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경주 분황사 (08. 12. 27)

문근영 2012. 11. 4. 10:36

첨성대를 돌아보고 숙소로 가는 길목에 분황사가 있길래 들어가 봤다.

저녁 무렵이라 약간 어둡다.

 

선덕여왕 3년(634년)에 지어진 절로서,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다.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 경덕왕 14년(755년)에

불상주조의 대가인 강고 내말이 만든 약사여래상이 있었다. 선덕여왕의 권유로 자장법사도 오래 머물렀으며, 원효의 아들인 설총은

원효대사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

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이 절은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 통일신라 이전에 세운 모전탑으로 원형은 5층인지 7층인지 9층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중에서 지금은

3층(국보30호)만 남아있다. 신라탑은 전탑양식이 유행하여 백제의 미륵사지 목탑구조 모방 전탑과 결합하여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을 이루었다.

통일신라의 모전탑 및 전탑은 안동, 의성, 제천 등지에 남아있다. 임진왜란때에 왜구들이 이 탑을 반쯤 헐어갔다고 한다.

이 탑은 바다속의 안산암을 갈아서 쌓은 것으로 1915년 탑을 수리하다가 사리장치가 든 돌 상자 속에서는 구슬과 금은으로 된 바늘, 고려

시대 화폐가 발견됨으로써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바늘은 탑을 건립한 선덕여왕과 관계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에는 1층 탑신 4면에 감실을 만들고 돌문을 달았으며 이 입구마다 좌우로 수문장인 금강역사상이 있고, 탑에는 돌사자가 놓여 있다.

금강역사상은 조각이 아름답고 입체감이 두드러져 삼국시대 조각기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분황사 경내, 당시의 우물 석정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데 이 우물 속에 호국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1965년 우물 속에서

14구의 목이 부러진 석불들이 출토되었고 이 석불들은 경주국립박물관 경내에 전시되고 있다. 석정은 신라샘의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

초석의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대단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알수 있다. 지금의 약사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졌다.

* 주요문화재 - 모전석탑(模塼石塔, 국보 제30호)

 

 

 

 

 

 

 

 

 

 

 

 

 

 

 

 

 

 

 

 

 

 

 

 

 

 

 

출처 : 유담의 등산과 야생화
글쓴이 : 柔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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