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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족사회의 종말 [강명관]

문근영 2013. 1. 4. 07:45

 

제 252 호
귀족사회의 종말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최성환(崔瑆煥)은 양반은 아니고 음양과(陰陽科) 중인이다. 다만 그 자신은 무과에 합격하여 무반 청직(淸職)인 선전관(宣傳官)을 지낸다. 헌종(憲宗, 1834∼1849)은 어느 날 최성환에게 국가 경영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책자의 형태로 저술해서 올리라고 한다. 선전관은 왕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이므로, 최성환은 헌종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또 헌종 역시 그 접촉을 통해 그의 학문을 알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후기 사회를 진단하고 내린 병증은…

19세기 중반의 조선은 중병에 걸린 신세였다. 왕명을 받들어 최성환이 조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저술에 몰두하고 있는데 헌종이 급사한다. 하지만 그는 저술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는 고문비략(顧問備略)이란 책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조선이란 국가를 개혁할 온갖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의 개혁에 관한 것이다.

최성환은 무엇보다 극소수 가문이 국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땅이 한(漢)나라의 한 군(郡)에도 미치지 못한다.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보태는 방식으로 해도 또한 천리를 넘지 못한다. 경내를 깡그리 뒤져 인재를 찾아도 꼭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이 천리의 땅으로 인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옳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래도 천리를 깡그리 뒤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선비를 찾는 범위는 천리도 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팔도 안에서 서북 3도의 평소 크게 등용하지 않는 인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5도의 인사도 크게 등용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간혹 한둘 드러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모두 경화세족(京華世族)이 흘러와 사는 경우다. 외방 인사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오늘날 찾아 거두어 쓰는 곳은 오직 경기(京畿) 한 도(道)에 있는 것이다.

경기 한 도라고 해도 모두 그런 것일 수는 없다. 오직 서울 오부(五部) 안만이 그럴 뿐이다. 그런즉 천리 땅 중에서 3백 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3백 분의 1이라도 해도 모두 그럴 것일 수는 없다. 오직 세경사대부(世卿士大夫)만 그럴 뿐이다. 세경사대부로서 오직 귀성대족(貴姓大族)만이 그럴 뿐이니, 그 1분 중에서도 또 백분의 일, 천 분의 일인 것이다.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가장 큰 병

최성환은 황해도·평안도·함경도가 원래부터 관직에서 배제되고, 나머지 5도 역시 차례로 배제되어 결국 서울의 극소수 사족만이 관직을 독점하게 된 현상을 지적한다. 이 사족이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이다.

경화세족의 부정적 속성을 반영한 명사가 곧 벌열(閥閱)이다. 벌열은 상호간 간단없는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고문비략이 쓰인 19세기 중반(1858년)이면 국가권력은 한두 세도가문(勢道家門)과 그에 연대했던 극소수 가문으로 집중되었다. 이것이 최성환이 주장하는 ‘귀족대성’이다. 극소수 가문에 의한 국가권력의 사유화! 이것이 19세기 조선이 앓았던 병증의 원인이었다.

최성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족이 독점했던 관료직을 농민, 상인, 수공업자 모두에게 개방하자고 주장한다. 과거제는 유지하지만 향리(鄕里)의 여론을 따라 과거에 응시할 사람을 선별하고, 시험과목은 ‘시정(時政)의 득실’과 ‘경제의 편의 여부’에 대한 논문으로만 제한하자고 제안한다.

최성환의 제안은 근본적이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제안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에도 서울의 귀족들은 국가를 제 사유물처럼 주물렀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터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현재 학벌과 부(富), 권력이 세습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사회적 이동성이 극히 박약한 강고한 귀족사회가 될 것이다. 귀족사회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는 역사가 이미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최성환의 지적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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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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