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일찍 충주에서 운동을 하고나니 오후 두시반 정도가 되었다.
어렸을때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직장을 따라 충주에서 2년반정도 살면서 남산국민학교를 1학년부터 3학년1학기까지 다니기도 했는데
철이들은 후로는 지나다니기만 했지 한번도 머무르거나 유적을 찾아보러 일부러 가본적이 없다.
운동을 마치고 같이 운동했던 친구도 탄금대에 가보고 싶다길래 함께 탄금대를 찾았다.
토요일 오후 50대초반의 두 남자가 공원 겸 유원지로 변한 탄금대를 돌아보기는 뻘쭘 했지만
40여년전 어렸을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한시간 정도 돌아보았다.
탄금대
지금에 와서 공원으로 말끔히 단장된 탄금대는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켜면서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순국의 현장이며, 현대로 넘어와서는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숨져간 넋들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장중한 남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칠금동 대문산 기슭의 탄금대. 1,400년 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는 조국의 멸망 후에 이 곳에
강제로 이주당한 수 많은 가야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당시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
조선조로 넘어와서 임진왜란을 맞아 탄금대는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 치열한 격전지로 변모한다. 신립장군의 가슴아픈 패전이 이곳에서 기록된다. 선조 25년
(1592) 4월 14일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5만명의 왜군이 거침없이 서울을 향해 쳐들어가자 신립장군은 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방면을
지키게 된다. 신립장군은 지형을 정찰한 뒤 조령에 진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우리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해 사지에 몰아넣지 않으면 투지를
드높일수 없다 라고 판단, 28일 새벽 8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천추의 한을 품고 남한강에 투신자살, 패장의 불명예를 쓰고 만다. 탄금정 정자에서 북쪽으로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열두대라는 층암절벽이 기다린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장군이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서 열두대라는 것이다.
탄금공원 한 켠에는 충혼탑이 하나 서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 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것이다. 이 곳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향사를 지낸다. 탄금정과 충혼탑 중간에는 항일시인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비가 있어
발길을 또 한번 붙잡는다. 공원 군데군데에는 조각작품이 들어서 있고, 소나무 군락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단란한 가족 나들이를 즐길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탄금정 가는길
충혼탑
임진왜란시 전몰한 8천고혼 위령탑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벌써 수상스키 시즌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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