참조)
지나친 경계심은 나를 약하게 해…
물론, 나라를 건국한 자의 첫 번 과제는 정권을 튼튼히 하고 정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일 터이니 놀라거나 비난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또 선정에 힘쓰는 정권이라면 정권의 안정은 권력자 뿐 아니라 국민의 안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라의 발전과 부강의 싹을 잘랐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하기야 왕건이 (그것이 그가 남긴 유훈이 아니라는 주장을 믿고 싶은) ‘훈요십조’에서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 밖(현 호남지방) 사람을 역심을 품을까 두려우니 등용하지 말라고까지 했다면 고려왕조에서 코스모폴리탄 마인드는 기대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고려가 자국상인들의 해외진출을 허용했다면 고려는 한층 더 발전하고 부강했겠고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Corea’ 또는 ‘Korea’가 세계인의 의식 속에 일찌감치 각인되었을 것이다.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근대에 일찍이 선진국이 된 나라들은 거의 모두 대외무역으로 부강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항로개척과 항해술의 발달은 국가, 왕실이 직접 지휘하고 후원했다. 대항해시대를 연 베니스의 통치자(doge)들, 포르튜갈의 ‘항해왕자’ 엔리케, 스페인의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 등… 그들의 후원과 독려의 힘으로 벌어들인 부(富)와 확대된 인식지평이 르네쌍스와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작은 이득, 큰 혜택
고려 왕실이 대외무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그 힘을 활용했더라면 체질이 강해져서 무신정권의 허수아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민의 지적 지평이 넓어져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유교국가의 건립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쇄국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웃나라와의 마찰로 국력 소모도 많았고 피해와 굴욕도 많았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 속에서 생존한 것이 결국 유럽을 오늘날의 유럽으로 만들었다. 내 잇속을 차리고 내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행동이 결국은 나를 약하게 해서 외부의 공격이나 모함에 무너지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의 우리 정당들의 행태는 내부적으로는 계파의 이익을 챙기느라 국민이 염두에도 없는 것은 물론 당의 분해조차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상대 당을 흠집 내고 지지자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거짓된 주장, 무리한 공약도 서슴지 않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것도 삼가 지 않았다. 나라의 백년대계 같은 것은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 같았다.
우리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나의 잇속만을 목표로 하고 주변에 돌아 갈 악영향을 애써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곧바로, 또는 한 바퀴 돌아서 나에게 재앙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후회 없는 인생경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잇속과 모두의 이익이 상충할 때 후자를 우위에 두고 나의 성심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