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에는 안골짝에서 고라니 우는 소리에 몇 번인가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로 한밤중에 거센 목청으로 그리 우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 자기 짝을 찾아서 그러는지, 어미를 잃은 새끼가 어미 생각을 하고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수도를 다시 이어놓기 위해 얼음이 풀린 수원지 쪽으로 올라가다가 길섶에 죽어 있는 고라니를 보고 섬뜩 놀란 적이 있다. 분명 고라니보다 사나운 짐승이 반쯤 뜯어먹은 자취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 독수리가 붙어 있다가 인기척을 듣고 훌쩍 날아올랐다.
몇 해 전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때는 뼈만 해골처럼 앙상하게 남겨진 동물의 섬뜩한 모습을 보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깊은 산중에는 이와 같이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먹히는 생존경쟁의 치열함이 이어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기만 한 숲 속에 이런 약육강식이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약육강식을 비교하면 산업사회 쪽이 훨씬 더 치열하다. 농경사회는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야 하는 이웃이 있어 인간적인 여백이 두텁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서로 밟고 일어서야 하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비정하고 살벌하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가 부족들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이른바 미개사회의 가치의식에 대한 몇 가지 일화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사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것은 원치 않았다.
다음 이야기는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원주민 인디언들이 보잘것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나무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큰 도끼를 하나 보내 주었다. 다음 해에 원주민들이 그 도끼를 어떻게 쓰고 있는 지 보기 위해 다시 그 마을을 찾았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에워쌌다.
인디언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네처럼 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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