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시인 강제윤의 티벳 여행기

문근영 2012. 8. 31. 07:21



[티벳 여행기] (1) 윈난(云南), 구름의 남쪽
2006년 09월 21일
태어나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구름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나고 죽는 것 또한 실체가 없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

생사는 구름 같지만 생사의 무게는 구름 같지 않다. 구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삶은 실체가 없으나 삶의 고통은 실체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삶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은 거기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삶에서 원하는 것은 삶의 진실이 아니다. 위로다. 사람들은 삶의 진실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진실은 끔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의 방식으로 삶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는다. 위로란 잠시 고통에 눈멀게 해주는 마약에 불과하다.

이방(異邦)으로의 여행도 그런 것일까. 마취에서 깨면 다시 지옥이겠지. 그래도 대합실은 늘 만원이다. 대합실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다. 흐름과 멈춤의 경계, 떠남도 아니고 정주도 아닌 지점에 대합실의 시간은 위치한다. 경계의 시간을 떠도는 여행자의 삶이 비현실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비행기가 정시보다 20분 늦게 이륙한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거대한 쇳덩이가 날개 짓도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납득할 수가 없다.

윈난성의 하늘 길


본래 하늘을 날고 바다 속을 거니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신들의 일이었다. 사람이 신들의 일을 하나 둘씩 대신하게 되면서 신들의 영토는 점점 좁아져 갔다. 더 이상 현세에 신들의 영역은 없다. 신들은 모두 사후 세계로 쫓겨 갔다. 이제 이 세계의 운명은 온전히 인간의 손으로 넘어왔다. 밤 10시 30분, 인천을 떠난 중국 동방항공 여객기가 새벽 1시, 쿤밍(昆明)에 도착한다. 중국의 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이 늦다. 나는 같은 시간대를 두 번 지나왔다. 절대적 시간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시차를 두지 않는다. 북위 4˚31'에서부터 북위 53˚52'까지 남북 5,500km, 동경 135˚2'인 우수리강(江)과 헤이룽강의 합류점에서부터 파미르고원까지 동서 5,200km에 달하는 거대한 제국의 시간이 모두 북경의 시간이다. 하나의 중국을 위한 시간의 통일이다.

윈난성의 성도, 쿤밍은 흐리다. 거대한 시멘트 도시. 고층건물과 백화점, 호텔이 즐비한 거리 곳곳은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농촌을 떠나온 남루한 행색의 이농자들로 북적인다. 쿤밍 시내 어딜 가나 구걸하며 손 내미는 여인들과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이 포획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아이들 셋이 주르르 달려와 동냥 그릇을 내민다. 아이들 손에는 지폐 몇 장씩이 들려 있다. 챙겨 뒀던 비행기 기내식 빵을 하나씩 나눠준다. 마시려고 샀던 음료수 한 병도 함께 건네준다. 아이들은 순순히 물러나 의자에 앉아 빵을 먹으며 저희들끼리 속삭인다.

윈난의 시장


어째서 나는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온 것일까. 낯선 시공간 속에도 여전히 익숙한 삶의 질서가 있다. 떠나왔으나 나는 결코 떠나온 것이 아니다. 삶을 떠나서는 어떠한 삶도 불가능하다. 거리 곳곳에 옥 가게, 차를 파는 가게가 성시를 이룬다. 이곳의 여름은 그늘에 들면 가을이다. 아열대 지방이지만 해발 1500~2000미터의 고원 지대라 일 년 내내 기후에 큰 변화가 없다.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서늘하다. 예전에는 이곳에 타이 족의 나라 남조국(南詔國)과 대리국(大理國)이 있었다. 13세기부터 중국 중앙 정부의 지배가 시작됐고, 청나라 때인 17세기 말 윈난성으로 편입되었다. 2모작의 벼농사와 다양한 과일과 곡물, 열대작물이 재배된다.

시장은 풍요롭다. 옥수수 토마토, 사과, 고추, 버섯, 피망, 생강, 땅콩, 가지, 부추, 상차이(고소)등 채소는 싱싱하고 탐지다. 마늘, 오이, 호박, 배추, 갓 등 익숙한 작물들은 잠시 한국의 시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건들은 막대 저울에 달아서 판매된다. 이곳의 한 근은 500그람이다. 고춧가루도 한국 재래시장의 고춧가루 그 모습이다. 반찬가게의 갓 김치가 맛깔스럽다. 한 입 먹어 보니 많이 짜다. 메추리나 닭들은 산채로 철망 안에 갇혀 죽음을 기다린다. 옹기점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만두, 국수, 찐빵, 간식거리들은 허기진 나그네의 입맛을 자극한다. 윈난성에는 한족(漢族) 외에 타이족·먀오족[苗族]·이족[彛族] 등 20여 소수민족 60여만 명이 살고 있다. 최근에는 소수 민족 사이에 에이즈가 만연해 있다. 마약 때문이다. 주사기를 통해 에이즈가 번져 가지만 속수무책이다.

 

 




[티벳 여행기] (2) 쿤밍에서의 나날들
2006년 09월 25일
“내일이나 다음의 생, 어느 것이 먼저 올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 한다.”(티벳 속담)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해 간다. 모든 것이 덧없다. 죽음이 먼 일 같지만 실상 생사란 한 호흡에 달려 있다. 숨 쉬다가 숨 멈추면 죽음이다. 인생무상이다. 하지만 덧없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 막 살아보자는 부추김은 아닐 것이다. 함께 있지만 우리는 모두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 각기 생사의 세계로 갈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은 살아 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자각이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나를 둘러싼 존재들을 보다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다름 아니다. 쿤밍 시내의 사치스런 백화점과 거대한 빌딩들, 노숙자와 걸인들. 평등의 가치를 포기한 사회를 더 이상 사회주의라 규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가슴이 먹먹하다.

윈난은 티벳으로 가는 길목 중 하나다. 최근 칭하이(淸海)성 꺼얼무(格彌木)에서 티베트(西藏) 수도 라싸(拉薩)를 잇는 1,142㎞ 칭짱(靑藏)철도가 완공 됐다. 해발 4000미터 구간이 960㎞나 되는 하늘 길의 철로다. 베이징부터 라싸까지는 총 연장 4,064㎞나 되는 먼 여정이다. 칭짱 철도가 개통됐지만 외국 여행자에게 티벳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칭짱 철도는 그저 중국인의 티벳 유입만을 쉽게 했을 뿐이다.

윈난 성도 쿤밍 시내


외국 여행자는 차별적으로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하고 거기다 티벳 관광국(TTB)의 입경 허가서까지 따로 받아야 한다. 허가서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한국 돈으로 10만원 가까이 된다. 네팔 쪽으로 가도 허가서는 필수다. 산적들의 통행세와 다르지 않다. 개통 초기라 그런지 칭짱 철도의 표 또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청두(成都)로 가서 칭짱 열차를 타려 했으나 표를 구하는데 열흘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기차여행은 포기한다. 티벳 관광국(TTB)의 입경허가서를 받고 비행기 편으로 티벳에 들어가기로 한다. 비행기로의 이동은 중국 국제 여행사의 비싼 여행 상품을 이용해야만 한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는 여행사 몇 곳을 전전하다 어렵게 연결 된 곳이 첸 씨(Mr, Chen)의 사무실이다. 입경허가서를 대신 받아주고 비행기 표를 싸게 구해 준다고 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론리 플래닛에서 얻었다. 나중에 티벳에서 만난 여행자들의 비용과 비교해보니 결코 싼값이 아니었다. 미스터 첸은 자신이 외국 여행자들의 입경허가서를 쉽게 받아 주고 비행기 티켓을 싼값에 구해 주는 여행자의 수호천사처럼 행세했지만 그 또한 영악한 장사꾼에 불과하다. 그 자신이 티벳 관광국의 쿤밍 사무소다. 그가 입경허가서를 내 준다. 도장 하나 찍어주고 앉아서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다. 이런 자들로 인해 티벳 입경 허가서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없는 돈벌이도 만들려는 상황에 쉽게 벌리는 큰 돈벌이를 포기할 까닭이 있겠는가.

비행기 시간까지는 또 며칠을 쿤밍에서 기다려야 한다. 쿤밍 호텔 앞에서 5번 버스를 타고 서산(西山) 공원으로 간다. 버스 안은 등짐을 진 승객들로 복잡하다. 엄지족 소녀는 빈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부지런히 문자를 날린다. 휴대폰은 노키아 제품이다. 등짐을 진 젊은 여인은 짐을 진 채로 목적지까지 간다. 공원 입구의 호객은 어느 나라나 같다. 승합차도 호객을 한다. 땀 흘리며 한참을 걸어가는데 순찰 중일까. 공안 차가 달려온다. 앞좌석에 탄 남자 공안 둘은 입이 귀에 걸렸다. 뒷좌석에는 젊은 여자 여행객 셋이 환하게 웃으며 앉아 있다. 남자들의 검은 속은 국적이 없다. 남자 여행객에게는 흠을 잡아 무언가 뜯어낼 생각이나 하는 공안들도 여자들에게는 순한 양이다. 그 심정을 누가 탓하겠는가. 낯선 땅의 풍경이 낯설지 않다.

윈난의 식당


공원 구내 길을 자동차들이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린다.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걷는 사람보다는 몇 배는 빠르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운전했더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욕이 나오는 건 참을 수 없다. 대체로 사람은 이기적이다. 자기 입장에서만 세상을 본다. 모든 운전자들에게는 속도의 유혹이라는 것이 있다. 속도의 유혹은 목표의 유혹과는 다르다. 도달할 목표와는 무관하게 그저 막무가내로 대책 없이 달리고 싶은 속도의 유혹. 세상의 운전자 누군들 속도의 유혹을 피할 수 있으랴.

공원으로 가는 길목 우측에 거대한 ‘남양 화교 항일운동 기념비’가 서 있다. 길가에 탑이 있어도 참배객은 드물다. 망각,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더러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저항의 역사를 잊는 것은 다시 압제의 시대를 불러올 수 있는 토양이 된다. 탑을 세운 윈난성 인민정부인들 다르겠는가. 부패한 관료와 공안(경찰)들. 사회주의 국가의 변방 도시에도 밤이면 환락이 극에 달한다. 건물 안에 공안 사무실이 있지만 맛사지 업소들은 스스럼없이 섹스를 판다. 공안이 지켜보는 앞에서 호객을 한다. 공공의 안녕을 지켜야 할 공안이 업자들의 사익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일하는 것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티벳 여행기] (3) 고해를 건너는 자비의 배
2006년 09월 29일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마더 데레사>

세계를 구원하겠다고, 인류전체를 구원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사기꾼의 언어라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진정한 수도자들은 늘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 한 영혼의 상처부터 위로하고 치유했다. 절집에 들면서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화팅스(華亭寺)는 11세기에 건립된 남조 시대의 절이다. 입구에서 향을 파는 행상들이 여럿이다. 대웅전에도 사천왕문에도, 나한전에도 복전함이 없는 곳이 없다. 보현보살상 앞에도 복전함이 있다. 선행은 보살님들이 하고 복은 스님들이 받는다. 불교뿐이겠는가. 기독교 또한 고난은 예수님이 당하고 안락과 영광은 교황과 주교들, 고위 목사들이 누린다. 관음보살상 앞에도 복전함이 있다. 우리가 아는 관음보살님은 자비의 화신이지 대가를 받고 소원을 들어주는 장사꾼이 아니다. 이 절의 보살님들은 앵벌이인가!



대웅보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곳인데 이곳은 삼세불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계시고 좌우로 협시불인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앉아 계신다.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사이에는 석가모니불의 시자인 아난존자가 서 있다. 약사불과의 사이에 서 있는 분은 가섭존자다. 불이법문(不二法門) 현판이 걸린 법당에서 법회가 열린다. 모두들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우며 도량을 돈다.

여섯 분의 비구 스님과 두 비구니 스님이 앞장을 서고 스물 한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 신도가 뒤따른다. 오래된 이 절도 세월 따라 늙어버렸다. 앞장 선 비구스님들은 예불에 몰두하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스님들은 젊고 신도들은 늙었다. 예불에 깊이 빠진 신도들은 눈을 지긋이 감고 무아지경으로 탑을 돈다. 젊은 비구스님들은 목탁을 치고 종을 울리면서도 관광객들을 힐끔거린다. 독경 소리가 겉돈다. 맨 앞의 비구스님이 바닥에 가래침을 뱉더니 젊은 여자 여행자에게 눈웃음을 친다. 수행자라기보다는 직업인의 냄새가 짙다. 절 또한 신앙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관광자원으로 더 크게 기능하는 듯하다. 노인들이 누리는 종교의 자유는 관광 산업의 부흥에 기댄 바 크다.

대웅전 뒤편에도 현판이 걸려 있다. 고해자주(苦海慈舟). 고통의 바다를 건네주는 자비의 배. 반야용선(般若龍船)과 같은 뜻이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 고해자주이고 반야용선이다. 그런데 이 절의 대웅전은 진실로 고해자주인가. 고해에 빠진 중생들에게 승선료를 받고 건져 주는 구명보트는 아닌가. 돈만 밝히는 세속화된 불교가 더 이상 부처님의 종교가 아니듯이 세상의 정의나 자비에는 무관심하고 극한의 정신적 추구를 통한 자기 구원에만 몰두하는 불교 또한 부처님의 교단은 아니다. 더러 어떤 이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불교 이론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복잡한 것은 진리가 아니다. 어려운 것도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쉽고 단순하다. 부처님 말씀에는 못 알아들을 소리가 한마디도 없으나 불제자를 자처하는 주석가들의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소리가 한마디도 없다.

 

 




[티벳 여행기] (4) 서산, 드래곤 게이트
2006년 10월 10일
중생(衆生)에게 고통의 시간은 건너 뛸 수 있는 징검다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견뎌내야 할 시간일 뿐. 고통은 또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통은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옥죄어드는 올가미와 같다. 삶 또한 그러하다. 삶이 참담하다 해서 건너 뛸 수는 없다. 인간은 그 삶이 어떠한 것이든 온전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삶의 초월 따위를 이야기하는 어떠한 종교적, 초자연적 언술도 모두 사기다. 건너 뛸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삶은 아닌 것, 초월은 초월자의 권능이지 인간의 일은 아니므로.

서산의 정상 부근에 용문(dragon gate)이 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50여년 동안 도교의 수행자들이 만든 석굴이다. 산 정상 부근 벼랑 끝 바위에 굴을 파고 도를 닦던 도사들은 끝내 우화등선했을까. 소문은 분분하지만 어디에도 떨어진 깃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성부모전(聖父母殿)에서는 전각의 지붕 공사가 한창이다.

서산 드래곤게이트


이족(彛族)일까, 묘족(猫族)일까, 두 청년이 질 통 가득 진흙을 지고 길고 긴 계단 길을 오른다. 걸음이 위태롭다. 도사들, 신선들은 다 어디로 가고 신선들 거처를 사람 손 빌려서 짓는 것일까. 도사와 신선들이 게으른 것일까. 무능한 것일까. 우습지 않은가. 옥황상제와 신선들의 거처를 사람 손을 빌려 짓다니!

신선이나 도사들은 어찌 이토록 위태로운 절벽이나 기괴한 것만을 좋아하는가. 그러나 옛날 도사들이 바위를 뚫어 굴을 판 노동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오늘 이 위태로운 석굴에 붙어서 또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연명하는가. 도술로 하늘을 날지는 못했으되 밥을 만들었다.

대체 이런 천 길 낭떠러지, 바위에 굴을 팔 수 있었던 원력은 무엇일까. 크게 미치거나 무엇에 홀리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겠는가. 광부들도 수백 미터 땅 속까지 굴을 파고 광석을 캐내기도 한다. 땅을 파고 바위를 뚫는 것은 절박한 욕망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천길 땅속 광맥을 찾아 석굴을 파는 것이나 정신의 욕망으로 천길 절벽 끝에 굴을 파는 행위가 본질은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은 추악한 것이고 정신적 욕망은 훌륭한 것처럼 칭송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욕망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물질적 욕망을 버리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정신적 욕망을 버리기는 진실로 어렵다.
서산 용문의 노천예술가

인류가 저지른 끔찍하고 잔악한 행위는 대체로 물질적 욕망에 기인한다. 하지만 물질적 욕망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적어도 노예로 팔아넘길지언정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신적 욕망에서 비롯된 전쟁은 사람의 씨를 말렸다. 그 잔악함이 비할 바가 아니다. 인류의 수많은 전쟁을 보라. 물질적 욕망보다 정신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전쟁이 더욱 사악했다. 수많은 종교 전쟁들, 홀로코스트는 또 어떤가. 유대인의 절멸과 아리안족 순혈주의를 주장하며 400만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이루고자 한 것이 물질적 욕망이었는가. 200만 인민을 학살한 크메르루즈나 좌우대립으로 수백만의 민간이 학살 된 해방 전후의 한국 또한 물질적 욕망보다는 이념이나, 종교 따위의 정신적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는가.

 

 




[티벳 여행기] (5) 티벳에 들다
2006년 10월 16일
“말하지 않고 사는 것은 살지 않고 말하는 것보다 더 낫다.”

페르시아 이시도르 수도원장의 말씀이다. 살지 않고 말하기는 쉽다. 말하지 않고 살기도 어렵지는 않다. 몸으로 말하기는 진실로 어렵다. 이시도르 원장은 또 말한다.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침묵으로 우릴 돕지만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우리를 성가시게 한다. 그러나 말과 삶이 나란히 간다면 그것은 철학의 완성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오복음 15장)

아침 7시 출발 예정인 라싸행 비행기가 정시보다 5분 일찍 출발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는 바다처럼 광대하다. 나는 늘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생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이미 하늘에 올랐으니 그대로 사라진들 무슨 큰 아쉬움이 있겠는가. 다만 생사의 비밀을 풀지 못하고 가는 것 하나만은 원통하고 원통할 뿐이다.

비행기 밖 티벳 하늘


비행기는 샹그릴라 공항에 잠시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한다. 윈난(云南)은 구름의 남쪽이다. 구름의 남쪽 보다 먼 티벳은 구름 밖의 세계인가. 티벳의 산들에는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여객기는 3시간 반 만에 티벳 공가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 입구의 거대한 입간판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애아중화(愛我中華), 내 사랑 중화. 여기도 중국 땅이다.

공항버스를 탔다. 옆 자리에는 한족인지 티벳 족인지 알 수 없는 여자가 앉았으나 내내 말 한마디 걸어보지 않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다. 말보다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통이 어려우니 꼭 필요한 때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아도 된다. 자의든 타의든 침묵할 수 있는 행복은 크다.

해발 4000m의 고원에 올라와도 하늘은 여전히 높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곳에 오른들 그저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에 사는 지를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다. 높은 곳이지만 이곳 또한 사람이 빌붙어 사는 하늘 아래 땅이다. 공항을 출발한지 5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얄룽창포 강을 건넌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땅을 흐르는 강. 얄룽 창포는 어머니의 강이란 뜻이다. 티벳의 아리에서 발원하여 2000㎞를 흘러 인도의 갠지스강으로 합류된다.

얄룽창포 강


강변의 물위로 돌담들이 솟아 있다. 무얼까? 선착장은 아닌 듯 하다. 돌담 위에는 탈쵸에 걸린 룽다가 나부낀다. 탈쵸는 우리의 솟대와 같은 것이며 룽다는 경전이 새겨진 깃발이다. 티벳 곳곳에서 가장 흔하게 마주치는 것이 룽다다. 룽다는 경전 말씀이 바람에 날려 세상 곳곳으로 퍼져 나가길 바라는 염원을 품고 펄럭인다. 수장 터일까. 티벳에서는 조장이 일반적이지만 조장을 하지 못한 시신은 수장을 하기도 한다.

버스는 강변길을 잠시 벗어나 들판을 달린다. 들에서는 보리가 익어 간다. 보리는 티벳의 주곡이다. 보리를 볶아서 가루로 만든 것을 짬파라 하는데 이곳 사람들의 주식이다. 중국은 티벳 침략 이후에 티벳 땅에 밀과 쌀을 심도록 강제 했었다. 기후와 풍토에 적합하지 않은 작물을 억지로 심었으니 대 흉년이 들고 말았다.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힘이 있다 해서 지혜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티벳의 들판에는 보리가 심어졌고 기근은 해소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힘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지혜다.

버스는 1시간 30분을 달려 라싸에 도착한다. 티벳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다. 그러나 실상 티벳은 없다. 중화인민공화국 시짱(西藏)자치구가 있을 뿐이다. 1949년 10월 중국의 침공으로 티벳이란 국가는 지상에서 사라졌다. 중국 인민 해방군의 공격에 의해 10만 명 이상의 티벳 민중들이 살해 됐다. 1959년 3월 달라이라마는 7만 5천의 난민과 함께 티벳을 떠나 인도로 망명했고 그곳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문화 혁명의 광풍으로 티벳의 전통과 문화 유적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문화 혁명 10년 동안 6200개에 이르던 티벳의 사원은 단 9개만 빼고 모두 파괴 됐다. 중국군에 의해 티벳의 영적 심장인 조캉 사원도 약탈당했다. 대부분의 경전들이 불태워지거나 군대의 화장실에서 사라졌다. 티벳의 유물들, 불상과 도자기, 벽화, 세공품들이 중국으로 실려 갔다. 그렇게 중국으로 간 불상은 녹여져 메달로 만들어졌으며 일부는 외화벌이 수단으로 국제 골동품시장에 팔려나갔다. 59년의 독립 시위 때는 1만5천명 이상이 사살되었고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티벳 여행기] (6) 고통은 삶에서 무엇을 앗아갈 수 있는가?
2006년 10월 19일
“이 세계가 아무런 가치가 없고 또 삶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악의 존재를 내세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일 세계와 삶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악은 도대체 우리에게서 무엇을 앗아갈 수 있겠는가?” (시몬느 베이유)

우리의 삶이 늘 고통스럽기 때문에 삶이란 살아 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만일 삶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고통은 대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앗아갈 수 있겠는가?

여전히 중국은 저항적인 티벳인들에게는 탄압을 가하고 있다고 중국군대에 근무했던 티벳인의 증언이다.

“저는 4년 동안 중국 군대의 우징으로 근무했어요. 우징의 임무는 죄수를 감금하고 심문하고 고문하고 사형 집행하는 것이죠. 심문 할 때는 수감자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전기 충격기와 전류 발생기, 날카로운 특수 칼 등을 사용했어요. 때로는 수감자들이 손톱 아래 대나무 조각을 박기도 했어요. 수감자를 며칠씩, 때로는 일주일씩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어요. 졸면 곧 커다란 바늘에 찔리도록 되어 있었죠. 안쪽에 가시가 있는 특수 목 끈도 있었어요. 수감자가 잠이 들면 가시가 목과 머리를 마구 찔러댔어요.” 마리아 블루멘크론 ‘희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지식의 숲)

난징기념관 벽면에 쓰여진 난징대학살 희생자수


과거 국민당정부 치하와 일제 강점기에 중국공산당원들이 받았던 고문을 이제는 중국군대가 티벳 독립 운동가나 승려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는 증언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라면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라싸에서 만난 어떤 중국 청년은 자신은 일본이 너무 싫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일제의 탄압을 받았던 한국 사람들이 일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지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남경대학살을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고 했다. 그는 베이징의 어떤 택시기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본에서 유학 온 청년이 어느 날 택시를 탔다. 기사가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기사는 택시를 청년의 목적지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몰고 갔다. 그곳은 남경대학살 기념관이었다. 중국이 마냥 좋아서 유학 온 일본 청년은 당혹스러웠다. 기사는 청년이 목적지까지 갈수 있는 돈까지 쥐어 주며 당신네 일본이 중국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애국심 강한 어느 택시 기사의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떠돌고 있는 듯하다.

그 중국 청년의 일본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중국군이 티벳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수 없이 많은 티벳 사람들을 학살하고 고문한 사실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할까. 그 청년에게 미처 그것을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현재 시짱 자치구를 비롯한 운남성 일부 등 티벳 문화권에는 600만 정도의 티벳 민족이 산다.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이주 정책으로 700만 이상의 한족이 티벳 문화권에 들어와 터를 잡고 있다. 티벳 민족은 자신의 땅에서도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랜 옛날에는 티벳 또한 중국과 다르지 않았다. 7세기 무렵 티벳은 호전적인 군사제국이었다. 훈족이 유럽에 공포의 대상이었듯이 티벳은 인도와 중국, 네팔 등 주변 왕국에 침략자였고 약탈자였다. 송첸 감포 왕의 티벳 군대는 네팔왕국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중국 운남성 등 일부 지역에서 조공을 받기도 했다. 카슈카르의 도시들을 비롯한 비단길을 장악하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까지 침략하여 중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하지만 중국을 침략했을 때 과실을 얻은 것은 지배세력이었고 중국의 침략을 받게 됐을 때 고통 받은 것은 티벳 민중들이었다. 오랜 세월 티벳 지배 세력 내의 권력투쟁과 암투에 신음해 온 것도 티벳 민중들이었다.

 

 




[티벳여행기] (7) 달라이 라마, 왕들의 계보
2006년 10월 23일
인도에 망명 정부를 세우고 왕좌에 있는 현14대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황모파)가 티벳의 권력을 장악한 것은 3대 달라이 라마가 몽골이라는 외세의 힘을 끌어들인 뒤였다.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는 1573년 칭하이(淸海)에서 몽골 황제 알탄 칸으로부터 달라이 라마라는는 칭호를 받았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큰 바다, 라마는 티벳어로 스승이란 뜻이다. 알탄 칸의 증손자는 4대 달라이 라마가 됐다. 1642년에는 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가쵸가 몽골 황제 구시 칸의 군대를 끌어 들여 달라이 라마 정권을 세우고 승정일치 왕국의 초대 왕으로 등극했다. 영적 세속적 권력을 모두 장악한 것이다. 5대 달라이 라마는 천 개의 방을 가진 포탈라 궁을 건설했다.

6대 달라이라마는 창양 가초는 달라이 라마로 살지 않고 인간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다 제거당했다.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간택 되었을 때 창양 가초는 13세의 소년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이미 사랑하는 여인까지 있었다. 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창양 가초는 자주 궁을 빠져나가 술과 여자들 속에서 살았으며 민중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노래하길 즐겼다. 권력을 가진 늙은 라마들이 그를 몽골 제국에 고발했고 포탈라 궁에서 쫓겨난 창양 가초는 몽골로 납치당해 살해됐다. 고위 라마들은 창양 가초를 고발했지만 그가 끌려갈 때 일반 승려들과 민중들은 몽골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늘날에도 티벳 민중들은 그가 지은 시와 노래를 즐겨 부른다.

인도에 망명중인 현 14대 달라이 라마


7대 달라이 라마는 몽골 제국과의 갈등으로 공식적으로 즉위하지도 못했다. 9대 달라이 라마부터 12대 달라이 라마까지는 10대나 20대 초의 어린 나이에 죽었다. 정치적인 암살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 망명중인 현 14대 달라이 라마도 1954~1956년 사이, 그의 여름 궁전, 노블링카를 지었다. 달라이 라마가 여름 궁전을 지은 때는 티벳이 중국의 침략으로 주권을 상실하고 그 과정에서 살해된 10만여 티벳 민중의 피가 채 마르기도 전이었다.

부처님은 스스로 왕위를 버리고 수행자가 됐는데 불제자를 자처하는 라마승들은 수행자의 몸으로 왕위에 올라 권력자가 됐다. 티벳 역사에서 달라이 라마는 불교의 수행자라기보다는 정교일치 국가의 통치자였다. 무력으로 권력을 얻으나 영적 힘으로 얻으나 권력의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라마승들의 경제적 기반은 티베트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던 사찰의 예속 농노들이었다. 사찰 예속 농노들은 중세 유럽의 농노처럼 주인의 가혹한 체형을 감수해야 했다. 게다가 사찰들은 고리대금업자이기도 했다.

대체 종교란 무엇일까. 영적, 물질적으로 사원과 라마승들에게 예속되어 있던 티벳 민중들이 지금은 점점 중국정부와 중국식 자본주의에 예속되어 가고 있다.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서 중국이 티벳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내세우는 점령의 명분은 과거 한때 중국이 티벳을 직접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억지 논리라면 오랜 기간 중원을 지배했던 몽골이나 만주족이 중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 해도 중국은 그것을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

 

 




[티벳 여행기] (8)평화의 종교는 가능한가
2006년 10월 26일
어떤 신도 인간의 세상 밖에 존재한다. 인간의 세상을 떠나있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비극이다. 인간의 역사는 신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자주 유혈 참극의 역사가 되었다. 종교라는 것이 과연 평화와 관계가 있는 것이기나 할까. 자기 구원과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이교도를 무참히 살해 해온 것이 종교가 아닌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기독교가 그러했고, 성전이란 이름으로 타 종파를 정복하고 살상한 이슬람교가 그랬다.

조캉 사원


무엇보다 유일신교들은 근본적으로 평화적이지 않다. 아무리 평화와 관용을 설교하더라도 유일신교는 본질적으로 배타적이다. 배타성이 유일신의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유일신교들은 세상에 불화와 전쟁을 가져오는 것은 일부 원리주의, 극단주의 세력일 뿐이라고 강변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종교의 역사는 원리주의를 내세운 극단주의자들의 득세의 역사가 아닌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 폭탄을 퍼부은 미국의 부시정부가 그렇고 평화의 이름으로 레바논을 불바다로 만든 이스라엘이 그렇다.

지금은 이슬람이 약자의 위치에 있지만 강자였을 때의 이슬람 또한 파괴자였다. 탈레반의 아프카니스탄 불교 유적 파괴를 단지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일 뿐이라고 치부하지만 과거 불교 왕국이었던 인도와 네팔의 불교 유산을 철저하게 파괴한 것은 14세기 인도와 네팔을 점령한 이슬람이었다.

마니차 돌리는 노인


그것은 다만 극단적인 원리주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타성을 존립근거로 하는 유일신교의 교리가 빚어낸 비극이다. 현존하는 종교 중 가장 평화로운 종교라는 불교마저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들고 온 것은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 새겨진 깃발이었다. 티벳 불교의 역사 또한 영적 세속적 권력을 둘러싼 파벌간의 암투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걱정했던 고산병이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윈난에서 적응 기간을 거치고 온 탓일까. 해발 3600미터, 라싸에서 고산병에 시달리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호흡할 때마다 수분을 배출하게 되는데 고산 지대에서는 배출하는 수분의 양도 많아진다. 수분이 줄어드는 만큼 혈액의 농도가 짙어진다. 그것이 심장에 부담을 주게 되고 고산병의 원인이 된다. 물을 많이 마시면 고산병에 도움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피를 묽게 하는 고산병 약을 미리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라싸 거리의 민중들은 한 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밧메훔을 외우고 다닌다. 마니차 속에는 경전이 들어 있는데 한번 돌릴 때마다 한번 읽은 것으로 친다. 이곳에서는 주술과 종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본래 모든 종교가 주술사의 마법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티벳 민중들이 기대고 있는 것은 중국 공산당도 과거 티벳의 지배자들도 아닌 듯하다. 오로지 수많은 불보살들일 뿐이다. 불교의 유입 이후 천년 동안 서서히 현세를 떠나 내세에 살게 된 티벳 사람들에게 현세 권력의 향방은 더 이상 큰 관심사가 아닐 지도 모른다.

 

 




[티벳 여행기] (9)조캉, 티벳의 영적 심장
2006년 10월 31일
어제는 이곳에도 비가 내렸다. 오늘은 하늘이 비할 데 없이 맑고 푸르다. 티벳 사람들의 일과는 사원 순례로부터 시작된다. 바코르 거리 노천시장을 따라 조캉사원(大昭寺)으로 간다. 라싸 시내 중심에 있는 조캉 사원은 티벳 민중들의 영적인 심장이다. 작은 마니차를 돌리며 주문을 외우는 순례행렬이 끝없다. 쥬니퍼(향로)에 태우는 샹(향초) 연기가 광장에 가득하다.

조캉사원


노인들은 정성을 다해 육자진언을 외우고 향로 앞에 매달린 큰 마니차를 돌린다. 청년 하나는 휴대폰 문자를 날리며 마니차를 돌린다. 가죽 앞치마를 두른 늙은 라마승이 쇠 조각을 붙인 나막신을 손바닥에 끼고 오체투지를 한다. 피 흘리는 고행의 오체투지 이미지에 사로 잡혀 있었던 까닭일까. 완전무장을 하고 전진하는 오체투지가 낯설다. 라마승이 일어설 때마다 늙은 순례자들은 돈을 건넨다. 라마승은 건네받은 지폐를 구겨서 허리춤에 넣고 다시 온몸을 바닥에 던진다.

조캉사원은 기원 7세기에 건립됐다. 티벳 최초의 통일 국가, 투보 왕국의 왕 송첸 감포는 티벳 고원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시켜 강력한 군사제국을 이루었다. 티벳 최초의 법전을 만들고 산스크리트어를 국어로 채택했다. 송첸 감포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당나라 태종의 공주와 혼인을 요구했다. 어느 왕이 친딸을 ‘오랑캐의 나라’에 시집 보내겠는가. 당 태종은 종친의 딸 문성공주를 양녀 삼아 송첸 감포에게 보냈다. 송첸 감포는 같은 시기 네팔의 부리쿠티 공주와도 정략 결혼을 했다. 두 공주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 였다. 불교 왕국 티벳의 시작은 두 공주로부터 비롯된 바 크다.

조캉사원 앞에서 오체투지하는 여인


본래 조캉사원은 브리쿠티 공주가 가져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 됐고 문성공주가 가져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라모체 신전이 건립됐다. 하지만 송첸 감포 사후 당나라의 침략을 걱정한 문성공주가 자신이 가져온 불상을 조캉 사원으로 옮겼다. 사원의 명칭은 문성공주가 가져온 조오 석가모니 불상에서 연유한다. 캉(khang)은 법당을 뜻하니 조(Jowo)를 모신 법당이다. 문화혁명 때 조캉 사원 내부가 대부분 파괴 됐다. 점령군들은 조캉을 중국인들의 숙소로 사용했고 일부는 돼지우리로 쓰기까지 했다. 사원은 1980년 이후에야 다시 복원 됐다.

문화혁명, 이름이란 때때로 얼마나 기만적인가. 문화의 이름으로 한 민족의 가장 숭고한 문화 유적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조캉사원 입구는 오체투지로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려는 순례자의 열기로 뜨겁다. 나는 오체투지는 못하고 아픈 허리를 구부려 통증을 달랜다. 오체투지를 하던 할머니 한 분이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나의 동행들에게 허리를 톡톡 두드려달라고 일러주며 환하게 웃는다. 할머니는 웃는데 나는 눈물이 난다. 순례자들은 모두 기쁨으로 부처님께 기도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가. 믿음이란 신앙이란 무엇인가. 단 한 번도 간절함으로 신앙해 보지 않은 자가 그 깊은 속내를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주름살 깊은 노인의 웃음이 아프다.

사원입구의 장꾼들은 순례자에게 버터를 판다. 사원은 촛불 대신 버터 램프를 켠다. 대법당에는 두 개의 아발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 관세음보살)상과 파드마삼바바상, 세 개의 마이트레야(Maitreya, 미륵) 상이 서 있다. 조오 석가모니 법당에는 어린 석가모니상이 모셔져 있다. 2층에는 아발로키테스바라, 아미타바(Amitabha, 아미타불), 마이트레야, 파드마삼바바 등의 불보살과 총카파, 송첸 감포 등 불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역대 티벳 왕들의 불상을 모신 법당이 20여 개나 있다. 한 법당은 젊은 여인을 무릎에 앉히고 진한 키스를 하는 합체불상들만으로 채워져 있다. 황홀경의 불상들 앞에서 나도 잠시 황홀해진다.

순례자들은 버터기름이 담긴 주전자를 들고 법당을 바꿔가며 버터 램프에 기름을 붓는다. 불상마다 지폐를 바친다. 야크 젖을 짜고, 버터를 만들고, 양들을 길러 어렵게 모은 지폐 다발을 참배하는 불상마다 풀어놓는 노인들. 법당 한편에는 순례자들에게 잔돈을 바꿔 주는 라마승의 손놀림이 바쁘다. 어떤 순례자는 불상 앞에 놓인 지폐 더미 속에서 스스로 환전을 해 가기도 한다. 순례자들이 법당을 돌며 복을 비는 동안, 라마승들은 2층 방에 앉아 뒤섞인 지폐들을 분류한다. 돈 다발을 묶느라 경황이 없는 라마승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기름지다. 깡마르고 거친 얼굴의 순례자들은 기도에 심취해 있다. 저 돈들이 예전에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하거나, 사원을 건설하거나, 종교의식을 집전 하거나 라마승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사용됐었다. 지금은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 것일까.

노인들은 더러 티벳의 머나먼 지방에서 몇 달을 걸어오기도 한다. 순례자들은 온통 순례의 환희로 가득하다. 하지만 내세에 기댄 그 작은 행복이 깨질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마니차를 돌리고 사원을 순례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내세보다는 현세에 관심이 많다. 사원 순례보다는 장사를 하고, 관광 사업에 종사하여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한다. 중국에 불어 닥친 자본주의의 거센 바람이 티벳 고원이라고 비껴가지 않는 것이다. 젊은이들과는 달리 노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노인들의 집은 현세가 아니라 내세에 있다. 순정한 마음으로 성지 순례 길을 떠나온 민중들, 그 민중들의 유일한 의지처인 종교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돈으로라도 고통스런 생의 위안을 살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수많은 법당을 돌고 나니 여행자 또한 버터기름 냄새에 취해 몽롱해 진다. 티벳 사람 누구에게도 순례의 끝은 조캉사원이다. 순례자의 최종 목적지가 달라이 라마가 주인인 포탈라 궁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인인 조캉사원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머리는 달라이 라마에게 숙였으되 마음은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어디나 다르지 않다. 현실의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내세에 대한 열망은 깊다. 수많은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납득하기 어렵다. 진실로 현세란 그저 보다 나은 내세로 가는 관문에 불과해도 되는 것인가. 달라이 라마가 귀환한다 해도 결코 풀리지 않을 문제다.

 

 




[티벳 여행기] (10) 흰 양의 땅, 라싸
2006년 11월 02일
욕망의 크기는 지식의 양에 비례한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욕망은 증대한다. 욕망이 커질수록 만족은 적다. 삶의 불안이 무지에서 온다면 대체로 삶의 불만은 지식에서 온다.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욕망은 제한적이고 단순해진다. 현세의 일을 모르면 현세의 욕망이 자리 할 틈이 없다.

티벳의 라마승들과 사원들이 민중들에게 설교한 것은 오로지 내세뿐이었을까. 티벳 사람들에게 현세는 그저 행복한 내세로 건너가는 교량에 불과한 것이니 현세에 욕망이나 불만이 자리할 틈은 없다. 현세에 대한 욕망이 적으니 내세에 대한 욕망만 크다. 하지만 돌이켜 보라 내세를 추구하는 것이 참으로 영적인 것이라 이를만 한가? 그 또한 욕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내세에 복을 받고 싶다는 기원은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겠다는 영적 갈망과는 무관하다.

세라사원 성벽


티벳의 수도 라싸는 ‘흰 양의 땅’이란 뜻이다. 라싸의 건설 당시 양들의 희생과 관련 있다고 전해진다. 백야의 땅도 아닌데, 열 시가 넘도록 라싸는 환한 밤을 가져야 한다. 중국이 티벳에 진주하며 중국의 시간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티벳 사람들에게 중국의 시간은 운명의 암살자인 동시에 삶의 도살자다.

중국이나 티벳에 와서 음식 때문에 고통 받은 적은 없다. 그래도 이국에서 한국 식당을 발견하니 반갑다. 조선족 출신 주인이 경영하는 아리랑 식당에서 김치찌게를 먹는다. 신 김치와 두부, 돼지고기 몇 점이 들어간 김치찌개는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반갑게도 배추김치와 깍두기 한 접시도 딸려 나온다. 볶음밥이든 뭐든 시키면 밥만 달랑 한 그릇 나오고 반찬은 따로 주문해 먹어야 했던 중국 식당의 야박함에 질렸었다. 음식이 한국의 맛있다는 식당 못지않다. 이 식당의 메뉴는 조선식 냉면과 삼겹살에서부터 호박전까지 다양하다.

낡고 오래된 여행자 숙소, 키리호텔(吉日旅館)의 밤은 열두시가 넘도록 떠들썩하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진다. 2층 카페는 술을 마시고 웹 서핑을 하는 여행객들로 활기차다. 여행자들은 밤에도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잠 속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마당 한 쪽 게시판에는 여행 정보를 교환하려는 여행객들 몇몇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 한국 여행자들도 더러 눈에 띈다.

ㅁ자형으로 된 3층의 키리 호텔, 한 층에 하나씩의 공동 화장실이 있다. 늘 파리가 들끓는다. 수 십 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하니 티벳인 청소부 아주머니가 수시로 청소하지만 역부족이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변기에는 똥 덩어리들이 그대로 있다. 대체 자신이 싼 똥도 내리지 않는 심사는 무엇일까. 간혹 물 내리는 밸브가 고장이 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바로 코앞에는 그때를 대비해 쓰라고 양동이 가득 물이 채워져 있지 않은가. 한 바가지의 물만 부으면 되는 것이다. 제 집 화장실의 변기였다면 기를 쓰고 물을 내렸을 것이다. 제가 싼 똥 덩어리 하나 처분하지 않는 이기적인 여행자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원을 순례할까. 이들이 얻고자 하는 영혼의 자유란 어떤 것일까. 개나 고양이도 제가 싼 똥은 묻지 않는가.

세라사원 입구의 포장마차 여주인


바코르 광장 끝자락에서 502번 버스를 타고 세라 사원으로 간다. 티벳만이 아니라 종교가 곧 삶인 나라들은 많다. 이슬람 국가들, 힌두 왕국들. 종교란 대체로 사람의 존재 구원을 위해 창시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이 종교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곤 한다. 종교의 패러독스다. 나는 사원보다는 사원 부근의 풍물이 좋다. 세라 사원 입구부터 포장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묵무침 한 접시에 티벳 전통 막걸리 ‘창’ 한 병을 시켜 마신다. 버터차를 파는 옆 포장마차 주인 여자가 ‘한궈런’(한국인)이라고 반가워하며 잔만 들었다 놓으면 연신 창을 따라준다.

이곳 사람들은 손님에 대한 접대가 지극하다. 버터차든 술이든 잔이 비지 않게 늘 채워준다. 그들이 잔에 따라 주는 것은 술이나 차가 아니다. 마음이다. 옆 포장마차에는 순례를 온 가족이 들었다. 손자 손녀에게는 요구르트를 사주고 노인은 안주도 없이 창 한 병을 혼자 따라 마신다. 인사를 하고 잔을 들었더니 반갑게 웃으며 건너와 자기 술병의 술을 한 가득 따라 준다. 그렇게 몇 잔을 연거푸 받아 마신다. 라싸 인근의 몇 군데 사원을 둘러본 나는 더 이상 사원내부에는 관심이 없다. 외국인에게만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도 마땅치가 않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사원 성벽을 따라 코라길(순례길)을 돈다. 사원 옆 산 아래 초지에서 마을 여인이 야크 가죽을 말리고 있다. 아이 두 녀석은 개미집을 파헤치며 논다. 큰아들이 엄마 점심을 가져온다. 보리 빵과 말린 야크 고기. 여자는 여행자에게도 웃으며 빵을 권한다. 아이들도 단맛 하나 없는 거친 보리 빵을 입에 물고 즐겁다. 기름지고 느끼한 한족의 식사에 비해 티벳 사람의 식사는 소박하고 간소하다. 여인에게 얻은 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성벽 같은 세라 사원 담 장 밖을 걷는다. 햇볕은 깨진 유리 파편처럼 따갑게 날아와 박힌다. 사원 뒤안길에서는 인부들이 배수로 공사 중이다. 사원은 거대한 궁궐이다.

사원을 터무니없이 크게 짓고 거대한 불상을 만드는 것은 실상 부처님을 모독하는 행위다. 부처님이 다리 뻗고 주무실 움막 한 칸이면 족하다. 부처님은 궁궐을 버리고 나무 그늘 아래서 살지 않으셨던가. 사원을 궁궐처럼 짓는 것은 부처님이 버린 것에 부처님을 다시 가두는 짓이다. 크고 화려한 불상 또한 마찬가지다. 불상이 커진다 해서 부처님이 더 위대해 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이미 인간이 형상화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분이 아닌가. 인간이 황금이나 돌로 된 조형물을 숭배하는 행위는 인간을 금붙이나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로 격하 시키는 짓이다. 금불상 조성할 돈으로 굶주린 자 먹이고 병든 자 치유하고 궁궐 같은 사원 건립 할 돈으로 집 없는 자 집 지어 주는 것이 진정으로 부처님을 잘 모시는 것이 아닌가.

티벳의 사원은 어느 곳이나 그 지역의 종교, 정치적 중심지다. 성곽의 맨 윗부분은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외부의 침입을 차단했다. 사원이 군사 요새다. 지킬 것이 많은 까닭이겠지. 온갖 보물과 재화와 권력의 저장고. 티벳 할머니 한 분이 코라 길을 돈다. 목례를 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반갑다.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다. 사진기를 들어 보이니 포즈를 취해 주신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옷깃을 잡는다. 할머니도 못내 섭섭한 것일까. 할머니는 손을 벌리고 서 계시다. 난감하다. 사원 입구부터 줄줄이 따라 붙던 아이들을 다 뿌리쳤었다. 할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5위안을 쥐어 드리고 돌아선다. 훅, 더운 바람이 지나간다.

 

 




[티벳 여행기] (11) 야크, 티벳의 진정한 성자
2006년 11월 07일
세라 사원 산자락은 온통 염소들의 천국이다. 풀을 뜯는 것이 귀찮은 녀석들은 주니퍼의 향초 타다 남은 찌꺼기를 주어먹느라 정신이 없다. 담 장 안은 라마승들의 것이지만 사원보다 넓고 큰 산과 들은 염소들 차지다. 끝내는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할 목숨들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은 염소들이다. 염소들이야말로 경계 없는 삶의 주인공들이다. 염소만이 아니다. 죽은 다음에 다른 중생들의 먹이가 되는 것은 사람도 같다.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 누가 더 자유로운가?

기원을 빌며 탑을 쌓는 풍습은 동양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돌탑 위에 야크 해골을 놓고 그 위에 또 룽다를 걸었다. 티벳의 성자는 야크다. 살신성인의 고원지보(高原之寶). 살은 사람들 먹이로 주고, 뼈는 사람들 신앙의 성물이 된다. 한국의 소처럼 코뚜레를 꿰거나 목줄을 매지 않아도 달아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단지 오랜 세월 길들여져 온 습성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 야크들은 제 어미와 아비, 형제가 사람 손에 붙들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숱하게 보아 왔을 것이다. 죽임을 당하고 껍질이 벗겨지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본능이다.

야크떼


그런데 야크들은 어째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걸까. 죽음에서 도망치지 않는 길이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길임을 깨달은 것일까. 죽음에 두려움 없어야 삶에도 두려움이 없다. 저 초원의 순교자들, 야크와 소와 양과 염소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라마승들이 티벳으로부터, 티벳 민중들로부터 떠나갔지만 끝끝내 남아 티벳 민중들의 삶을 지켜주는 것은 저 야크들이다. 야크는 어떤 라마승도 따라 올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야크야말로 티벳의 진정한 보살이고 부처다. 본존불이고 협시불이다. 티벳 사람들이 고원의 보물(高原之寶)로 귀히 여기고 포탈라궁 앞에 황금 야크상을 세워 기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생담도 늘 자기희생의 삶이었다. 배고픈 자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보시했던 기러기가 전생의 부처님이었듯이 현생의 야크는 내생의 부처님이다.

세라 사원 또한 과거 티벳의 집권세력인 겔룩파 사원이다. 겔룩파 사원 중에서도 세라 사원은 영향력이 큰 사원이다. 매표소 매표원의 눈초리가 매섭다. 티벳 사람은 무료이지만 외국인은 50위안의 입장료를 받는다. 한국 여행자 네 사람이 비싼 입장료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한국 화폐로 따지면 그리 큰돈이라 할 수 없지만 가난한 배낭 여행자들에게 그 돈은 이틀 치 숙박료다. 세라 사원 내에는 순례 수도승들을 교육시키는 대학이 세 개나 있다. 과거 라마승들로 조직된 세라 사원의 군대는 티벳에서도 특별히 강력했다 한다. 실제로 1947년에는 달라이 라마의 섭정을 살해하려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라마들은 권력을 쥐기 위한 패싸움에 바빴고 신자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기도에 바빴다.

야크 해골


매표원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들도 사원 안까지 들어간다. 자동차 안에 티벳 사람이 아니라 관광객이 탄 것이다. 중국에서 온 한족들이다. '거기 서, 거기 서' 매표원이 쫓아간다. 4명분 입장료 200위안을 손에 쥐고 오는 매표원의 얼굴이 득의양양 하다. 사원입구까지 와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서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나무 그늘 아래 오래 앉아 있으니 싸늘하기까지 하다. 긴 옷을 꺼내 입는다. 햇볕은 뼛속까지 태울 것처럼 뜨거운데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한 것은 습도가 낮은 탓이다.

어디나 다 살 방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고원에도 사람과 야크와 염소와 고양이, 개와 소, 말들이 살고 나무와 풀들, 곡식이 자라는 것이다. 두 명의 중국인 여행자가 사원 앞에서 돌아선다. 중국의 식민지이지만 사원에서는 중국인이라고 누리는 특혜는 없어 보인다.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가난하다. 부유한 외국 여행자들이 가난한 나라에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실상 신앙으로 사원을 찾는 이가 아니라면 이곳은 사원 바깥 풍경이 더 환희롭다. 라싸 시내의 전경과 장엄한 산들, 주변의 티벳인 마을, 야크와 소, 염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불상이나 법당보다 태양과, 구름, 하늘과 산이야말로 천상의 사원이고 법당이다. 사원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현세와 무관하다. 언제까지 오지 않은 내세에 온 생애를 걸어야 하는가. 어째서 현세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들, 고기와 버터와 우유와 치즈를 주는 야크와 염소, 양들, 이들을 먹이고 키워주는 산과 들, 보리를 키워주는 태양과 구름과 비와 흙, 생명의 물을 주는 호수와 산소를 주는 대기를 경배하지 않고 사람들 자신의 손으로 빚은 나무나 쇳덩이들만 경배하는가. 티벳뿐이겠는가. 지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다. 돌이켜보면 태양과 바다와 바람과 물, 나무를 숭배하던 고대야말로 진정한 종교의 시대였다. 제도화된 종교는 박제와 같다. 티벳에서도 나는 신성한 정령들을 만날 수 없다.

 

 




[티벳 여행기] (12) 자비가 부처다
2006년 11월 09일
단하선사(739-842)가 낙양(洛陽) 혜림사에 있을 때였다. 몹시도 추운 겨울 어느 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법당에 있는 불상을 가져다 불을 지폈다. 절의 원주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어찌하여 불상을 태우십니까?” “사리를 얻으려고 하네” “목불에 무슨 사리가 있단 말씀입니까?” “사리가 없다면 무슨 부처란 말인가?”

사원의 금불상들을 녹인다면 사원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걸인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을까. 티벳 뿐이랴. 한국 불교의 가장 큰 문제도 자비의 부족이다.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자비가 곧 부처라 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말씀은 자비가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악한이고 무자비한자라도 본성에는 불성인 자비심이 있다는 말씀이다.



“선남자여, 모든 성문과 연각과 보살과 부처님께서 가지신 선근은 자비가 근본이 된다. 선남자여, 보살이 자비심을 닦아서 한량없는 선근을 능히 낼 수 있나니 말하자면 모든 신통과 부처님의 지혜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은 자비로 근본을 삼기 때문에 자비는 진실한 것이요, 허망한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엇이 일체 모든 선의 근본입니까? 하고 물으면 마땅히 자비라고 대답하리라. 그러므로 선남자여, 능히 선을 행하는 자는 진실로 사유하고 진실로 사유하는 자는 자비로운 자이고, 자비로운 자는 곧 여래이며, 대승이다. 대승은 곧 자비이고 자비는 여래이다.

선남자여, 자비는 보리도이고 보리도가 여래이며 여래는 곧 자비이다. 선남자여, 자비는 곧 천주(天主)이고, 천주가 곧 자비이며 자비가 곧 여래이다. 선남자여, 자비는 능히 일체중생들을 위하여 부모가 되니 부모가 곧 자비이며 자비가 곧 여래이다. 선남자여, 자비는 가히 사의(思議)할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며,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가 바로 자비이니 마땅히 자비가 곧 여래인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자비는 중생의 불성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성이 오랫동안 번뇌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불성이 곧 자비이며 자비가 곧 여래라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중략) 선남자여, 자비는 일체보살의 위없는 도이며 도는 이 자비이며 자비가 여래이다. 선남자여, 자비는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경계이며 무량한 경계가 곧 이 자비이니 마땅히 이 자비가 여래인줄 알아야 한다....” (대반열반경 권 제14 pp.436~438)

가난하고 약한 자를 섬기는 것이 자비다. 가난한 자를 섬기라던 예수의 말씀이 곧 부처가 말씀하신 자비다. 자비가 곧 예수고 부처다. 인간에 대한 자비심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그러나 종교들은 창시자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언젠가 혹독한 영적 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스님과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인간 해방을 선포하신 분인데 당신네 교단은 어찌 그리 여성 수행자에 대해 차별적인가. 그는 불교란 불평등을 인정하는 종교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더 오랫동안 더 많은 불교 공부를 했으므로 자신이 전문가라 자처했다. 참으로 그는 부처님을 곡해하고 있었다. 여성을 차별하는 내용의 비구니 8경계가 부처님이 만드신 계율이 아니라는 연구도 있지만 설령 그런 것을 부처님이 만들었다 해도 그것은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비구니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구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율이었다.

고대 인도사회에서 여자란 남자의 소유물이고 재산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지위란 카스트의 최하층인 수드라 계급, 불가촉천민과 같았다. 처음 부처가 자신을 길러준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 파자파티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출가를 허가하지 않았던 것은 여성을 차별해서가 아니다. 출가한 여성들이 남자들의 공격을 받게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재산인 여자가 출가를 하게 되면 재산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어떤 보복을 가할 것은 자명했다.

게다가 출가를 했더라도 비구니들은 여전히 뼛속까지 보수적인 비구들의 차별과 공격을 받을 것이 염려됐다. 처음부터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거하기 위해 만든 계율,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율이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구니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되는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자든 남자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은 카스트 제도로 차별을 당연시하던 인도사회에 부처님이 던진 인간해방의 선포였다. 그 젊은 스님은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습에 젖어 있었다. 그가 자비심도 없이, 문자에만 매달려 방편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명에 빠져 있다면 옴마니밧메훔을 부지런히 외우고 한 순간도 염주 돌리는 손을 멈추지 않은들 무슨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교회가 사는 모습을 볼 때에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흔히 이렇다. “교회를 보지 말고 예수를 보라.” 나는 이런 말이 교회 역사상 가장 감상적이고 가치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은 예수의 이름을 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그 중심 자리에서 밀어내게 만든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은 세상 속에서 구체적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복음에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 -육화-을 부인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것을 보고 복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예수가 누구이며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짐 윌리스, ‘교회를 다시 세우기' (참 사람 되어) -

이는 단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거대한 불사에만 여념이 없는 사원들, 부유한 사원과 가난한 신자들. 같은 질문에 불교도들은 이렇게 답한다. ‘스님을 보고 절에 가는 가? 부처님을 보고 가는 것이지!’ 하지만 그 답 또한 불교 역사상 가장 감상적이고 가치 없는 답이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원은 부처님의 사원이 아니다. 예수님이 부자를 죄인이라 탓하고 무조건 가난한 이들과 나누라 하신 복음 말씀은 부처님이 자비가 곧 부처라 하신 경전 말씀과 같다. 나눔과 자비를 모르는 교회와 사원. ‘저 세상의 문제를 다루는 관청’으로 군림하기만 하는 교회와 사원. 세계 도처에 헐벗고 굶주린 형제들이 있는데 부자가 되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사람들 개개인도 그런데 하물며 교회와 사원이겠는가. 부자들도 열심히 기도하고 영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자비의 실천 없는 영적 추구는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나누지 않는 교회와 사원이 사랑과 자비를 말하고 거룩한 삶에 대해 떠드는 것은 기만이다.

 

 




[티벳 여행기] (13) 환생에 대하여
2006년 11월 14일
티벳의 라마교는 환생을 믿는다. 달라이 라마는 달라이 라마로 환생하고 판첸 라마는 판첸 라마로 환생한다. 사람들은 내세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전 생애를 오체투지 한다. 환생은 아트만(영혼)을 전제로 한다. 육신은 껍데기일 뿐이고 영혼은 영원히 살아 끝없이 윤회 한다고 믿는다. 부처님은 영혼불멸을 말한 적이 없다. 불멸하는 아트만이 있다고 믿는 것은 부처님의 불교가 아니다. 힌두교다. 티벳 불교는 부처님이 건너뛰었던 힌두교로 회귀한 것이다. 나는 환생을 믿으나 영혼의 환생을 믿지 않는다.

사슴이 사자에게 먹히는 것은 사슴의 불행이 아니다. 슬픈 일이 아니다. 잠시 몸을 바꾸는 것이다. 사슴의 몸을 벗고 사자가 되는 것이다. 사슴의 살은 온전히 사자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존재가 죽음에게 먹히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생명의 죽음도 죽음으로 끝나는 죽음은 없다. 사자의 죽음도 끝은 아니다. 사슴이 그랬듯이 마침내 들판에서 죽은 사자 또한 몸 바꾸어 독수리가 되고, 까마귀가 되고, 개미가 되고, 구더기가 된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된다. 풀이 된 사자는 다시 사슴이 되고, 염소가 된다.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사자는 물고기가 되고, 오징어가 되고, 바닷가재가 된다. 삼치가 되고, 홍어가 되고 완도 바다의 소라고둥이 된다. 아프리카 사슴이, 사자가 완도 섬사람이 된다. 중생들은 그렇게 환생 하고 윤회 한다. 바다로 간 섬사람이 멸치가 되고, 장어가 되고, 갈치가 된다. 사람을 먹은 갈치가 밥상에 올라 또 다른 사람이 된다. (졸시, ‘환생’ 전문)

키리호텔


한국에서는 습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더워도 좋으니 습도만 좀 낮았으면 바랬다. 티벳에 오니 습도가 모자라 고통스럽다. 산소가 부족하고 습기가 모자라 목이 따갑고 코가 바짝 말라 버린다. 숨쉬기가 힘들다. 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과 코에 대고 자도 아침이면 수건은 종잇장처럼 말라붙어버린다. 늦도록 잠이 오지 않아 티벳의 밤거리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방을 나선다. 호텔 출입문이 잠겨 있다. 호텔 입구 경비실의 경비원은 소형 TV를 켜 놓은 채 잠들어 있다.

키리호텔(吉日旅館)에서 내 잠을 깨우는 것은 새들이 아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티벳의 여인이다. 나는 날마다 보온병을 문 밖에 내 놓는 것을 잊는다. 오늘 아침도 보온병을 달라고 문을 두드린다. 여인이 주전자를 양손에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그녀의 성실성 덕분에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끓인 물을 받아먹을 수 있었다. 키리 호텔의 아침은 여행자를 부르는 랜드크루저(도요타車) 운전자들로 떠들썩하다. 라싸를 벗어나 티벳의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은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거리가 멀어 도보나 자전거도 쉽지 않다. 행선지가 같은 여행자들끼리 보통 4~5인씩 짝을 지어 경비를 분담하고 여행용 랜드크루저를 빌린다.

호텔 마당 메모판


오늘은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방 앞 복도 나무의자에 앉아 종일토록 구름과 라싸의 하늘만 본다. 호텔 게시판에 조장(鳥葬)하는 모습을 함께 구경 갈 사람을 찾는다는 메모가 붙어 있다. 조장은 여행자들에게는 공개 되지 않는 종교 의식이다. 어떤 경로로 보겠다는 것일까. 조장도 관광 상품이 된 것인가. 티벳에는 조장뿐만 아니라 수장이나 화장, 매장 등 다양한 장례풍습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난히 그 끔찍한 조장만을 보길 원한다. 호기심 때문일까.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체험하고 싶은 것일까.

얄룽창포강 군데군데에는 수장(水葬)터가 있다. 전염병 따위로 죽은 시신은 수장을 하는데 조장과 마찬가지로 시체를 토막 내어 해 뜨기 전 강물에 던진다. 가끔 그 시체 토막이 미처 물고기 밥이 되지 못하고 강 하류까지 떠내려가기도 한다. 그 밖에 화장이나 매장 등의 장례풍습도 있지만 선호되지는 않는다. 사악한 범죄자는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아예 땅에 묻어버리는데 매장 당한 자는 환생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티벳에서 나는 무덤을 본 적이 없다.

티벳의 가장 보편적인 장례풍습은 조장이다. 조장은 사람의 시체를 독수리의 먹이로 보시하는 것이다. 돔덴(Domden)이라는 장례관이 사지를 자르고 뼈까지 바수어 보릿가루에 섞어 남김없이 독수리에게 보시함으로써 독수리의 나는 힘으로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조장은 아침 해뜨기 전에 시작하여 끝내야 된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시간. 영혼은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지점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한때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부드러운 살결과 아름다운 다리, 탐스러운 젖가슴도 돔덴의 칼날에 가차 없이 잘려나가 정육점의 고기처럼 잘게 다져진다. 진리를 탐하며 빛나던 눈 또한 굶주린 독수리의 한 점 먹이가 된다. 영혼이 떠나간 육체는 그저 죽은 야크나 돼지나 양과 다름없는 고기 덩어리, 어떤 존재의 허기를 채워줄 물질에 지나지 않으며 영혼만이 불멸한다는 종교관을 일깨워 주기 위함일까. 존재의 무상함을 몸서리치게 깨우쳐 주기 위함일까.

하지만 윤회를 믿고 존재의 무상함을 깨달은 자라면 굳이 조장 터까지 갈 이유는 없다. 사람이 독수리가 되고, 죽은 독수리가 썩어 풀의 양분이 되고, 풀은 또 야크나 양이 되는 것이니, 라싸 시내 도처에 널린 정육점의 고기 덩어리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그 야크나 양고기는 얼마나 신성한 물질인가. 죽은 사람이 야크나 양의 몸을 빌려 다시 사람의 생명을 이어주는 양식이 된 게 아닌가.

여행자는 그 지역의 토산물에 관심이 많다. 나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전통 술이다. 라싸에서 내 혈액의 알콜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었던 약은 ‘창’이다. 호텔 안의 ‘타쉬2’ 레스토랑에서 파는 ‘창’은 한잔에 2위안. 맥주보다는 싼 값이지만 한두 잔으로는 갈증이 해소 되지 않는다. 포장된 것이 아니니 시장 골목 어딘가에 주전자로 파는 가게가 있을 것이다. 벌써 중독된 것일까. 또 ‘창’ 생각이 간절하다. 그 순하고 새콤한 술 맛이 그리운 것이다. 한번 찾아 봐야겠다. 여행 안내서를 뒤적여 짧은 중국어 몇 마디를 적어 들고 골목을 헤맨다. 몇 곳의 버터 가게를 들렀지만 다들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수퍼 주인 남자가 병을 들고 온다. 독한 증류주인 듯하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다시 창을 외친다. 이곳에는 없다고 주인은 손을 흔든다.

수퍼 주인이 길 건너 버터 가게 여자에게 물어 본다. 그 여자가 안다. 어디라고 설명을 해 주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난감해 하자 수퍼에 물건을 사러 온 남자가 안내 하겠다고 앞장선다. 고맙다. 그도 술꾼이겠지. 애주가끼리는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차와 술을 파는 가게다. 3위안을 주고 1.5리터 한 병을 산다. 골목을 나서는데 자전거 릭샤 도로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 공안도 몇이 있다. 무슨 싸움이 난 모양이다. 구경꾼들이 우- 함성을 지른다. 자전거 릭샤와 오토바이의 가벼운 접촉 사고다. 오토바이 앞 범퍼가 약간 부셔졌다.

라싸 거리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짐수레가 뒤엉켜 다닌다. 자동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보행자도 횡단보도와 찻길을 가리지 않고 건넌다. 중앙 분리대도 예사로 넘는다. 공안도 단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동차가 느리게 다니기 때문에 좀 채로 사고는 나지 않는다. 릭샤와 오토바이의 가벼운 접촉 사고에도 구경꾼이 벌떼처럼 몰리는 이유다. 공안이 사고 수습을 하고 중재를 하는 모양인데 구경꾼들 보기에는 판정이 마땅찮은가 보다. 자주 공안에게 야유를 퍼붓는다. 공안도 화를 내지는 않는다. 공안 둘이서 수습이 안 되는지 이제는 간부까지 나섰다. 어떻게 끝나게 될까?

숙소 앞 의자에서는 흐르는 것이 시간만이 아니다. 구름들, 흰 목화 솜보다 더 흰 뭉게구름들, 햇빛, 바람들. 먼 이방에서 온 여행자를 이 티벳 땅까지 이끈 것은 무엇일까. 느린 시간일까. 양떼들, 야크의 무리들일까. 구름일까. 햇빛, 바람일까. 저녁은 랜드크루저를 따라 들어온다. 또 두 대의 차가 도착했다. 남쵸나 사메사원에 다녀온 것일 게다. 암드록쵸에 다녀온 이들도 있겠지. 여행자들은 일층 공동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고 씻는다. 이제 또 라싸에 밤이 온 것이다.

 

 




[티벳 여행기] (14) 순례자의 길
2006년 11월 16일
새벽 5시30분, 잠든 경비원을 깨워 호텔 문을 나섰다. 베이징 동로를 걷는다. 거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코르 광장 노천 새벽시장에 채소를 사러 나온 소매상들이 늘어서 있다. 조캉 사원 코라 길에는 벌써부터 순례의 행렬이 이어진다. 먼 지방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왔을 순례자들이 붙인 주니퍼의 향 연기가 새벽안개처럼 자욱하다. 오체투지로 가는 순례자들이나 걷는 순례자들이나 낮 시간보다 경건하다. 바코르 광장의 시장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광장은 모처럼 성스럽다.

사메사원


티벳 인민병원 앞 광장에 정차한 미니버스가 ‘사메’를 외친다. 버스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는데 누가 유리창을 두드린다. 룽다를 사라는 손짓이다. 버스는 좀 채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승객들이 다 차야 떠날 모양이다. 느리게 자리가 채워져 간다. 룽다를 파는 소년 둘이 올라와 순례 길에 오른 노인에게 억지로 룽다를 떠안긴다. 소년은 끝내 팔지 못하고 내려간다. 버스가 출발 한다. 미니버스에 서른 대여섯 명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좌석 간격이 좁아 다리를 오므리고 간다. 버스는 라싸 시내를 벗어나기 전에 중국석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베이징에서 열차를 타고 왔을까. 한족 여자 여행객 넷이 내 뒷좌석에 앉았다. 한 여자는 벌써 30분 째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운전사는 음악을 지나치게 크게 틀었다. 두 시간 쯤 달렸다. 버스가 멈춘다. 티벳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버스에서 내린다. 여행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내린다. 다들 길옆의 공터로 간다. 남자들은 일렬로 서서 소변을 본다. 여자들은 치마를 내리고 앉으니 그대로 간이 화장실이가 된다. 여행자도 따라한다. 차는 다시 출발한다.

사원 근처의 집짓기 풍경


앞자리의 노부부는 순례자다. 할머니는 마니차를 돌리고 할아버지는 염주를 굴린다. 버스가 굴러가는 5시간 내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염주를 굴리고 마니차를 돌린다. 굽이굽이 한 참 산길을 돌아가던 버스가 고갯마루에서 멈춘다. 순례자들이 새벽시장에서 사온 룽다를 건다. 룽다에 써진 경전 말씀이 바람에 날아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소망하는 순례자의 마음을 건다.

사메 사원은 얄룽창포 강 북쪽 자낭 마을에 있다. 사원 입구 주차장 상점 앞으로 심심한 시간들이 흘러간다. 주민들도 순례자도 여행자도 심심하다. 심심하게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잡담한다. 사원입구에 앉아 마니차를 돌리는 걸인 노인만이 유일하게 분주하다. 노인은 가시처럼 날카로운 햇살을 온몸에 찔리며 쉼 없이 마니차를 돌린다. 고행의 대가는 즉각 현금으로 환전된다. 여행자 하나가 사진을 찍고 돈을 건넨다.

상점 앞에 앉아 물건을 파는 여인에게서 감자를 한 봉지 산다. 여인은 소금을 담아가라 한다. 나는 손을 젓는다. 감자를 한입 베어 문다. 짜다. 짠 감자 같은 시간이 간다. 먹구름이 몰려온다. 사메 사원은 티벳 최초의 사원이며 티벳 최초의 승려 7 명이 배출된 곳이다. 티벳의 어느 지역과 마찬 가지로 사메 사원 주변도 개발 붐이 한창이다. 호텔이나 식당들을 짓고 있는 중이겠지. 이곳의 건물들은 시멘트벽돌을 거의 쓰지 않는다. 화강암 종류의 돌을 망치로 깨서 벽돌처럼 쌓아 올린다. 돌 한 줄 쌓고 흙 한 덩이 올리고, 다시 돌 한줄 쌓고 흙 올리고, 한국의 옛 토담집과 같은 건축 방식이다. 다만 외벽은 시멘트를 바른다. 비바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돌집이지만 서까래와 문틀 등은 목재를 쓴다. 목재는 장식의 수준이다.

집을 짓는 한쪽 편에서는 목수들의 치목이 한창이다. 한 사람은 전기 대패로 나무를 다듬고 두 사람은 나무에 끌로 무늬를 판다. 도끼의 뒷면을 끌망치 대신 쓰는 것이 다를 뿐 한옥 짓는 공사장의 치목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습이란 무서운 것이다. 잠깐 배운 가락이 있다고 나도 대패질이 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또 한 사내는 목재를 경운기로 실어 나른다. 이 지역 또한 티벳의 어느 곳과 다르지 않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돌산과 흙먼지 날리는 마을 한편으로 들판만 기름지다. 넓은 밭에 유채는 만개해 있고 청 보리는 익어간다.

사메 나룻터


얄룽창포 강을 배 타고 건널 수 있다고 들었으나 사원 앞까지 바로 오고 말았었다. 사원 순례가 아니라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이 길 떠나온 더 큰 이유였다. 건조한 라싸에만 있으니 온 몸의 수분이 다 증발해 버리는 듯 했다. 물이 그리웠다. 이미 버스 시간은 끝났는데 베이징에서 온 여행자 둘이 라싸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기사와 흥정하고 있다. 나루터로 가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 미니버스를 대절해 라싸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지불한 숙박비도 포기 하고 미련 없이 짐을 챙겨 따라 나선다. 비포장 길을 9킬로 가량 달리니 강변 나루터다. 라싸에서 사메 사원까지 오는 길이 두 가지 경로가 있었던 것이다. 강변에 도착하자 미이라처럼 말라붙었던 몸이 다시 촉촉하게 부풀어 오른다.

사메 사원 지역에 오기 위해서는 허가서가 필요하다. 나는 허가를 받지 않았다. 공안에게 들키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배에 오른다. 문제가 생기면 베이징에서 온 친구들이 돕겠다고 한다. 한 친구는 가을부터 ‘폴리스’(공안)로 일할 예정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온 여행이겠지. 여행자들은 뱃전에 서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주민들은 담담하다. 동력선인 목선 바닥에 둘러앉아 눈을 감고 있거나 나직하게 이야기 나눌 뿐 강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대체로 공간이 주는 감동이란 낯선 땅, 낯선 풍경에서 오는 것이다. 아무리 장엄한 풍경이라도 일상이 되면 지루해지기 쉽다. 여행자에게는 짧기만 한 1시간의 선상 유람이 주민들에게는 길고 따분한 이동시간이 되는 것이다. 젊은 뱃사공도 무료한 표정으로 배를 몰아간다. 떠나고 싶을 것이다. 반복되는 뱃길이 즐겁지 않을 것이다.

뱃사공의 기분이야 어떻든 여행자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파닥인다. 나는 뱃사공으로부터 키를 넘겨받아 운전을 해보기도 한다. 강을 건너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메 나루에는 공안의 검문이 없다. 다행이다. 미니버스를 빌린다. 버스에 함께 탄 티벳 여인 셋은 중간에 사원이 보일 때마다 내려서 참배를 한다. 첫 번째 사원은 함께 참배를 했다. 두 번, 세 번 반복 되자 슬그머니 조바심이 난다. 날은 어두워지고 갈 길은 먼데 여인들은 순례를 즐기는 듯하다. 여인들은 돌아갈 집이 있으나 여행자는 잠자리가 걱정이다. 주말이라 빈 방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라싸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두 시간이면 족할 거리를 4시간 반이 걸렸다.

 

 




[티벳 여행기] (15) 하늘 호수 가는 길
2006년 11월 21일
티벳 사람들은 베이징의 시간에 따라 움직이지만 티벳의 태양은 티벳의 시간을 따라 뜨고 진다. 벌건 대낮을 밤 시간이라 부른다 해서 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인간의 규칙이 있듯이 자연계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남쵸(Namtso)는 하늘 호수다. 티벳어의 남은 하늘이고 쵸는 호수다. 남쵸 가는 길목에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순례자를 만난다. 인간의 욕망 중 유일하게 아름다운 욕망은 거룩해지고자 하는 욕망이다. 저 순례자는 단지 내세의 구복만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룩한 영적 갈망이 그의 육신을 벌레처럼 몸 낮추어 기어가게 만들었다.

‘하늘 호수’ 남쵸의 일몰

“비록 천국이 우리 행복의 완성이요, 완전함을 나타낸다고 해도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은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에 의해서이다. 그렇게 성인들은 가르쳤다.” (로버트 앨스버그)

천국이나, 극락, 도솔천, 파라다이스, 어떠한 유토피아도 ‘지상에는 없는 곳’들이다. 지독하게 운이 좋거나 선행을 쌓은 뒤 죽어야만 갈수 있는 곳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신은 죄를 짓기 전의 어린 아이들을 ‘강제 해탈’의 방법으로 천국에 데려가지 않는가. 죄와 사악함의 한 가운데 던져주고, 악의 세계에서 선을 쌓은 뒤에야 천국에 이르게 하는가. 그렇다! 티벳 땅에 와서야 비로소 알겠다. 천국이란 죽음에 의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거룩함에 의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거룩하게 사는 삶이 바로 천국이고 불국토가 아닌가. 죽음이 아니라 거룩한 삶 속에 천국이, 불국토가 있다.

라싸만이 아니다. 외곽의 어느 곳도 새 집을 짓지 않는 마을은 없다. 들판은 푸르고 만년설의 설산지대가 시작된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따갑던 눈도 시원해진다. 대체로 사람에게 해로운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다.

‘하늘 호수’ 남쵸

미니버스는 남쵸 호수 입구 매표소에서 멈춘다. 일인당 입장료가 80위안, 가는 곳 마다 돈이다. 티벳이란 나라도 이제는 더 이상 여행자들이 천국은 아니다. 다시 숨이 막혀 온다. 어느 곳을 가나 소매를 붙드는 것은 반이 걸인이고 나머지는 상인이다. 사진을 한 장 찍어도 손을 벌린다. 아이도 손을 벌리고 라마승도 손을 벌린다. 호수가 가까워진다. 야크와 양떼를 기르는 유목민의 텐트가 자주 눈에 띈다. 오토바이를 타고서 야크 떼를 모는 목동이 초원을 달린다. 유목민 텐트 앞에 앉은 아이가 손을 흔든다. 삶이란 저토록 애틋하다.

남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잠시 멈춘다. 룽다를 거는 곳이다. 돌탑 위에 야크 해골이 올려져 있어 남쵸 호수와 함께 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일어서려는 순간, 소년 하나가 팔목을 확 잡아챈다. 사진을 찍었으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소년의 눈앞에서 미련 없이 사진을 지운다. 그래도 소년은 내 옷자락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다. 1위안을 건넨다. 소년은 돈을 던져 버린다. 무조건 5위안을 달란다. 유목민 집단일까. 말을 태워 주고 돈을 받던 건장한 티벳 청년 하나가 긴 칼을 차고 다가와 소년에게 돈을 주라고 강권한다.

둘러보니 여행자들은 다 그 꼴을 당하고 있다. 여행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화를 돋구는 아이. 이건 구걸이 아니다. 강도다. 티벳 사람이라고 해서 티벳의 하늘과 호수를 볼 수 있는 권리까지 소유했다고 주장 할 수는 없다. 이들을 걸인으로, 돈의 노예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중국일까, 여행자일까. 착잡하다. 더 이상 호수의 꿈같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디 티벳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웠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1000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장악했으며 인도와 중국 간의 교역을 중개하고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여행자가 티벳 사람들을 돈에 물들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여행자가 야크 가죽이나 양고기처럼 돈이 된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남쵸 호수 가는 길에 만난 소녀

해발고도 4718m, 고원에 위치한 남쵸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염호다. 라싸에서 북쪽으로 195㎞ 떨어져 있으며 길이가 70㎞, 너비가 30㎞ 이상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호수 남쪽은 7111m의 녠첸 탕글라 산맥(念靑唐古拉山脈)이, 북쪽은 5072m의 탕구라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 높은 고원의 호수가 염호인 것은 이곳이 한때 바다였기 때문이다. 1억 년 전 인도는 아시아 대륙과 분리되어 있었다. 두 대륙 사이는 깊은 바다였다. 7000만 년 전 쯤부터 인도대륙이 이동을 시작해서 아시아 대륙과 부딪쳐 아시아 대륙을 밀어내기 시작 했다. 이 지각 변동으로 2500만년~1000만년 사이에 히말라야 산맥이 솟아올랐다. 깊은 바다 속이 산 정상이 되었고 함께 솟아오른 티벳은 고원이 되었다. 히말라야의 조산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네팔 땅은 해마다 수㎜씩 상승하고 있다.

남쵸의 물빛은 청옥 같다. 청보석의 호수. 라싸에서 1000m를 더 높이 올라 왔다. 많은 이들이 고산병으로 힘겨워 한다. 머리가 아프고 눈이 따갑고 구토를 한다. 우리와 함께 온 친구 하나는 구토에 시달리더니 도착하자마자 돌아갔다. 숙박은 기사가 안내 해준 유목민 텐트에 잡았다. 하룻밤 보낼 일이 걱정이다. 이곳도 라싸의 바코르 광장만큼이나 여행자로 북적인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기념품과 말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티벳인들의 끈질긴 호객 행위는 여전하다. 외국인들만 보면 무작정 손부터 벌리는 것도 같다. 이것은 가난의 문제가 아니다. 욕망의 문제다. 숨이 많이 차다. 한숨 붙이고 나니 조금 가벼워진다. 그 사이 여행자들도 많이 빠졌다. 대부분의 버스 여행객들은 당일치기로 다녀간다. 남는 여행자는 적다.

호수 건너편 산들은 제주도의 오름과 비슷한 느낌의 민둥산이다. 호수 가에 조용히 앉아 있으려 했으나 티벳인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시마’, ‘시마’ 말을 타라고 질기게도 불러댄다. 말은 뙤약볕이 힘겨운지 꾸벅꾸벅 졸고 서 있다. 안타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한 사람이 가니 또 한 사람이 온다. 이번에는 ‘야크 본’, ‘야크 본’ 외치며 야크 뼈로 만든 목걸이를 사라고 한다. 어딜 가도 사람 사는 곳에서 안식을 얻기는 어렵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숨 막혀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문득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일출을 보러 가는 여행자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직 내가 살아 있구나. 여행자는 길에서도 잠들지 못한다. 호수에서 물을 길어 오는 여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숙소 주인 여자는 수건에 물을 묻혀 얼굴과 목을 씻고 아침을 준비한다. 주인 남자는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다. 여자가 야크 티와 짬파를 가져다 바친 뒤에야 부스스 눈 뜬다. 주인남자와 운전기사는 짬파를 먹고, 우리는 야크 버터차를 마신다. 여자는 함께 먹지 않는다. 이 땅의 남자들도 지독히 가부장적이다. 힘든 일은 여자들 몫이다. 남자들이 하는 일이란 빈둥거리거나 술 마시고 여자와 아이들을 패는 일이 거의 전부다.

남쵸의 밤은 추웠고 만년설의 산 아래 호숫가 아침 공기는 차다. 주인집 텐트 안 난로에서는 마른 야크 똥이 탄다. 난방과 취사 겸용이다. 야크가 아니었으면 이 고원에서 사람이 어찌 살았겠는가. 살을 베어 먹이고, 뼈로 장신구를 만들어 돈을 주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고, 똥으로 따뜻한 밤을 준다. 야크 똥은 갈탄보다 화력이 세다. 붉은 색이야말로 생명의 색이다. 저 난로의 불빛이 그렇고 피가 그렇다. 숨이 차지만 않다면 남쵸는 며칠이고 머물고 싶은 곳이다. 자동차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숨쉬기가 편안해 진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탄 것이다.

 

 




[티벳여행기] (16) 타임머신을 타다
2006년 11월 23일
인간은 이미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 모든 탈 것들은 시간을 거스른다. 사람에게 지구의 시간은 사람의 발로 가는 속도다. 말과 수레와 자동차와 기차와 비행기는 어느 것이나 현재의 시간을 거슬러 미래로 간다. 양떼가 자주 길을 막는다. 양치기 개는 게으른 걸음으로 뒤처져 따라온다. 이번에는 야크 떼다. 야크들은 공격적이지 않다. 저 보다 작은 덩치의 차와 맞서지 않고 차를 피해 간다. 언덕길을 내려가던 차에 문제가 생겼다. 기사가 차를 세운다. 바퀴에서 연기가 난다. 열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다행이도 시냇가 근처다.

앞에 세워진 트럭 한대도 물을 길어 나르고 있다. 기사가 물통을 빌리러 간 사이 나는 페트병으로 물을 떠다 타이어 휠에 붇는다. 몇 번을 떠 나르는데 빈손으로 돌아온 기사는 자신이 하겠다고 병을 달란다. 나는 기사의 손을 뿌리치고 물을 떠 나른다. 미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일본소녀가 낑낑거리며 물통을 들고 온다. 이번에는 베이징에서 온 한족 친구가 물을 떠 나른다. 운전기사의 얼굴이 환하다. 다시 차가 굴러간다.

라싸로 가는 길


라싸로 가는 길목의 초원에 군용 트럭들이 자주 눈에 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 작전 중이다. 인류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사람 살리는 기술의 개발보다는 죽이는 기술의 개발에 더 열심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수백만의 사람을 단 숨에 죽일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 인류가 아직껏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 하나 살릴 수 있는 약은 만들지 못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쓴 돈의 만분의 일이라도 사람 살리는 약의 개발에 썼다면 인류는 대부분의 불치병에서 해방됐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사람 죽이기 경쟁은 하면서도 살리기 경쟁은 하지 않는다.

시골길을 120㎞가 넘는 속도로 달리던 기사가 라싸에 진입하면서 속도를 확 줄인다. 왜 갑자기 속도를 줄인 것일까. 교통경찰이나 감시 카메라도 보이지 않는다. 라싸 시내의 표준 속도가 40㎞다. 곳곳에 표지판이 보인다. 온갖 탈 것과 사람들이 뒤섞여 그토록 무질서해 보여도 사고가 거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들 천천히 가니 막히는 일도 거의 없다. 느린 것이 빠른 것이다. 아무 제제도 없이 기사들이 속도를 지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속이나 운전자 과실로 사고가 나면 경중에 관계없이 면허 취소라도 되는 걸까. 편리한 만큼 위험이 큰 자동차는 양날의 칼이다.

오늘은 유스호스텔에 숙소를 잡았다. 늦은 저녁 출입구에 앉아 여행자들을 구경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여행보다는 사냥에 관심이 더 많은 서양 남자들. 눈 한번 맞추고 바로 따라 나서는 한족 여자 여행자들. 여전히 동양 여자들의 서양 남자에 대한 선망은 크다. 내 옆 자리에는 양 손이 잘린 중국인 여행자가 앉아 있다. 그의 표정은 거리낌이 없다. 뭉툭한 손목에 핸드폰을 걸고 팔찌를 찼다.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들일까.

티벳의 유목민이나 농부들은 하나 같이 마른 수숫대처럼 말랐다. 사원에는 배 나오고 살찐 승려들이 다수다. 승려의 지위가 높을수록 얼굴의 기름기가 더 하다. 드레풍 사원 행 302번 미니버스를 탔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의 시동이 꺼지고 움직이지 않는다. 남자들 10여명이 우르르 내려서 차를 민다. 차가 다시 움직인다. 옆 좌석에 귀여운 소녀가 앉았다. 인민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다. 너는 어디 사람이니. 아이가 영어를 또박 또박 잘 한다. 중국 사람이에요. 티벳 사람이 아니고. 예, 하지만 엄마 아빠는 티벳 사람이에요. 그렇구나 너희들은 벌써 중국 사람이 다 됐구나. 이름이 세 개나 되는 아이. 티에나는 중국 이름이고, 티벳 이름은 덴젠 데스, 영어 이름은 셸리다. 인민학교 6학년, 아이는 구김 하나 없이 환하다.

보리, 유채밭


드레풍 사원 아래 마을에서 버스가 선다. 1시간 남짓 걸어 올라간다. 티벳 점령 이후 문화 혁명을 거치면서 사원을 파괴하고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던 중국 정부가 다시 사원을 복구하고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사원이 권력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큰 돈 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문이다. 세속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종교는 결코 더 강한 권력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더 큰 힘과 이익 앞에서는 쉽게 굴복하는 것이 세속화된 종교의 특성이다. 티벳의 사원이 진정으로 영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사원이었다면 중국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인 에너지야말로 세속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저항의 원천이 아닌가.

조캉 사원으로 그토록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식민지에서 수천, 수만의 민중이 일시에 모이는데도 점령자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티벳에서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땅의 순례자들이란 현세에는 아무 바람이 없고 오로지 내세에만 촉수를 대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현세에 기대가 없는 순례자들이 중국정부에 위협이 될 이유는 터럭만큼도 없다. 그들이 믿는 종교와 내세에 대해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티벳 민중들은 절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중국정부가 뒤 늦게 깨달은 것이다. 티벳 민중의 라마교에 대한 신앙심이 더욱 깊어질수록 중국의 통치기반은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미래의 행복만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는 결코 행복 할 수 없다.”(파스칼)

이곳 사람들은 내세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현세를 희생한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에 불행의 느낌은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불행한 것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티벳에서는 이런 해석마저 부질없다. 삶의 행복이란, 불행이란 또 무엇인가.

사원에서 내려가는 길에 1위안짜리 3륜 트럭을 탄다. 포장을 친 트럭의 짐칸에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수송용 군용 트럭 같다. 차는 굴러가는데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동력 차인가. 기사가 참 영악하다.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아애 시동을 걸지 않았다. 끝까지 내리막길이니 기어를 중립에 놓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래도 이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티벳 여행기] (17)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 겨울궁전
2006년 11월 28일
포탈라 궁으로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포탈라 궁은 과거 달라이 라마들의 궁전이었다. 높이 117m, 길이 400m의 거대한 궁전에는 천 개의 방이 있다. 포탈라궁의 5대 달라이 라마 봉헌법당에는 14m 크기의 5대 달라이 라마의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모두 3700㎏의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커다란 다이아몬드, 진주 산호, 마노, 구안주, 비취, 녹송석 등 각종 보석이 1,500여개나 박혀 있다. 이 가난한 나라의 모든 부와 사치가 집중된 곳이 포탈라 궁이다. 티벳의 순례자들은 궁전을 향해 오체투지를 한다. 사람의 몸으로 신이 된 법왕. 티벳에서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숭배되는 인격신이다.

개인숭배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만은 그토록 관대한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다시 그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인격신의 숭배자들을 논리나 이성으로 이해할 길은 없다. 하지만 무엇을 탓하랴. 기대고 싶으면 바위나 나무 한 그루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사람 아닌가. 하지만 달라이 라마 숭배에 관용적인 사람들은 어떠한 개인숭배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숭배의 이유가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본질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가 궁에 들어가 왕이 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지만 궁 밖의 낮은 곳으로 내려 올 수 있는 것은 그의 의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높은 곳에 있다. 다람살라에도 있고, 포탈라 궁에도 있고, 노블링카에도 있다.

천개의 방을 가진 포탈라 궁전


천개의 방을 가진 포탈라 궁전도 왕에게는 오히려 부족한 곳이었을까. 현 14대 달라이 라마가 지은 여름궁전, 노블링카는 36만 평방미터의 땅 위에 세워진 별궁이다. 중국 정부는 티벳 민중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인민의 돈으로 여름 궁전, 겨울 궁전 짓고 호화판 생활을 한 위선자였다’고 교육시킨다고 한다. 나는 달라이 라마가 위선자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달라이라마가 1954~~1956년, 중국의 점령 하에서 새로 지은 여름궁전, 노블링카는 왕관을 쓴 스무 살 청년의 여름 한철 별장으로는 지나치게 호화스럽다. 40개의 방과 옥좌와 침실, 법당, 서양식 욕조와 화장실 응접실, 수 만평 정원과 나무와 꽃들, 분수대와 연못, 연못 위의 정자들. 달라이라마는 늘 자신은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다 해서 그의 지위가 땅으로 내려오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왕이고 신으로 숭배 받고 있다.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그의 겸손은 오히려 그의 신성을 드높여 주는 장식으로 기능한다.

인간을 신성시하고 신격화시키는 것은 인간을 신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다. 신을 인간의 자리로 끌어 내리는 행위다. 그것은 신성모독이다. 티벳에서는 모든 불보살과 존자들, 역대 왕들, 달라이 라마가 신으로 모셔진다. 부처님이 신들의 경배를 받았다는 것은 신을 믿는 자들의 경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았다는 것은 마왕을 섬기는 자들의 귀의를 받았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결코 유신론자가 아니었다. 부처님을 신화화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 또한 신화화시키는 행위이다. 신화란 진리와 무관한 것이다. 티벳에서는 권력이 있으면 인간도 신이 될 수 있고, 그 신은 세습되기도 한다. 영적 가계를 통한 세습. 라싸는 천상에서 자리를 잃고 인간의 땅으로 내려온 신들의 거주처다. 하지만 이곳의 신들은 영적인 세계의 주관자이기보다는 마치 세속의 이익을 지켜주고 더 좋은 내세로 가는 티켓을 끊어 주는 매표원 같다.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링카궁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간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이레)

티벳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 온다. 랜드크루져를 빌려 4박5일 일정으로 티벳 국경까지 가기로 했다. 거기서 네팔로 넘어갈 것이다. 오늘은 라싸를 떠나 시가체까지 간다. 해발 4000m의 산을 넘는다. 구름과 바람의 길을 자동차로 지난다. 이토록 험난한 길을 닦느라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다. 한 순간만 방심해도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다. 이 길이 생사의 경계다. 죽음이란,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죽음에 대한 추론과 확신에 찬 이론들이 수도 없이 떠돌지만 죽음에 대해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결코 경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죽음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의 전부다. 불래(不來), 삶이 고통스러울 때 마다 나는 얼마나 자주 ‘가서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했던가. 하지만 오늘 문득,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슬프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티벳 여행기] (18) 가련한 티벳의 여인이여!
2006년 11월 30일
산 정상까지 양떼가 풀을 뜯는다. ‘양떼는 구름 몰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양떼 자체가 그대로 흰 구름이다.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길을 운전기사는 겁도 없이 속도를 내 달린다. ‘노한 신들의 안식처’, 암드록쵸(Yamdrok-tso·羊卓擁錯), 해발4441m에 위치한 670㎢ 크기의 이 호수는 한 장의 푸른 거울 같다. 암드록쵸에 잠시 머물다 왔던 길을 되돌아 시가체로 간다. 시간이 벌써 2시가 넘었다.

암드록쵸 호수


도로변 식당은 점심을 먹는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기사가 안내해준 식당에서 라싸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을 다시 만난다. 식당 주인과 다투고 있다. 간단한 식사를 했을 뿐인데 4인 식비가 200위안이 나왔다는 것이다. 도로변 식당이 바가지가 심한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상가격의 세배씩이나 달라는 것은 지나치다. 어느 곳이나 관광객은 봉이다. 허기지지만 밥맛이 뚝 떨어진다. 뒤에 시가체의 호텔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60위안만 던져 주고 나왔다 한다. 바가지를 씌우는 자들에 대한 대응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가지를 깨버리면 된다. 남자여행자가 네 명이니 식당 주인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라싸의 중심 거리는 모두가 베이징 이름을 붙였다. 베이징 동로, 베이징 중로, 베이징 남로 따위였다. 시가체는 전부가 상해 거리다. 상해 동로, 상해 서로. 중국의 의도가 보이는 작명이다. 시가체에 저녁이 온다. 노천 시장의 여인들은 기념품과 마니차 등의 성물들을 챙겨 커다란 양철 상자에 넣은 뒤 사라진다. 장꾼들이 사라진 장터 골목이 이제부터는 아이들 차지다. 공을 차며 만세를 부르는 아이들. 낡은 축구공 하나로도 극락에 도달 할 수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수행자들이다.

시가체 골목길
숙소인 텐진 호텔 기념품 가게 앞 보도에서 다섯 살쯤 돼 보이는 꼬마가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눈다. 한발, 한발 움직이며 제법 여러 덩어리의 똥을 싸 놨다. 입에 과자를 물고 지나던 소녀들이 낯선 여행자의 수첩을 슬쩍 훔쳐보고 간다. 손에 종이를 구겨 쥔 소녀 하나도 콧물을 훌쩍이며 여행자의 노트를 훔쳐본다. 길 건너 가전제품 상점의 TV에서는 음악 방송이 나오고, 손님을 싣지 못한 자전거 릭샤 한대가 느리게 굴러간다. 퇴근길의 젊은 여인은 어깨에 핸드백을 매고 양손에는 오이와 호박, 양파 등의 부식거리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간다.

깡마른 라마승을 뒤따르던 노란 옷의 어린 소녀는 갑자기 승려의 허리를 꼭 껴안는다. 오누이처럼 다정하다. 중년의 사내는 짐수레에 꽃 화분을 가득 싣고 가고, 노인 한 분이 타쉴 훈포 사원 쪽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느리게 걸어온다. 붉은 깃발을 세 개나 단 빈 경운기가 지나가고 오토바이 한 대에는 마실 나가는 동네 청년들이 셋이나 탔다. 푸른 신호등은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기 9초 전이지만 마음 급한 행인들은 재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몸이 어느 곳에 있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의 몸을 붙들어 매는 것은 장소가 아니다. 마음이다. 마음이 깃들지 못한다면 사람은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떠도는 것도 실상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묶어두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몸 따로 마음 따로 끝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 유령들. 시가체의 중심은 타쉴 훈포 사원이다. 타쉴 훈포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벳 권력의 한 축을 이루는 판첸 라마의 거주처다. 호텔 응접실에도 판첸 라마의 사진이 걸려있다.

랜드 크루저 기사는 기어코 차 안에서 잔 모양이다. 기사가 짐칸에서 일어나 이불을 갠다. 기사는 우리 일행이 방을 잡아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 했었다. 랜드크루저 비용에 기사의 숙박과 식사비가 포함 되어 있다. 하지만 차주에게 고용된 기사는 넉넉한 임금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4일치 숙박비를 모으면 그의 가족들에게는 큰돈이다. 오늘 밤부터는 꼭 방을 잡아 주기로 합의하고 일행이 기사의 방 값을 각출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우리를 실어다 주는 기사를 차에 자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시가체는 걸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이들도 손을 벌리지 않는다. 기념품상의 호객 행위도 드물다. 티벳에 입경한 사람이라도 라싸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 다시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시가체에서 허가서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받지 않았다. 모험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길은 외길이다. 라체 방향으로 가려면 검문소를 지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안들이 도로에 줄을 쳐 놓고 차량을 검문 중이다. 걸리면 꼼짝없이 벌금을 물고 라싸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기사가 갑자기 차를 돌리더니 농로 길로 접어든다. 어디에나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랜드크루저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앞서간다. 기사는 계속 검문소를 힐끗거리며 차를 몬다. 30여분을 우회했을까, 마침내 다시 도로에 올라섰다. 기사는 공안을 따돌린 것이 자랑스러운지 신이 나서 ‘폴리스 빠이빠이’를 몇 번이나 외친다. 이곳의 밭에도 유채는 만개했으나 보리는 아직 덜 여물었다. 농부들은 당나귀를 몰고 간다. 이곳의 일꾼은 소가 아니라 당나귀인 것이다.

뉴팅그리


라체로 가는 길은 포장길이다 싶으면 어느새 또 비포장 길이다. 곳곳에서 도로 포장 공사 중이다. 노동자들은 공사장 주변의 천막에서 생활하며 포장해 나간다. 네팔 국경까지 1000㎞를 사람 손으로 포장해 간다.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서 붓고 쇠손으로 고르게 미장을 한다. 도로 공사 노동자들 중에는 아이들도 많다. 공사장이 아이들의 학교다. 교량 공사 중이라 우회해서 다리 밑으로 돌아가려는데 우리 앞에서 미니버스 한 대가 다리에 걸렸다. 짐을 너무 많이 실은 것이다. 승객들이 버스 지붕에 올라가 짐을 푼다.

라체는 소읍이다. 라체에서 점심을 먹는다. 식당에 앉아 있으니 역시나 장꾼들이 몰린다. 여자들은 수정을 팔러 온다. 근처 동굴에서 캐온 것일까. 아이들도 무작정 손을 벌리지는 않는다. 수정을 팔거나 구두를 닦아 돈을 번다. 빌어먹기보다는 자기노동으로 산다. 고마운 일이다.

뉴팅그리(쉐가르)에서 또 하루를 묶는다. 이곳은 마치 서부영화 속의 도시 같다. 황무지에 세워진 건물들. 숙소로 잡은 스노우랜드 호텔은 한국의 여인숙 정도의 시설을 가진 여행자 호텔이다. 잠시 누워 쉬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여인들의 노랫가락이 구슬프다. 나는 노래 소리에 이끌려 방을 나선다.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짓는 중이다. 수 십 명의 사람들이 돌을 나르고, 흙을 파헤친다. 여인들은 삽으로 흙을 퍼내며 노래를 부른다. 여인들은 모두 복면을 했다. 흙먼지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삶이 흙먼지 속 아닌 곳이 없다. 천변 다리 밑에는 누렁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밤이 성큼 다가 온 것이다.

뉴팅그리는 낮에 지나온 라체와는 또 다른 곳이다. 열 두어 살 쯤이나 됐을까. 여자 아이들 셋이 여행자에게 볼펜을 달라고 한다. 돈을 구걸하는 것보다는 아름답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준비해온 볼펜을 나눠준다. 아이들이 즐겁게 웃는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하자 아이들이 손사래를 친다. 수줍음 때문일까? 아이들은 주저없이 손을 내민다. 사진을 찍으려거든 돈을 내라는 표시다. 사진 찍을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린다. 아이들은 질기게 쫓아오면서 사진을 찍으라고 조른다. 여인들의 노랫소리는 밤 아홉 시가 넘도록 이어진다. 식당에서는 티벳 남자들이 맥주를 마시며 카드놀이에 열중해 있다. 50위안짜리 지폐도 쉽게 오간다. 고단한 티벳의 밤이여! 티벳의 여인들이여!

 

 




[티벳 여행기] (19) 대지의 여신, 초모랑마
2006년 12월 05일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려고 하지 않았으니, 삶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소로우)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사람들은 늘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고 산다. 다른 사람들도 늘 내 삶에 관심이 많은 듯이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으로 떠드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삶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자기 자신이다. 나 또한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에게만 몰입한다.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관계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대체로 타자에게 별 관심이 없다. 초모랑마(chomolangma)에 오르면서도 그렇다. 사람의 관심사는 결코 산이 아니다. 산에 오르는 자기 자신이다. 뉴팅그리에서 불과 30분 거리, 마을 입구부터 초모랑마 국립 공원이 시작된다.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령 인도 측량 장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티벳 이름 초모랑마는 ‘대지의 여신’이란 뜻이다. 네팔어로는 ‘서가르머타’지구의 머리다. 일개 식민주의자의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 성스러운 산이다. 몇 킬로나 달렸을까. 드디어 설산이다. 산정까지는 아직 먼데 벌써 손발이 시리다. 여름에서 겨울로 건너오는데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산정에 잠시 멈추었던 차가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간다. 초모랑마의 심장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 깊은 산중에도 마을들이 있다. 다섯 시간쯤 산속을 달려 롱북 사원에 도착한다. 롱북은 티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원이다. 다시 숨이 차다. 여기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EBC)까지는 걷거나 말을 탄다. 어딜 가나 한족 여행자들의 수가 월등히 많다.

초모랑마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높은 자리가 되기도 한다. 초모랑마 또한 옛날에는 바닷속 깊은 땅이었으나 지금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우뚝하다. 그러나 초모랑마는 그저 척박한 돌산일 뿐이다. 높든 낮든 산은 산이다. 산의 서열을 정한 것은 인간이지 산은 아니다. 산들이야 높고 낮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열을 가리기 좋아하고 차별하기 좋아하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최고봉이라는 허상. 초모랑마는 없다. 그저 만년설 뒤덮인 돌산이 하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산도, 산은 품이 너르다. 아무리 척박한 돌산일지라도 수많은 생명을 먹이고 살린다. 초모랑마 산그늘에 기댄 사람과 양떼와 야크와 키 작은 풀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높이로 세계를 본다.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은 어떻게 이런 높은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지 놀라워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높은 산속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프리카나 알래스카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세상의 중심은 자기가 사는 땅이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삶을 틀린 삶이나 기이한 삶으로 단정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롱복 사원에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은 마차로 한 시간 거리다. 초모랑마, 저 가파른 산에서 숱한 목숨들이 죽거나 불구가 됐다. 정복 혹은 등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뿐인 귀한 목숨이지만 사람이 때때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더 많은 목숨을 구하거나 인간의 존엄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희생의 때가 그런 때다. 하지만 희생이 아니라 욕망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위는 목숨을 능멸하는 행위다.

초모랑마 입구 유채밭


저 산에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국가나 집단,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라져 갔는가. 물질적 욕망뿐만 아니라 정신의 욕망을 위해서도 목숨을 버리는 행위는 결코 칭찬 받을 일이 아니다. 산악인들은 다르다 하겠지만, 이를테면 높은 산에 대한 욕망과 최고의 스피드를 추구하는 욕망은 어떻게 다른가. 최고봉에 대한 욕망에 목숨을 거는 것과 최고의 속도에 목숨을 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둘 다 동일한 정신적 욕망의 작용이 아닌가. 욕망을 위해 바쳐지는 목숨의 가치에 차등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자동차광이 속도에 목숨 바친 것을 거룩하다고 여기지 않으면서 산악인이 산에 목숨 바치는 것은 거룩하게 여긴다. 이상한 일이다.

롱북 사원 게스트 하우스 레스토랑의 저녁은 티벳 소녀 치링 남루의 야크 똥 난로 지피는 연기를 따라 들어온다. 열 두 살짜리 꼬마 숙녀 치링은 혼자서 종일토록 레스토랑의 손님들을 접대하고 물통을 저 나르고, 난로가 꺼지지 않도록 야크 똥을 넣는다. 연기 자욱한 레스토랑 안은 소란스럽다. 중년의 독일인 여자는 팬케익을 씹으며 운다. 함께 앉은 남자가 안아서 달랜다. 티벳인 랜드크루저 운전사들은 카드 놀이에 여념이 없고, 잔뜩 싸온 음식을 떠들썩하게 꺼내 놓고 먹어대던 한족 단체 관광객들은 누추한 롱북 사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원입구에 지어진 정부 기관 건물에 머문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신다. 일곱 살짜리 레스토랑 주인 아들은 생라면을 씹으며 싱글거린다. 일과가 끝나고 치링은 멋지게 차려 입은 남자친구를 이끌고 어느 방으론가 사라진다.

초모랑마에서 올드 팅그리로 가는 길이 간밤 비에 막혔다. 어제 온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어제 탄성을 자아냈던 고개 마루의 눈들이 비에 다 녹아버렸다. 어제의 설국이 오늘은 그저 흙과 자갈에 덮인 흔한 민둥산일 뿐이다. 신비로움은 한 꺼풀 눈이 덮인 것에 지나지 않다. 눈 녹으면 이토록 부질없다. 본질은 자주 신비의 포장 아래 은폐되지만 한 차례 비나 햇빛으로도 쉽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신비로움을 추구하며 살 수 밖에 없다. 신비가 없다면 삶은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실에 눈 떠야 살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신비에 눈 감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삶의 신비란 인간이 삶의 고통으로부터 삶을 견뎌 내게 하는 빛이 되기도 한다.

 

 




[티벳 여행기] (20) 독살에 걸린 물고기처럼
2006년 12월 07일
국립공원 입구 마을 주민들이 방목하는 양떼인가. 양떼가 풀밭에 코를 박고 있다. 언뜻 봐서는 황새나 왜가리가 논바닥에 부리를 처박고 먹이를 구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벌써 떠나온 롱복 사원 야크 똥 난로 매캐한 냄새가 그립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그리움이 된다. 이제 티벳을 아주 떠나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발적 가난, 스스로 헐벗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이들을 착취함으로써 제조되는 안락함과 사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직업이 공동선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그 일을 포기하는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도로시 데이, 미국 카톨릭 신문 1948년 12월)

길, 구름


물질적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는 자주 영적인 삶만이 최고의 가치이고 물질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질세계에 살며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물질은 여전히 소중하다. 물질이 사악한 것은 아니다. 나누지 않는 것이 사악한 것이다. 물질이 사악하다고 가르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사기꾼이거나 몽상가다. 필요보다 많이 소유하고 나누지 않는 것이 사악한 것이다.

물질이 넘치는 이 세계에서 여전히 물질이 모자라 고통 받고 죽어 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그저 영적인 삶으로의 도피에서 찾을 일은 아니다. 인간이 물질계에 사는 한 영적인 수련만으로는 결코 자기 구원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영적인 수련은 굶주림과 질병, 노예 상태의 삶에서 고통 받고 있는 형제들과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삶의 실천, 자발적 가난의 실천을 통해 완성 될 수 있다. 나눔은 내가 쓰고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전부를 나누는 것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많은 종교의 창시들은 사랑과 자비의 삶을 가르쳤다. 가난하고 약한 자와 나누는 선한 삶을 가르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원 밖에서 선한 삶을 살기보다는 죄를 짓고 사원을 찾아가 자신의 죄 사함을 비는데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부처님도 자비가 곧 부처라 하셨고,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 당신을 섬기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어째서 종교 창시자들의 뜻과는 달리 종교들은 사람에게 지은 죄를 신에게 빌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초모랑마 바위 굴



왜 100가지 죄를 지은 자에게 한 가지 선행을 할 때마다 죄가 하나씩 줄어든다고 가르치지 않고 신에게 참회하라고만 가르치는 걸까. 참회하기는 쉬워도 선행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인가. 면죄부를 파는 것이 사원과 교회에 더 큰 이득이 되기 때문인가. 나는 사람들이 어째서 사람에게 지은 악행을 사원이나 교회에서 비는지 이해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람에게 죄 지은 손을 성수에 씻으면 정화 될 수 있다고 믿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사람에게 지은 죄는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죄 지은 손을 상처 받은 자들의 피를 닦아 주는데 쓰면 정화된다고 믿지 않는 것일까.

불교 왕국 티벳에서 나는 기쁨의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 오로지 슬픔의 부처님을 친견했다. 부처님은 생사윤회의 사슬을 끊고 불생불멸의 경지에 오르셨다. 불생불멸(不生不滅), 다시 태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경지.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에는 여전히 고해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생들이 무량수인데 부처님은 결코 중생들을 건지러 오실 수 없다. 오시고 싶어도 다시 오실 수 없는 불생(不生)의 경지에 계시니 자비의 화신이신 부처님의 비탄이 얼마나 클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불심 가득한 이 나라에서 슬픔의 부처님, 비탄의 부처님을 친견했다. 부처님께서는 결코 당신이 다시 중생들 곁으로 오지 못할 것을 예견하시고 부처님 당신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는 유언을 남기셨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부처님이 슬프다.

어떠한 인간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하다. ‘기다 죽은 밭갈 소나 놀다 죽은 한량’이나 죽음은 매 한가지다. 그래서 죽음을 담보로 한 사업은 밑지거나 망하는 법이 없다. 죽음을 담보로 한 최고의 사업은 종교다. 사후세계의 땅 한 평은 아무리 비싸도 팔리지 않는 경우란 없다. 전 재산을 다 주고라도 산다. 티벳은 마치 죽음의 도매시장 같았다.

원시 어로 방법에 독살이란 것이 있다. 바닷가의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이용한 어로 방법이다. 돌담을 삥 둘러쌓아 들 물 때 물고기를 가둔 뒤 물이 빠지면 갇힌 고기를 건져내는 함정 어로다. 티벳에서 나는 신이 만든 독살에 걸린 물고기처럼 파닥인다. 시간으로 짠 그물. 함정인지 도무지 눈치도 챌 수 없는 함정을 파놓고 그저 기다리는 신들. 낚시나 실로 짠 그물은 그 자리에서 결판이 난다. 독살은 무심한 시간이 판관이다. 시간의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은 갇힌 줄도 모르고 먹이를 찾아 헤엄치며 놀 것이다. 더러 산란도 할 것이다. 티벳만이 아니다. 독살에 걸린 가련한 물고기들처럼 사람들의 생애가 온통 그렇게 흘러간다.

/강제윤의 ‘티벳여행기’ 연재를 마칩니다.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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