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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명충돌은 인류의 숙명인가 [김정남]

문근영 2011. 12. 20. 07:23

제 561 호
문명충돌은 인류의 숙명인가
김정남(언론인)

지난 7월, 노르웨이에서 1백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한 극우주의자의 테러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우선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고, 세계에 널리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구 3국은 성숙한 민주주의, 경제적인 풍요와 평등, 그리고 정치사회적인 관용으로 세상의 찬탄과 부러움을 받고 있다. 여기서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다니 그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에서 노르웨이 총리가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성과 인간애”라고 한 말에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한국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라니…

한국인으로서 그 사건에서 받는 또 하나의 충격은 테러를 감행한 브레이빅이 “한국은 이민자 유입없이 경제발전에 성공했다”면서 “살기에 안전한 문화국가로 본받아야 할 모델”로 한국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대로 한국의 이주민 비율은 전체국민의 2.7%로 노르웨이의 11%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도 18만 2천의 다문화 가정과 60만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고,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모른 것 같다.

더욱이 그가 세상을 자기 식으로 상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을 “다문화주의를 거부한 훌륭한 민족국가”로 단정한 것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폐쇄적인 단일민족국가로 보고 있는 것 같다. 하기는 대부분의 한국인 역시 한국을 단일민족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니 그의 편견과 무식을 나무랄 수 만은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민족 다문화 국가였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75개 성씨 가운데 136개의 성씨가 외래의 귀화 성(姓)으로 그 중 40개는 신라시대에, 60개는 고려시대에, 30개는 은둔국이니 쇄국이니 하던 조선시대에 귀화한 성이다. 문명교류학자 정수일에 의하면 고려초기 1백년 동안에 17만 명이나 외국인이 귀화했다고 한다. 당시 고려인구가 230만 명이었으니 귀화인이 14%나 되었다는 얘기다. 고려는 튼튼한 국력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래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포용정책을 자신있게 폈다는 것이다.

한국은 또한 서양종교가 타율이 아닌 자율에 의해 수용된 유일한 나라이다. 함석헌은 기독교의 전래를 외래 문화, 외래 요소로 보지 않고 우리의 개혁을 위한 자생적 노력의 과정이요, 목표로 해석한 바 있다. 한국은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가 평화로운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이하다. 다문화주의를 충분히 수용하고 소화해 낼 수 있는 바탕과 능력이 역사 속에서 축적되어 왔던 것이다.

문명의 교류와 융합으로 상생과 평화를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우리로 하여금 충격과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헌팅턴이 말하는 문명충돌, 바로 그것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작년 이래 메르켈 독일 총리,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캐머런 영국 총리가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하고, 토르비에른 야글란 유럽의회 사무총장이 “다문화주의 탓에 국가 안에 별개 사회가 성장하고 있다”고 우려한 뒤 끝에 나온 것이어서 문명충돌은 인류 역사의 필연인가 하는 우리의 우려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범인 브레이빅은 범행에 앞서 공개한 ‘2083: 유럽독립선언서’에서 “서방세계가 오스만투르크의 빈(Wien)포위공격을 물리친 1683년으로부터 400년이 되는 2083년까지 유럽에서 이슬람을 몰아내야 한다”며 자신을 “유럽 기독교의 가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을 운명을 간직한 전사”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10만명의 이익보다 한 사람의 신념이 더 강하다는 생각으로 신념의 성을 쌓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는 정치나 경제외적 가치인 역사나 조상, 언어와 종교 같은 문명적 요소(문화적 동질성과 정체성)와 그 충돌이 세계를 움직여 나가는 핵심변수라는 문명충돌론을 실천에 그대로 옮긴 것에 다름아니다. 문명간의 차이 때문에 ‘서로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그는 테러로 실증해 보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문명충돌이 계속될 것인지 세계와 인류의 장래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문화공동체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는가, 문명충돌을 막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는 관용과 공생, 그리고 연대의 가치를 포기할 수 없고 또 포기해서도 안된다. 그렇다. 마지막까지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교류와 융합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다. 노르웨이의 이민자 2세 무슬림 소녀 소피아(13)의 “제가 다른 나라로 가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아니다. 네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 어디 있어도 너는 평화 속에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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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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