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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짝퉁과 깜부기 [금장태]

문근영 2012. 8. 19. 11:23

제 278 호
짝퉁과 깜부기
금 장 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사람들은 누구나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꼭 같은 옷이나 가방이라도 값비싼 유명상표가 붙은 것이 인기가 있다. 우리가 이 상표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인지, 명품을 구하는데 엄청난 값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명품을 구입할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은 짝퉁이라도 구하려 드니 짝퉁 사업이 상당히 번창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명품 양복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었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슴이 허한 사람들이 겉으로라도 꾸미고 싶어 더욱 열심히 명품을 찾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진짜 명품과 다르다고 ‘짝퉁 명품’만 미움을 받을 것은 아니다. 진짜 명품만 들고 다니면서 우아하게 보이더라도 그 사람이 건강한 인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이것은 ‘짝퉁 인간’이 아닐까.

식별하기 힘든 짝퉁, 짝퉁보다 못한 깜부기

선거철이면 무수한 선량들이 자신의 경력과 학력을 내걸고서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목청이 쉬도록 외치는데, 과연 그 가운데 진짜 명품과 짝퉁을 구별해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진짜 명품은 숨었고, 모두 짝퉁만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선거가 끝나서 당락이 결정되었지만, 과연 당선자가 ‘명품 선량’인지 ‘짝퉁 선량’인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당선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불량의 짝퉁이라 판정이 내려져 정당에서 쫓겨나고, 또 법정의 판결이 내려지면 당선이 무효화되는 ‘짝퉁 선량’도 심심찮게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나 명품과 짝퉁은 같이 가는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짜와 짝퉁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밭에서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예수는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고 하였다. 한창 자랄 때는 구별하기 어려우니 내버려 두었다가 다 익어 쉽게 구별이 되는 수확단계에서 가라지와 곡식을 가려내어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예수야 드러난 결과에 따라 마지막에 심판을 내리면 되겠지만, 선거로 앞날을 맡길 선량을 뽑아야 하는 시민으로서는 그 선량이 자신의 밭에서 곡식이 될지 가라지가 될지 미리 판단해야하는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처지이다. 앞으로 뿌릴 씨앗이 곡식이 될지 가라지가 될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이전 기간에 집권한 정당의 성과를 심판해야 한다고 ‘정권심판’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나 상대방의 역할만 심판하고 그 자신의 역할은 심판 대상에서 빼놓고 있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상대방이 가라지라 확인되었더라도 자신이 곡식이라는 보장이 되지는 않는다. 동쪽 솥과 서쪽 솥의 검정이 서로 검다고 비난하는 꼴인 것 같기도 하다.

진짜 명품은 겉으로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순수해야 하며, 동시에 처음 바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지막 성과가 충실해야 한다. 명품인데 일찍 고장이 나서 못쓰게 되면 짝퉁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맹자는 “오곡은 종자가 좋은 것이지만, 만약 제대로 익지 않으면 돌피나 피만도 못하다.”(「告子」, 上)고 하였다. 궁핍하면 피를 거두어 피죽이라도 끓여먹는데, 비록 곡식의 종자라도 익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면 익은 가라지나 피 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벼나 보리의 종자라도 병들면 시들거나 깜부기가 되는 것처럼, 자신의 정치 목표나 이념이 옳더라도 실현과정에서 적합한 방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구호 보다도 그 구호를 외치는 인간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남은 식별하려 들면서 자신은 돌아볼 줄 모르니

명품에 짝퉁이 따라오듯이, 인간에도 짝퉁이 뒤섞여 있으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인들 사이에 특히 짝퉁이 많은 것은 이권에 많이 얽혀있기 때문이겠지만, 별로 이권이 없어 보이는 수도자들 속에도 짝퉁이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順菴 安鼎福)은 불교경전에서 수행이 없는 승려를 보리밭에 자라나는 ‘보리깜부기’(稗麥)에 비유하여 구별하기 어려움을 지적한 사실을 주목하였다. 농부야 보리씨가 모두 좋은 보리로 결실되기를 기대하겠지만 이삭이 패는 것을 보고나서야 보리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처럼, 신도가 보면 모두 계율을 지키는 승려 같아도 알고 보면 겉만 승려요 속은 속인인 ‘짝퉁 승려’ 곧 ‘깜부기 승려’가 있다는 것이다.

안정복은 불교경전에서 짝퉁 수도자를 깊이 경계한 말을 듣고서 당시의 선비들을 돌아보며, “지금 세상에서 ‘선비’라 일컬어지는 자 가운데 ‘깜부기’를 면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불교에서 이처럼 비유를 잘 하였으니, 경계할 줄을 안다 하겠다”(「橡軒隨筆」(下), 稗沙門)고 감탄하였다.

온갖 종류의 오곡과 야채가 가지런히 심어져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들판에서 농부들은 뙤약볕 아래 땀 흘려 가꾸었는데, 정작 수확하려니 넓은 들판에 가라지와 피가 가득하고 병든 깜부기가 사방에 퍼져있다면 얼마나 참담할까. KTX는 짝퉁부품을 달고 달리며, 원전도 짝퉁부품으로 돌아가는 나라, 사회 구석구석 병든 깜부기가 퍼져나간지 하루 이틀이 아닌데도, 항상 남을 비난할 줄만 알지 자신을 돌아볼 줄은 모르는 짝퉁인간들의 나라가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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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저서 :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 이끌리오, 2005
『한국의 선비와 선비정신 』,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한국유학의 탐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다산 정약용』,살림, 2005
『다산 실학 탐구』, 소학사, 2001 등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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